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를 겪으며 배운 것들.
타국의 작고 외딴섬에서 다이빙 강사로 살 때였다. 다른 보통의 날과 다르지 않았다. 유쾌한 사람들과 기분 좋게 다이빙을 마치고, 적당히 허기진 배를 맛있는 음식으로 채운 후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 일을 수년째 하고 있었다. 피부에 남은 소금기를 따뜻한 샤워로 씻어내고, 기분 좋은 노곤함과 함께 침대에 누웠다. 조금 뒤척이다 잠에 든 지 얼마나 됐을까.
갑자기, 마치 누군가 내 심장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놓은 것처럼 숨을 헐떡이며 잠에서 깨어났다. 처음엔 심장이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그 소리는 단순한 박동이 아니라, 갈비뼈를 부수고 튀어나올 것만 같은 거대한 북소리 같았다. 그리고 온몸이 경직되고 뻐근했다. 하지만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여전히 눈을 감고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그다음은 숨이었다. 갑자기 공기가 두껍고 무겁게 느껴졌다. 아무리 숨을 들이마셔도 폐까지 닿지 않는 기분.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필사적인 아가미질을 해댔지만, 산소는 희박했고, 나는 곧 질식할 것 같았다. 손바닥은 축축하게 젖어 들었고, 목울대가 뜨거워지며, 식은 땀이 흘렀다. 천장의 팬이 빙글빙글 도는 모습이 거대한 굉음처럼 들려왔고, 세상이 통째로 기울어지는 듯한 이명과 현기증이 덮쳐왔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꼼짝할 수 없었다.
그 순간, 갑자기 침대 위에 누운 내 몸이 일어나 발코니로 뛰어내리는 모습이 그려졌다. 내가 살던 집 발코니 밖은 깊은 정글이었다. ‘아, 이러다 나는 죽을 수도 있겠구나.’ 이유를 알 수 없는 압도적인 공포 앞에서 나는 말 그대로 죽을 힘을 다해 침대 위에서 일어났다. 가쁘고 얕은 숨을 빠르게 몰아쉬며, 눈물을 쏟으며 폰을 집어 들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Help me.”
세상 사람들이 ‘파라다이스’라 부르는 곳에서 그날 밤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겪은 일에 ‘공황 발작(Panic Attack)’이라는 이름을 붙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수년간 전 세계에서 여행 온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바닷속 30~40미터 깊은 곳을 드나들며 다이빙을 가르치고, 어둡고 복잡한 멕시코 수중동굴을 수없이 오가면서도 평정심을 유지했던 내가 ‘패닉 어택’이라니. 바닷속에서 다이빙을 하는 도중 ‘패닉 어택’이 온 사람들을 누구보다 빨리 눈치채고 대응하며 상황을 통제하고 돕던 내가 ‘패닉 어택’이라니. 언제나 인생은 내가 좀 살만하다 해서 고개를 쳐들려고 할 때마다 마치 어림도 없다는 듯, 정신 차리라는 듯, 너는 아직 멀었다는 듯 이렇게 매서운 싸대기 한 대씩을 갈귀곤 한다.
그런데 진짜 공포는, 심장이 뛰고 숨이 가빠지는 공황 발작의 순간, 그 자체가 아니었다. 진짜 공포는 그 감각을 알아버린 순간, 이후부터 시작된다. ‘이 불안은 앞으로 절대 끝나지 않을 거야.’ 바로 이 경험이 내 삶에서 마지막이 아닐 거란 걸 본능적으로 눈치채는 순간 말이다.
그날 밤, 갑자기 공황 발작이 온 이유를 나는 수만 가지는 댈 수 있었다. 태어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가 속한 곳을 찾지 못한 방랑자로서 나는 내 인생 자체가 ‘Home’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여겼다. 그러면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이것저것 시도하는 과정, 그 자체를 즐기며 살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때론 그 과정 자체가 불안하고 연약해 나는 쉽게 흔들리고, 무너졌다. 다시 일어났지만 언제나 또다시 스러질 모래성을 쌓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자유롭게 살아간다고, 삶의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다고 부러워하지만, 나는 늘 불안했다. 어떤 날은 그 불안을 무시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그 불안에 잠식돼 끝없이 침잠했다. 어떤 날은 삶이 축복처럼 느껴지다가도 또 어떤 날은 삶 자체가 고통이며 재앙처럼 느껴졌다. 그날 밤은 내가 늘 안고 살아가던 ‘불안’이라는 시한폭탄이 드디어 터진 것 뿐이었다.
현대 사회는 재정적 압박, 관계 문제, 건강 문제, 직장 스트레스, 인플레이션 등 불안을 야기하는 요인들로 가득하다. 뉴스를 볼 때마다 세상은 무너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아무도 서로를 좋아하지 않는 듯한 상황이 깊어진다. 이런 세상에서 불안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다.
팬데믹을 거치며 전 세계는 물론 한국의 불안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24년에 발표된 보건복지부의 ‘정신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인구 중 평생 한 번 이상 불안장애를 겪은 사람의 비율이 9.3%로 나타났다. 이는 성인 10명 중 1명 가까이가 일생에 한 번은 불안장애를 경험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팬데믹 이후 사회적 고립감과 경제적 불확실성이 더해지면서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률이 급증하는 추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최신 데이터에 따르면,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병원을 찾은 환자 수는 2023년에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이러한 증가는 특히 20대와 30대 청년층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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