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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간 자리

섬을 보고 듣는 시간.

by 조하나


파라다이스에도 때론 비바람이 불고 파도가 친다. 이따금 섬을 지나가는 여름 태풍이다. 열흘 넘게 집 밖을 안 나갔다. 문고리 겨우 반 바퀴 돌리면 되는 걸 그걸 못 해서. 그 와중에도 쌀과 김치가 냉장고 한가득 있으니 배를 곯진 않는다. 먹을 거 다 먹고, 할 거 다 하면서 보낸 태풍의 시간, 그리고 울적하고 무거운 시간.


이 작은 섬 꼬따오에 태풍이 지나가는 동안, 나에게도 힘든 시간이 찾아왔다. 지난달 강사개발과정을 가르쳤던 친구들 중 영국 친구 한 명이 나에게 심각한 성차별, 인종차별적 발언과 행동을 했던 것. 2주라는 호흡이 긴 강사 코스이기에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트레이너로서 끝까지 인내심을 발휘해 얼굴 한 번 안 구기고 친구들 모두 강사로 만들었다. 이후, 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눈치채고 있었던 그룹 중 하나가 다이빙 센터 보스에게 알렸다.


영국인 보스는 나에게 인종차별을 가한 강사 후보생이었던 친구가 영국 출신이라 더욱 마음이 쓰인 듯했다. 어릴 적 영국 남부에서 맨체스터로 이사 했을 때 자신의 억양과 생김새로 괴롭힘을 많이 당했다는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며, 내가 당한 인종차별을 공감하려 애썼다. 마음은 고맙지만, 우린 서로 결이 다른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누구의 위로나 공감으로 쉬이 나아질 일도 아니다.


보스는 왜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냐며, 온 마음을 다해 나를 지지하고 위로한다고 했다. 그리고 일주일 휴가를 줬다. 팬데믹 이후 태국을 찾는 해외 관광객들이 많아지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보스는 나의 몸과 마음의 안정을 최우선으로 뒀다. 아무것도 생각지 말고 마음을 추슬러 건강해지라고. 문제가 생기면 자책부터 하는 나를 잘 아는 그다. 휴가를 주며 쉬라고 해놓고도 마음이 안 놓였는지 보스는 매일 같이 나의 끼니를 챙기며 안부를 물었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성(性), 그리고 피부 색깔, 출신 국가에 따라 상대가 눈에만 보이는 얕은 정보와 자신이 어릴 적부터 받은 교육과 사회 시스템을 배경으로 나를 판단하는 것만큼 무력한 게 세상에 또 없다. 지난 8년 간, 다이빙 강사로서 이 때문에 나는 더 노력해야 했고 증명해야 했다. 내가 미국, 유럽 출신의 백인 남성이라면 안 해도 될 노력이었을까. 죽을 때까지 백인 남성으로 살아볼 수 없을 나는, 이번 생엔 끝까지 답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인종차별과 성차별로 인한 상처는 그만큼 회복이 느리고 더디다.


비바람이 특히 더 거세지는 밤이면 이따금 섬 전체가 정전이다. 2022년에 정전이라니. 그렇다, 이곳은 놀라울 만큼 휘황찬란한 도시의 문명과 거리가 먼 곳이다. 이 섬에 8년째 살고 있는 나는, 그나마 이런 정전도 예전에 비해 횟수가 비교적 줄어들고 있음에 놀랍고 감사할 따름이다. 정전이 되면 나는 노트를 펼치고 펜을 든다. 얼마만의 종이이고, 펜이고, 손글씨인가. 어색함도 잠시, 스포티파이도, 넷플릭스도, 한글 프로그램도, 워드 파일도 사라진 세상, 비로소 내 모든 감각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종이에 글씨를 쓸 때의 손가락, 팔 근육, 글씨를 쫓는 시선, 서걱거리는 소리, 모두 생생해진다.


섬을 지나는 태풍의 소리를 온전히 듣게 된다. 아니, 섬의 태풍은 ‘보는’ 게 맞다. 바람은 소리를 만든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의 커다란 빌딩 사이 부딪히는 바람은 ‘휘잉- 휘잉-’ 차갑고 날카로운 소리였다. 하지만 이 섬의 바람은 나무와 잎을 움직여 ‘차르륵- 차르륵-’ 하는 소리를 낸다. 시꺼먼 구름이 아주 낮고 빠르게 지나간다. 섬의 초록들은 소리를 내며 춤을 춘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아도 괜찮은 삶의 스킬과 약간의 용기만 있다면 자유는 누구나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자유의 대가는 외로움이다. 자유를 좇아 태국 남동부 외딴 작은 섬까지 닿게 된 내가 여전히 불안하고 방황하고 휘청거리는 이유는 아직 내가 자유를 가질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내가 아직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책하고 원망하고 후회하지 않는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오랜 시간 이 섬에서 그 크고 깊은 바다에 매일 뛰어들며 배운 게 있다. 실패하더라도 원인은 찾되 책임을 묻지 않을 것, 안 되는 건 때론 흘려보낼 것, 사람들을 떠나도록 놓아줄 것, 정답을 찾으려 노력하되 그것만을 쫓지 않을 것, 내 기준에 맞춰 설명해주길 누군가에게 기대하지 말 것,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 누구보다 자신에게 가장 친절할 것.


가장 삼키기 힘든 알약이지만 결국 내 몸과 마음을 낫게 할 것이다. 오랜만에 문고리 반 바퀴를 돌려 집 밖을 나섰다. 태풍이 막 지나간 섬은 막 샤워를 마친 모습처럼 그 어느 때보다 반짝반짝 눈부시다. 스쿠터를 몰고 친구네 샵으로 향하는데 얼굴과 머리칼에 닿는 바람과 눈 마주치면 인사하는 사람들의 미소가 반갑고 고맙다. 일주일 만에 누군가 앉아 대화를 하니 내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린다. 동굴 안에서 나 혼자 이야기하는 느낌이다. 저 친구는 지금, 내 목소리가 들리는 걸까. 목소리와 목소리가 있는 사람이 만나 이야기를 한다는 건 바로 소리를 주고받는 것이다. 나는 태풍이 지나는 섬에서 일주일 동안 바람이 만들어내는 바다와 정글의 소리를 들었다. 때론 그런 종류의 대화가 나는 더 좋다. 그리고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선셋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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