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국가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가

지상 위에 낙원은 없다. 혐오와 위선의 땅을 떠나 바다로 들어간 이유.

by 조하나


꼬리표의 딜레마


최근 온라인 토론 공간에서 기묘한 난타전을 목격했다. 발단은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이 비무장 시민을 총격해 사망케 한 뉴스였다. 그 비극적인 소식 아래, 한 러시아인이 분노에 찬 댓글을 남겼다. "이건 명백한 살인이다. 국가 폭력이다."


그러자 순식간에 수십 개의 댓글이 빗발쳤다. 여론의 화살은 미국 요원이 아니라 댓글을 쓴 러시아인에게 향했다. "너희가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하고 있는 짓은 살인 아니냐?", "러시아인이 인권을 논할 자격이 있나?"

궁지에 몰린 러시아인은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러시아가 곧 푸틴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광기 어린 독재자와 평범한 국민을 동일시하지 말라."


재미있는 건 그다음이었다. 방금 전까지 그를 공격하던 미국인들이 그 논리에는 묘하게 동조하며 방패를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맞아, 미국 정부가 하는 짓이 곧 미국인 전체의 뜻은 아니지. 트럼프가 우리 모두를 대표하지 않듯이."


이 모든 걸 지켜보던 제3자, 한국인인 나는 헛웃음이 터졌다. 남의 나라가 저지른 죄에는 엄격한 연좌제를 씌워 비난하면서, 정작 자신이 속한 국가의 죄를 물을 때는 "나는 정부와 다르다"며 꼬리를 자르는 그 뻔뻔한 이중성. 우리는 타인을 바라볼 때 그 뒤에 서 있는 거대한 국기를 먼저 보지만, 거울 속의 자신을 볼 때는 국기를 지운 '선량한 개인'만을 보고 싶어 한다.


이 촌극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 모든 것에서 다른 형태로 언제나 벌어지고 있다. 과연 우리는 '국가'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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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력 지대의 환상


태국 남동부의 외딴섬, 꼬따오. 지도 앱을 켜고 확대에 확대를 거듭해야 겨우 점 하나로 찍히는 그곳. 세상의 규율이 닿지 않는 '무중력 지대'처럼 보이는 섬에는 손바닥만 한 경찰서 하나와 '동네 홍반장'처럼 느긋한 경찰 몇 명이 공권력의 전부였다. 그 느슨한 틈새로 전 세계의 방랑자들이 모여들었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서 도망쳐 온 사람들이었다. 빡빡한 도시의 일상에서, 지루한 의무에서, 혹은 국가라는 거대한 시스템에서.


나는 그 섬에서 마침내 자유를 얻었다고 믿었다. '대한민국'이라는, 때로는 자랑스럽지만 때로는 숨 막히는 그 무거운 꼬리표를 떼어내고, 그저 '나'라는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뉴스로 인터넷이 뜨겁게 달궈질 때도, 섬의 공기는 비현실적으로 평온했다. 땅 위의 비극은 바다 건너 남의 일이었고, 매일같이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우리 다이버들에게 중요한 건 오늘의 조류와 시야뿐이었다.


그 믿음이 절정에 달했던 건 세르게이와 라나의 결혼식 날이었다. 러시아인 신랑과 우크라이나인 신부. 고국에서는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적국의 국민들이었지만, 야자수 아래 선 그들은 그저 사랑에 빠진 두 남녀일 뿐이었다. 전쟁이라는 거대 서사도 개인의 사랑을 찢어놓지는 못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했다. 그래, 국경이란 건 지도 위에 그어 놓은 잉크 자국에 불과해. 우리는 여기서 모두 하나야. 나는 그렇게 순진하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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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라는 이름의 '작은 지구', 그리고 혐오의 먹이사슬


하지만 그 '위 아 더 월드'의 환상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섬은 지상낙원이 아니라, 전 세계의 편견과 혐오가 압축된 '작은 지구'였으며, 나 역시 그 지독한 중력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인간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나를 배신한 건 내 안의 '한국인'이었다. 나는 국적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쿨한 세계시민인 척했지만, 일본인 친구와 중국인 친구를 마주할 때마다 내 안의 DNA에 새겨진 미묘한 삼각관계가 꿈틀거렸다. 과거사에 대해 사과 한마디 없이 새침하고 깔끔한 척하는 일본인을 볼 때면, 나는 어느새 중국인 친구와 눈빛을 교환했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그 끈끈한 '피해자 연대'. 우리는 일본인의 겉과 속이 다른 친절함 뒤에 숨은 제국주의적 오만을 경멸하며 은근히 의기투합했다.


반면, 중국인들이 공중도덕을 무시하거나 경우에 어긋난 행동을 할 때면, 나는 나도 모르게 일본인 쪽으로 붙었다. "역시 쟤네는 안 돼"라는 눈빛을 일본인 친구와 주고받으며, 우리는 '문명인' 혹은 '선진국 시민'이라는 우월감 속에 잠시 얄팍한 공범 의식을 느꼈다. 저열한 열등감과 얄팍한 우월감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 섬까지 와서도 나는 여전히 역사와 문화가 쳐놓은 그물에 걸린 물고기였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소위 '서구 선진국'에서 왔다는 그들의 내면은 더 복잡하고 기괴한 '혐오의 먹이사슬'로 얽혀 있었다. 영국인 친구는 마치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자신의 성 같은 집 사진을 보여주며 은근히 귀족적인 태도를 과시했다. 하지만 그는 같은 영국인임에도 머리 색이 붉다는 이유로 친구를 '진저(Ginger)'라 부르며 조롱했고, 웨일스 출신 친구는 촌놈 취급하며 대놓고 무시했다. '영국'이라는 하나의 깃발 아래서도 그들은 촘촘하게 계급과 출신을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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