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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이라는 찬란한 위로

by 조하나





우리는 살면서 거대한 사건 앞에서만 무력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남들만큼 뛰어나지 못하다는, 내가 지극히 평범하다는 사실 앞에서 더 큰 절망을 느낀다. 거대한 파도처럼 우리의 삶을 덮치는 사건이 아니더라도 ‘평범함’이라는 걸 저주로 받아들이면 이는 매일 같이 내 발목을 적시는 차가운 갯벌처럼 나를 잠식한다. 우리는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며, 나만 홀로 가라앉고 있다는 공포와 아무도 도와주러 오지 않을 거라는 불안에 시달린다.


모든 사람이 ‘행복’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는 시대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건 ‘행복함’이란 곧 ‘특별함’을 의미한다고 믿는 것이다. 이 ‘특별함에 대한 강박’은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집단적 트라우마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 얼마나 괜찮은지, 행복한지, 특별한지를 뽐내는 경연 대회에 나간 사람들처럼 살아간다. 각종 소셜 미디어 스크롤을 내리면, 모두가 특별한 삶을 전시하고 있다. 평범한 직장인은 퇴근 후 멋진 취미로 ‘갓생’을 살고, 누군가는 부업으로 월 천만 원을 벌며, 또 다른 누군가는 눈부신 휴양지에서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산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맥락은 사라진 ‘쇼츠의 시대’. 그 1분짜리 완벽한 서사들 앞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받는다. “그런데 너는? 너의 특별함은 도대체 무엇이지?”


나는 오랫동안 그 특별함을 ‘취재’하고 ‘전시’하는 사람이었다. 패션지 에디터 시절, 나는 수많은 스타와 아티스트들의 화려한 삶을 포장하고, 대중이 그들을 숭배하도록 부추겼다. 그들의 성공 신화 뒤에 가려진 평범한 고뇌와 지독한 불안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나는 오직 반짝이는 부분만을 오려내어 세상에 보여주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기존의 메이저 패션 상업지의 방식에 반하는 시도를 많이 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인디 아티스트들을 주로 섭외했고, 화려한 메이크업이나 명품 착장 없이 포토샵으로 얼굴을 닦아내거나 몸매를 보정하지 않는, 날 것 그대로의 내면을 포착하는 인디 포토그래퍼들과 주로 작업했다. 그것이 사회가 나에게 부여한 ‘역할’과 ‘명함’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저항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명함 뒤에 숨어 나의 평범함을 감출 수 있었다.


근사한 명함이 있으면 좋은 점은 ‘안정감’이다. 4대 보험이 되고, 법카를 쓸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정감’을 유지하기 위해, 회사에서 그 ‘직’을 지키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더 불안해진다. 개인은 조직과 회사의 이익 추구를 위해 희생된다. 바로 그 ‘안정감’을 위해 치르는 대가다. 개인의 반짝임이나 특별함이 집단생활, 사회생활엔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안정감’을 좇을수록 내 안의 공허는 커져만 갔다. 아티스트와 가까이 있다 보면 ‘나는 왜 특별하지 않지?’라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내가 본 세상에선 아무리 화려해 보이는 사람들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삶의 고통과 권태와 자기 비하와 자기애 사이를 오가다 누군가는 끝내 자기혐오의 수렁에 빠지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자신마저 속이며 화려한 삶의 연극을 하이라이트로 끌고 갔다. 그런 세상에 완전히 동화되지도 못하고, 그런 세상을 완벽히 견제하지도 못하고 어중간한 경계인과 관찰자처럼 살았던 나는 그냥 그렇게 서울살이를 하루하루 버텼다. 나 역시 소셜 미디어에 화려한 이미지와 폼나는 글을 올리며, ‘나는 지금 괜찮다’라고 항변했지만, 사실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나는 타인의 특별함을 파는 상인이었지만, 정작 나 자신의 가치는 제대로 매기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머나먼 타국의 작고 외딴섬으로, 명함이 없는 삶으로 용기를 내어 전력을 다해 도망쳤다. 나는 더 이상 ‘아레나 옴므 플러스의 조하나 에디터’가 아닌, ‘조하나’, 그 자체가 된 것이다. 내일 당장 몇 시에 일어나든 지각을 걱정할 직장이 없었고, 내가 무슨 글을 쓰고 무슨 말을 하든 눈치 볼 회사의 데스크도 없었다. 나는 더 이상 ‘OO 소속’으로 실체 없는 집단과 조직을 대표하는 부담과 책임을 갖지 않아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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