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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섬에서 사랑을 하면

by 조하나






20대엔 사랑인 줄 모르고 사랑을 했다. 나조차 모르는, 정리되지 않아 그저 흘러넘치기만 하는 수많은 감정들을 모두 나누는 것이, 나는 사랑이라 믿었다. 그래서 그땐 오히려 연애가 쉬웠다. 나는 오랫동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나 자신을 파괴하는 관계를 반복해 왔다. 내 삶의 시간 대부분을,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 썼다. 기대하고, 어긋나고, 실망하고, 좌절하는 여정은 끊임없었다. 나의 연애사는 ‘평강공주 신드롬’, 즉 구원자 판타지의 연속이었다. 나는 유독 결핍이 많고, 상처가 깊고, 위태로워 보이는 사람들에게 강하게 끌렸다. 그리고 그들을 구원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자 사랑의 증거라고 믿었다.


타인의 상처를 보듬는다는 명목 아래,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내어주었다. 나의 시간, 나의 돈, 나의 감정, 심지어 나의 영혼까지. 그렇게 상대를 위해 나를 소진시키는 것이 숭고한 사랑이라 착각했다. 하지만 그 숭고함의 이면에는, ‘이렇게까지 헌신하는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인정 욕구가, ‘너는 나 없으면 안 돼’라는 비틀린 지배욕이 숨어 있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나의 결핍을 타인의 결핍을 통해 채우려는, 이기적인 거래에 가까웠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내가 구원받기를 갈망했다. 나의 깊은 우울과 불안을 단번에 알아보고, 이 지긋지긋한 어둠 속에서 나를 꺼내 줄 단 한 사람을 기다렸다. 나의 모든 상처를 이해하고, 나의 모든 결핍을 채워주며, 나를 온전하게 만들어 줄 구원자를 찾아 헤맸다.


각자의 섬이 온전치 않은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면, 우리는 더 절실해지고 더 외로워진다. 세상과 단절된 그곳에서, 상대는 나의 유일한 세상이 된다. 나는 한때,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이 되고 싶었다. 그의 엄마, 그의 친구, 그의 애인, 그의 구원자까지. 나는 그가 나를 통해 세상과 연결되기를 바랐고, 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기를 은밀히 바랐다. 그것이 사랑의 깊이라고 믿는, 어리석고 위험한 착각이었다. 결국 그는 나에게서 도망쳤고, 나는 홀로 남겨진 섬에서 나의 집착이 사랑이 아니었음을 깨달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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