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히토 히로부미, 루비오 총독의 부활

제국의 칼날은 왜 항상 '동포'의 얼굴을 하고 오는가

by 조하나

2026년 1월 6일, 워싱턴 포스트(WP)의 헤드라인 하나가 전 세계 스마트폰 화면 위로 떠올랐다.


"Marco Rubio, the Viceroy of Venezuela (마르코 루비오, 베네수엘라의 총독)."


눈을 의심케 하는 단어였다. '총독'이라니. 대영제국이 인도를 통치할 때나, 스페인이 남미를 식민지로 삼았을 때 사용하던 낡고 먼지 쌓인 칭호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두로 정권이 붕괴한 베네수엘라를 "직접 운영하겠다"고 선언하고,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에게 통치 전권을 위임한 순간, 이 죽은 단어는 21세기의 가장 뜨거운 정치 용어로 부활했다.


지구 반대편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에게 '총독'이라는 두 글자는 뼈아픈 역사의 상흔을 건드리는 방아쇠이자 트라우마 가득한 단어다. 우리는 1910년, 남산에 들어선 '조선총독부'가 한 민족의 영혼을 어떻게 짓밟았는지 기억한다. 그 기억을 안고 사는 한국인들에게 루비오 장관이 베네수엘라를 통치하러 간다는 소식은 남의 나라 뉴스가 아닌, 역사의 섬뜩한 데자뷔다.


하지만 이 뉴스에서 가장 뼈아픈 통증을 느껴야 할 나라는 사실 한국이 아니라, '총독'을 파견한 당사국인 미국이어야 한다.







미국의 기억상실증: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다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바로 그 '총독'의 통치에 피를 토하며 저항해 세워진 국가이기 때문이다. 18세기, 북아메리카의 13개 식민지에는 영국 국왕 조지 3세를 대리하는 '왕실 총독'들이 파견되어 있었다. 그들은 식민지 의회의 결정권을 무시하고, 본국의 이익을 위해 세금을 거두었으며 군대를 주둔시켰다.


1776년 토머스 제퍼슨이 작성한 <미국 독립선언서>는 고귀한 철학적 선언이기 이전에, 본국 파견 통치자들의 전횡에 대한 구체적이고 신랄한 고발장이었다. "그들은 우리의 동의 없이 입법권을 행사했고, 우리의 의회를 해산시켰으며, 우리를 재판 없이 처벌했다." 미국의 건국 정신은 '낙하산 통치자'를 거부하고, 스스로 통치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 속에서 탄생했다.


그런데 250년이 지난 2026년, 그 '혁명가들의 후예'가 자신들이 그토록 경멸했던 '조지 3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리고 자신들이 총칼로 몰아냈던 '왕실 총독'의 완장을 국무장관에게 채워 베네수엘라로 보낸다. 역사는 이토록 잔인한 순환고리를 그린다. 억압받던 자가 힘을 얻으면 가장 효율적인 억압자가 된다는 끔찍한 진실을, 우리는 마르코 루비오의 총독 임명에서 목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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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션샤인>과 이토 히로부미의 그림자


미국이 1776년의 기억을 잃어버린 지금, 한국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는 제국의 야욕 앞에서 풍전등화와 같았던 구한말의 '황혼'을 다룬다. 드라마 속에서 조선의 주권을 야금야금 갉아먹던 외부의 거대한 힘, 그 정점에 서 있던 인물이 바로 이토 히로부미였다.


루비오에게 붙여진 '총독'이라는 별칭은, 1905년 을사늑약 직후 이토 히로부미가 맡았던 '통감'이라는 직책과 닮아 있다. 당시 이토 히로부미는 무작정 총칼을 앞세우지 않았다. 그는 '동양 평화'와 '조선의 보호'라는 세련된 외교적 수사를 앞세워,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내정을 장악했다. 그는 스스로를 '문명화된 지도자'로 포장하며, 조선을 '직접 운영'하려 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비극은 이토 히로부미라는 '선진국에서 온 관리자'가 조선의 시스템을 장악하면서 시작되었다. 그가 파견된 후, 대한제국의 군대는 해산되었고 사법권은 넘어갔으며, 결국 국권 피탈이라는 파국을 맞았다.


2026년의 마르코 루비오 역시 '민주주의 회복'과 '재건'이라는 명분을 내세운다. 하지만 주권 국가의 정부를 배제하고 미국이 '직접 운영'하겠다는 발상은, 120년 전 이토 히로부미가 남산 통감부에서 조선을 내려다보며 가졌던 오만함과 무엇이 다른가. 루비오가 베네수엘라에 도착하는 순간, 그는 21세기의 이토 히로부미가 되어 또 다른 비극의 서막을 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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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미국인, 유진 초이와 루비오의 갈림길


이 지점에서 드라마의 주인공 '유진 초이'는 지금의 마르코 루비오를 이해하는 가장 완벽한 대척점이자 텍스트가 된다.


유진 초이는 조선의 노비 출신으로, 어린 시절 처참하게 버림받고 미국으로 탈출해 미 해병대 장교가 되어 돌아온다. 검은 머리에 황색 피부를 가졌지만,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며 성조기 아래 맹세한 '미국인'이다. 당시 조선인들에게 그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생김새는 우리와 같은데, 속은 저들의 것이다." 우리의 약점을 가장 잘 아는 내부자이자, 우리를 짓밟을 힘을 가진 외부자.


지금 베네수엘라의 총독으로 임명된 마르코 루비오 역시 '쿠바계 미국인'이다. 베네수엘라 사람들과 같은 스페인어를 쓰고, 같은 라틴 아메리카의 피가 흐르며, 가톨릭 문화를 공유한다. 제국은 영리하게도 금발의 백인 대신, 현지인과 가장 닮은 얼굴을 한 대리인을 선택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에서도 민중을 가장 악랄하게 괴롭혔던 건 종종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던 조선인 형사들이었다. 루비오의 정체성은 베네수엘라를 가장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무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와 현실은 결정적으로 다르다. <미스터 션샤인>의 유진 초이는 결국 제국의 제복을 벗고 핏줄인 조선을 선택했다. 그는 "합시다, 러브(Love)"라 말하며 무너져가는 나라를 위해 총을 들고 산화했다. 그것은 낭만적인 판타지였다.


현실에는 그런 낭만이 없다. 루비오는 조상의 땅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땅을 제국의 질서에 편입시키기 위해 돌아간다. 드라마 속 유진 초이가 의병이 되었다면, 현실의 루비오는 의병을 토벌하러 가는 '총독'이자 '이토 히로부미'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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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기면 되찾을 수 있으나, 내어주면 되돌릴 수 없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의병들은 외쳤다. "빼앗기면 되찾을 수 있으나, 내어주면 되돌릴 수 없다."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자유의 아들들(Sons of Liberty)'이 외쳤던 구호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


1776년의 미국인들이 그토록 혐오했던 '총독 통치'를, 2026년의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강요하고 있다. 역사의 아픈 상처를 가진 한국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당신들의 조상이 피 흘려 싸웠던 그 '괴물'이, 이제는 당신들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라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유진 초이는 사랑하는 여인과 조선을 지키기 위해 희생했다. 그는 이방인이었으나 끝내 조선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


지금 베네수엘라로 향하는 마르코 루비오 총독은 어떤 역사로 남을 것인가.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그를 보며 무엇을 느낄까. 100년 전 조선의 의병들이 느꼈던 비장함과, 250년 전 미국의 건국자들이 느꼈던 분노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 온다고 했던가. 하지만 주권을 잃은 약소국에게 역사는 결코 희극일 수 없다. 우리가 100년 전 겪었던 그 참혹함이, 지금 카라카스의 거리에서 피로 쓰인 리얼리티로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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