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통령이 일본과 미국을 순방하는 데 ‘3박 6일’이라는 일정을 짠 건 난생처음 보는 일이다. 나는 미국과 멕시코에 가면 시차 적응으로 일주일은 골골 거린다.
3박 6일. 한 국가의 운명을 짊어진 지도자에게 허용된 시간이었다. 그 말도 안 되는 일정 속에서, 대한민국 대통령 이재명은 5천2백만의 대한 국민과 7백만 재외 동포의 바람을 짊어지고 대양을 건넜다.
미국으로 가는 전용기 안에서 고된 여정에 대한 기자의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 그리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어 하나도 힘들지 않다. 정말로 행복하다.” 그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유시민이 전에 총리직 제안을 거절하며 말했던 게 생각났다. “아무리 높고 좋은 자리라도 하고 싶은 사람이 해야 한다”고.
대통령의 답은 한 인간이 자신의 소명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철학적 고백과도 같았다. 고단한 현실을 넘어, 국가의 역사적 책임감과 국민에 대한 사랑이 빚어낸 어떤 경지 같은 것이었다.
한미 정상회담의 백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이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외교 무대에서, 특히 예측 불가능성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트럼프 특유의 협상 스타일 앞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긴 시간 대화 내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있었다. 고요하지만 단단한 파도처럼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나는 당신과 동등한 주권 국가의 대표”라는 무언의 제스처였다.
방명록에 서명할 때 트럼프는 이스라엘, 인도에 이어 세 번째로 대한민국 대통령 이재명에게 직접 의자를 빼줬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은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그 의자에는 앉지 않았다. 이는 앉는 순간, 사진 속에 담길 미묘한 권력의 구도와 시각적 위계를 직감한 노련한 정치인의 원초적 감각이었다.
미국 사람을 만나면 한국인은 무의식 중에 “Thank You”라도 영어를 쓰려는 경향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통역이 가까이 있지 않는 상황에서도 시종일관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서명을 유심히 지켜보던 트럼프가 “아주 배우기 어려운 언어처럼 보인다. 한국어와 영어, 둘 중 어떤 게 더 정확한 언어인가?”라는 테스트성 돌발 질문을 던졌다. “한국어”라고 답하면 트럼프의 심기를 건드릴 것이고, “영어”라고 답하면 대한민국을 낮추게 될 것이다. 이재명은 즉시 순발력을 발휘해 재치 있게 답했다. “컴퓨터를 쓸 때는 한국어가 더 편하고, 말할 땐 영어가 더 나은 것 같다.” 한글의 과학적 우수성과 영어의 국제적 실용성 사이의 절묘한 균형점을 찾아낸 이 답변은 디지털 강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의 자부심과 세계 시민으로서의 열린 자세를 동시에 드러낸 탁월한 외교적 수사였다. 이를 두고 혹자는 ‘꿈보다 해몽’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말과 글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저 순발력은 결코 암기된 지식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말은 그 사람의 살아온 시간과 철학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대화 내내 티 나지 않게 자신이 던지는 자잘한 폭탄을 요리조리 잘 피해 가는 이재명 대통령에게 시종일관 ‘오, 제법인데?’라는 시선과 제스처를 보냈다. 내가 지난 10년 간 미국인들과 지낸 경험에 비춰 봤을 때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아시안, 한국인에 대한 우월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인들의 좋은 점은 상대가 누구든 실력이 있다는 걸 눈치채면, 그 즉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존중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의 실력을 인정한다는 것을 그의 말과 제스처를 통해 끊임없이 확인할 수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디테일한 기술은 결코 즉흥적인 기교나 계산된 연출로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한 인간이 오랜 시간 축적해 온 공부와 경험, 그리고 성찰 속에서 자연스럽게 체화된 것이다. 자신을 낮춤으로써 상대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존중함으로써 상대에게 동등한 존중을 요구하는 새로운 방식의 리더십. 이는 자존감과 배려가 분리된 덕목이 아니라, 깊은 자기 이해에서 비롯된 하나의 뿌리임을 보여준다. 사회심리학적으로 볼 때, 이러한 ‘고요한 자신감’은 상대로 하여금 섣부른 우위를 점하려는 시도를 무력화시키고, 상호 존중의 관계로 들어서는 입구를 열어준다. 그리고 트럼프는 이를 알아보고 인정한 것이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단순히 한 국가의 행정 수반이 아니다. 그 어깨 위에는 수천만 국민의 삶과 역사, 그리고 미래의 명운이 걸려 있다. 그 무게를 감당하는 것은 초인적인 정신력을 요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미국 순방길에 오른 이재명 대통령을 지켜보며 괜히 마음이 촐싹거려 호들갑을 떨었다. 남아공 대통령을 앉혀 놓고는 심지어 남아공이 배경도 아닌, 가짜 뉴스에 떠도는 영상을 대형 스크린으로 재생하며 “왜 니들은 우리 백인을 학살하냐?”며 억지를 부리고, 모욕하고, 조롱하는 장면이 떠올라서였다.
그러자 아빠가 웃으며 말했다. “트럼프가 이재명 대통령에게 그래봐라. 우리나라 사람들, 미 대사관 불이라도 지르겠다고, 감히 우리나라 대통령을 욕보이냐고 난리가 날 걸? 우리나라 사람들 성질, 트럼프가 모를까 봐? 이제 대한민국은 아무리 미국이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나라야. 우리는 좀 더 자신감을 가져도 돼.”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으로 향하며 느꼈을 책임감과 중압감의 무게를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3박 6일이라는 불가능에 가까운 순방 일정 속에서도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늘 그래왔듯 오로지 국민만 보고 가기 때문일 것이다.
권력의 정점에서 자신을 지탱하는 것이 화려한 의전이나 강대국의 호의가 아니라, 자신을 그 자리에 세운 이름 없는 ‘대한 국민’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도자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의 원천이 아닐까.
이번 순방길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보여준 모습은 나에게 리더십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그것은 더 이상 강함과 부드러움, 혹은 실리와 명분이라는 이분법적 틀에 갇히지 않는다. 한 인간의 인문학적 소양과 철학이 어떻게 한 국가의 품격으로 발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결국 한 나라의 외교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지도자의 ‘존재’ 그 자체로 말하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한 국민인 나를 대표해 미국 국민을 만났고, 꼿꼿이 세운 허리와 정중하지만 단호한 제스처로 그들을 대했다. 그 안에 담긴 자존과 배려의 무게는 깊고 선명한 메시지를 세계에 전했다. 대한민국은 바로 그런 나라라고. 대한민국이 1년도 안 된 초유의 내란 사태를 겪고 이렇게, 돌아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