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입은 자들의 '연대'와 '문화'의 힘
우리는 인류의 이성과 도덕성이 단 한 명의 권력자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소셜미디어로 이란의 9천만 시민을 향해 "내일 밤 한 문명을 말살시킬 것이다"라고 선언했던 그 화요일 밤의 기억은 전 세계에 거대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남겼다. 수천 년을 이어온 찬란한 페르시아 문명과 9천만 명의 평범한 삶이, 스마트폰 화면 너머 권력자의 손가락 하나에 의해 지도에서 지워질 뻔한 참담한 생중계였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약 3억 4,500만 명에 달하는 미국 인구 중 아이를 키우는 수많은 부모는 자국의 대통령이 내뱉은 '문명 말살'이라는 광기 어린 선언을 자녀들에게 어떻게 설명했을까? "우리의 안전을 위해 저 먼 나라의 역사를 통째로 지워버려야 한다"고 가르쳤을까? 아니면 "그저 정치적인 쇼일 뿐이니 걱정하지 마라"며 아이의 귀를 막아주었을까? 어느 쪽이든 그것은 타자의 생명을 도구화하는 비정한 교육이었을 터다.
반면, 같은 시각 이란의 부모들은 공포에 질려 눈을 동그랗게 뜬 아이들에게 무엇이라 말했어야 했을까? "우리가 투표한 적도 없는 저 먼 나라의 통치자가 내일이면 우리의 숨을 거두어갈지도 모른다"고, "수천 년을 이어온 우리 역사와 문화가 한순간에 잿더미가 될 것"이라고 사실대로 말할 수 있었을까? 죽음의 문턱에서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부모들이 삼켜야 했던 그 절망적인 언어들은 누가 보상할 수 있는가.
그 밤, 평범한 이란 시민들은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시간을 극한의 무력감 속에서 견뎌야 했다. 반면 폭격 데드라인을 앞두고 돌연 휴전을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의 안락한 관저에서 뉴스 시청률을 확인하며 자신의 '쇼'를 즐겼을 것이다. 이 끔찍한 간극은 철저한 비대칭에서 온다. 전쟁 당사국임에도 미국은 자신들의 영토에 단 한 발의 폭탄도 떨어질 염려가 없는 절대적 안전지대에 있다. 미국 땅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평생 상상조차 못 할 압도적인 죽음의 공포를 이란 시민들은 맨몸으로 감당해야 했다.
어떤 미국인들은 "나는 이 전쟁과 무관하며 트럼프에게 투표하지도 않았다"고 항변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억압적인 신정 체제 아래서 권력을 향해 제대로 된 투표 한 번 해본 적 없는 이란의 서민들이, 어느 날 갑자기 문명 통째로 말살당하리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아야 했던 저 부조리는 대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9천만의 이란인들의 문명을 12시간 후 말살하겠다고 한 대통령을 둔 미국인, 그 누구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민들의 거대한 무책임과 묵인이 방치한 권력은 결국 타인의 생존마저 철저한 오락거리로 소비해 버렸다. 누군가에게는 세계의 종말이 다가오던 피 말리는 순간이, 절대 권력자에게는 그저 시청률을 확인하는 가벼운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한 장면에 불과한 참담한 비극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타인의 생존을 인질로 삼아 공포를 조장하는 이 끔찍한 엔터테인먼트화 현상은 우리에게 깊은 철학적, 인문학적 메스꺼움을 안겨주었다. 제국주의적 오만이 빚어낸 이 야만의 밤은 역설적으로 거대한 무력을 앞세운 기존의 세계 질서가 그 수명을 다했음을 알리는 명백한 몰락의 신호탄과도 같았다.
이번 미국과 이란의 전쟁은 시작부터 끝까지 명백한 불법 침공이자 텅 빈 명분 위에 세워진 모래성이었다. "미국에 임박한 이란의 위협"이라는 참전의 핑계는 지난달 미국 정보당국 수장의 사임 폭로를 통해 완벽한 거짓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특히 트럼프의 핵심 충성파(MAGA) 인사였던 조 켄트(Joe Kent) 전 국가대테러센터(NCTC) 센터장이 사표를 던지며 남긴 폭로는 결정적이었다. 그는 "이란이 선제공격을 준비했다는 어떠한 정보도 확보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이스라엘이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 행동을 자극했다"고 양심선언을 했다. 가장 가까운 최측근 안보 라인조차 묵인할 수 없었던 이 억지 명분은, 2003년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조작된 정보로 무수한 생명을 앗아갔던 참담한 과오를 정확히 반복한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의 핵 위협을 구실로 삼았지만, 애초에 오바마 시절의 핵 합의(JCPOA)를 2018년에 일방적으로 폐기해 이란이 다시 우라늄 농축에 손을 대게 만든 장본인은 다름 아닌 트럼프 본인이었다. 스스로 평화의 안전장치를 부수어 놓고, 그 폐허에서 피어난 위기를 다시 전쟁의 핑계로 삼는 자가당착이다.
이 오만한 전쟁은 초강대국 미국의 처참한 민낯과 물리적 한계만을 폭로하고 끝났다. 세계 경제의 패닉을 불러온 호르무즈 해협 봉쇄 앞에서 미국은 압도적인 군사력을 쏟아붓고도 글로벌 유가의 눈치를 보느라 이란의 핵심 인프라는 건드리지도 못했다. 첨단 무기로 하르크섬 등 90여 개의 군사 시설을 타격하면서도 정작 이란 경제의 숨통인 석유 시설 주변만 맴돌았던 기형적인 폭격은, 거대한 제국주의조차 자본 시장의 붕괴 앞에서는 철저히 무기력해짐을 증명했다.
게다가 평화 협상의 전말을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가 실시간으로 보고받고 통제하며 이를 전 세계에 자랑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지난 주말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미국과 이란의 휴전 협상이 21시간 만에 결렬된 직후,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 대표였던 JD 밴스 부통령이 이슬라마바드를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내게 직접 전화를 걸어 협상 결렬 과정을 상세히 보고했다"며 영상 메시지를 통해 노골적으로 떠벌렸다. 이 경솔한 과시는 이란의 압바스 아락치 외무장관에게 "네타냐후의 전화 한 통이 협상의 방향을 틀어버렸다"며 모든 책임을 미국과 이스라엘에 떠넘길 완벽한 핑곗거리만 쥐여준 셈이 되었다.
여기에 더해, 최근 확인된 이스라엘의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는 이 기막힌 촌극의 결말이 결국 파국일 수밖에 없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현재 이스라엘 국민의 60% 이상이 이란과의 휴전에 반대하며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답했고, 70%에 달하는 이들이 레바논에 대한 군사 작전을 멈춰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는 곧 설령 미국과 이란 사이에 극적인 휴전 협상이 타결된다 한들, 이 호전적인 국내 여론을 등에 업고 전쟁으로 권력을 연명하는 이스라엘 정권이 언제든 그 합의를 무참히 깨버릴 것임을 의미한다. 초강대국의 미국 현직 부통령이 적국과의 아슬아슬한 협상 직후 자국 국민보다 이스라엘 정상에게 먼저 상황을 낱낱이 보고하는 기막힌 현실 속에서, 미국의 외교적 주권과 체면은 철저히 유린당했다.
무엇보다 뼈아픈 대목은 이 불법 전쟁이 낳은 최악의 역설에 있다. 트럼프는 마치 이란 시민들의 구세주가 될 것처럼 떠들었지만, 그의 만용은 오히려 이란 정권에게 자신들도 모르던 '호르무즈 해협 통제'의 절대적 가치를 일깨워주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침공은 이란의 전략적 가치와 잠재적 힘을 한층 더 키워준 꼴이 되었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외부 위협은 흔들리던 신정 지배 세력에게 내부를 억압할 완벽한 명분을 쥐여주었다. 자유를 부르짖으며 거리로 나섰던 시민들은 이제 국가 비상사태라는 구실 아래 '미국에 부역하는 반역자'로 몰릴 처지에 놓였다. 부패한 정권을 향하던 대중의 분노를 외부의 적에게 돌리며 체제의 수명을 끈질기게 연장해 준 덕분에, 이란 시민들의 자유와 자생적인 민주화의 희망은 영영 짓밟히고 말았다. 권력자의 무책임한 불장난이 빚어낸 참혹한 청구서를 결국 가장 힘없는 시민들이 피로 치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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