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미국은 죽었다

제83회 골든글로브 2026: 침묵하는 할리우드와 제국의 장례식

by 조하나

축제의 가장자리에서 들려오는 비명


2026년 1월 11일, 로스앤젤레스의 밤은 찬란했다. 제83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붉은 카펫 위로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 샴페인 잔이 부딪치는 청아한 소리, 그리고 턱시도와 드레스를 휘감은 할리우드 스타들의 웃음소리는 마치 영원히 끝나지 않을 파티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화려한 빛의 장막을 걷어내면, 지금 미국의 현실은 썩어 문드러진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악취로 진동하고 있다.


시상식이 열리기 불과 며칠 전, 미니애폴리스의 차가운 거리에서는 37세의 이민자 르네 굿(Renee Good)이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의 무자비한 총격에 살해당했다. 그녀의 피가 아직 마르지도 않은 시점, 할리우드의 엘리트들은 그 죽음을 철저히 외면한 채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낡은 명분을 방패 삼아 축배를 들었다.


마치 애플 TV+의 드라마 <플루리부스>에 등장하는, 하이브 마인드에 감염된 인류를 보는 듯한 기시감이 든다. 개별적인 고통과 비극을 감각하지 못한 채, 오직 집단적인 쾌락과 맹목적인 안온함 속에 유폐된 그들의 모습에서 소름 끼치는 이질감이 느껴진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회는 이미 죽은 사회다. 오늘 골든글로브는 단순한 시상식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파산한 제국의 장례식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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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된 양심, 마크 러팔로의 구역질


이 거대한 기만과 위선의 도가니 속에서, 유일하게 '구역질'을 참지 못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배우 마크 러팔로였다. 그의 가슴에 달린 작고 붉은 'Be Good' 배지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해당한 르네 굿을 향한 추모이자, 침묵을 강요하는 시스템을 향한 소리 없는 비명이었다. 남들이 자신의 영화를 홍보하고 디자이너의 드레스를 자랑할 때, 그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전례 없는 분노를 토해냈다.


"트럼프는 범죄자이자 강간범, 소아성애자(엡슈타인)를 보호합니다. 그는 최악의 인간입니다. 지금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를 이 남자의 도덕성에 맡기고 있습니다. 미국은 정상이 아닙니다."


그의 외침은 처절했다. 미국 민주당은 패배감에 젖어 흩어졌고, 지식인들은 무기력한 침묵으로 도피했으며, 부자들은 권력의 눈치를 보며 납작 엎드린 시대다.


자신의 유명세가 가진 힘을 알고 있는 러팔로만이 두려움 없이 나섰다. 시상식 내내 금방이라도 구토할 것 같은 그의 표정은, 동료들이 현실을 외면하고 연기하는 '우아한 척'에 대한 생리적인 거부반응이었을 것이다. 모두가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홀로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만큼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일은 없다. 그래서 그의 분노는 더욱 숭고하고, 동시에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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