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의 아우성은 나의 고요에 닿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대에게.
국가의 삼권(三權)은 서로를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며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함대가 전복되지 않도록 떠받치는 세 개의 섬과 같다. 입법, 행정, 사법은 보이지 않는 해류와 바람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바다를 이룬다. 그러나 어느 한 섬이 스스로를 대륙이라 착각하고, 다른 섬들을 자신의 식민지로 삼으려 할 때, 바다는 성난 파도로 응답하고 배는 항로를 잃는다.
지금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바로 그런 고립된 섬, 아니 스스로 신성불가침의 성역이라 선포한 외로운 요새가 되어가고 있다. 내란 혐의로 탄핵된 대통령이 일으킨 12.3 불법 비상계엄이라는 국가적 참사 앞에서, 그리고 연이은 1.19 서울서부지법 폭동이라는 사법 유린 사태 앞에서, 내란 피의자 윤석열의 손으로 임명된 대법원장 조희대는 시종일관 침묵했다. 때로 침묵은 그 자체로 메시지다. 그것은 “그대들의 아우성은 나의 고요에 닿지 않는다”는 오만한 선언이었고, 헌법 수호의 책임을 방기한 비겁한 직무유기였다.
사법부의 침묵이 국민을 향한 것이 아니었음은 곧 증명되었다. 이들은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 이재명의 2심 무죄 판결을 뒤집기 위해, 대한민국 헌정 사상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사건을 처리해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하는 기민함을 보였다. 국민의힘은 이를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하루 아침에 당시 총리였던 한덕수를 대선 후보로 앉히려 무리한 시도를 하다 결국 당원 투표에서 막혔다. 이는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노골적으로 정치에 개입하고 국민의 참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사법 쿠데타’에 다름 아니다.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은 권력이, 대통령의 지명과 청문회라는 최소한의 검증 절차만으로 막강한 권한을 손에 쥔 그들이, 감히 국민의 선택을 재단하려 든 것이다.
역사적으로 사법 권위는 종종 신(神)이나 왕(王)에게서 비롯되었다. 이 신성한 배경은 법과 판사에 대한 무의식적인 ‘신격화’의 뿌리가 되었다. 계몽주의 이후 사법부는 독립된 축으로 자리 잡았지만, 판사는 여전히 ‘법을 말하는 입(la bouche de la loi)’, 즉 개인의 감정이나 의지를 배제한 중립적 존재라는 이상 속에 머물렀다.
하지만 법 조문은 현실의 모든 구체성을 담지 못하며, 그 ‘해석’의 공간에 판사라는 ‘인간’이 개입한다. 법복을 입었다고 해서 인간의 심리적, 사회적 한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확증 편향, 소속 집단의 시각에 동조하는 집단사고는 물론, 권력의 자리에 오래 머물다 보면 스스로를 오류 없는 존재로 여기는 ‘신(神) 콤플렉스’에 빠지기 쉽다. 자신들의 판단이 곧 사회의 정의라 믿고, 그에 반하는 모든 목소리를 불순한 도전으로 치부하게 되는 것이다.
조희대 대법원장과 사법부가 보여주는 ‘너희들이 법에 대해 뭘 알아?’라는 식의 안하무인 태도는 바로 이 위험한 심리 상태를 투명하게 드러낸다. 그들에게 ‘사법부의 독립’이란, 국민으로부터의 독립, 책임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듯 보인다.
민주주의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권력을 분산시키며 서로를 감시하게 함으로써 그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위대한 발명품이다. 행정부와 입법부가 선거를 통해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것과 달리, 사법부는 그 견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 구조적 맹점이야말로 그들이 스스로를 ‘완전무결’한 존재로 착각하게 만드는 가장 큰 토양이다.
진정한 ‘사법의 정의’와 ‘사법부의 독립’은 법이라는 성채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닫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성채의 문을 활짝 열고, 자신들의 판단이 과연 시대의 양심과 상식에 부합하는지 끊임없이 묻고 성찰하는 것이다. 판사도, 대법원장도 실수할 수 있고, 부정한 유혹에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데서 진정한 권위는 시작된다. 실수했다면 사과하고,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 그것이야말로 무너져 내린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법복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법의 수호자가 아니라 법의 기생충일 뿐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선언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문장은 수많은 피와 눈물로 써 내려간 우리 역사의 첫 문장이다. 이제 신좌에 오른 판사들에게 이 문장을 되돌려줄 때이다. 그들의 권력이 신이나 군주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이름 없는 시민들의 주권으로부터 잠시 위임받은 것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
정의의 여신이 눈을 가린 이유는, 판결의 대상이 누구인지 보지 않기 위함이지, 판결을 내리는 자기 자신과 그 판결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얼굴을 외면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제 그 안대를 벗고, 광장에 선 국민의 눈을, 시대의 아픔을, 그리고 무엇보다 법복 속에 숨겨진 자기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을 직시하라. 판사들이여, 신좌에서 내려와 광야에 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