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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건 결국 로큰롤이니까

by 조하나


결국,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려고 한 것부터가 문제였다. 잘 벌면 잘 버는 대로 문제고, 못 벌면 못 버는 대로 문제다. 경제는 돌고 도니 누군가 벌면 누군가는 잃는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다른 이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을 내 주머니에 넣을 생각을 시작하는 지점이 게임 체인저다. 못 벌면 잘 벌고 싶고, 잘 벌면 더 잘 벌고 싶다. 좋아하는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돈과 연결되는 순간, 낭만은 끝이다.


한국에서 잡지사 에디터 생활을 하며 부와 명예를 얻은 수많은 화려한 아티스트를 만났다. 고통 없이 그 반짝이는 것들을 들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버는 사람의 상징인데 말이다. 이곳 태국 작은 외딴섬에서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다이빙이 좋아서, 다이빙을 계속하기 위해 강사가 되어 다이빙 교육을 하다 결국 현실에 눈을 뜨고 떠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아무도 이들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 아니 전 세계 젊은이들은 ‘꿈’이라는 개념 자체에 의문과 불신을 품기 시작한다. 태어나 자라면서 “넌 꿈이 뭐니?” 하는 어른들의 질문은 “이다음에 커서 너는 뭐가 되어 돈을 벌거니?” 하는 말과도 같다. ‘꿈’은 곧 ‘직업’을 의미했고 ‘수입’을 의미했다. 젊은이들은 성인이 된 후,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내던져진다. 그리고 빠른 결론을 강요받는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내면의 고군분투는 분노, 혹은 무기력, 우울로 바뀌어 마음 깊은 곳에 침잠한다.


이십 대엔 나도 모르는 새 ‘화’의 씨앗을 심고 싹을 틔워 물과 비료를 주고 정성스레 키운다. 아니, 나도 모르는 새인지 내가 의도한 것인지는 아직도 확실치 않다. 삼십 대는 얄밉게도 아름답게 피운 ‘화’의 꽃을 어떻게든 감추고, 세상에서 ‘좋은 사람’으로 살아남고자 눈물겹게 노력한다. ‘좋은 사람’이 되어 사회에 꼭 필요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삼십 대 모든 이들의 공통점이다.


‘꾸준히, 그리고 오래’ 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이고도 어렵다. 꾸준히는 잘하지만 오래는 못 하는 나, 어째서일까. 늘 불안하기 때문이다. 불안은 실패에 대한 부담과 압박으로부터 생긴다. 지독히 신중한 성격의 나는 ‘실패’라는 만일을 늘 마음에 대비한다. 일을 해도, 사람을 만나도, 연애를 해도 늘 실패를 먼저 염두에 둔 탓에 결과적으로 오히려 더 많이 실패하게 됐다.


예상되는 실패나 에러가 너무 많을 땐 오히려 용감할 정도로 무모해진다. 내 인생에 크기도 무게도 큰 무모한 결정을 겁도 없이 툭, 해놓고, 대신 그 커다란 결정이 영향을 미칠 아주 세세한 순간을 빈틈없이 계획하고 준비하고 실행하는 편이다. 그렇게라도 나의 무모한 선택에 정당성과 동기를 부여하기 위함이다. 나의 방랑스러운 삶이 저절로 가능해진 게 아니다.


반대의 삶을 선택할 경우, 가장 큰 부작용은 권태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소비한다. 인간의 욕망을 연구하고 개발하고 경제로 환산해 관리하는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끝없이 소비하며 삶의 권태를 애써 외면한다.


사십 대는 어떤 시간일까. 마치 애초부터 없었다는 듯 마음 한구석 감춰뒀던 그 ‘화’의 꽃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배워야 할 시간이 아닐까. 다이빙 도중 우연히 나보다 수십 배나 커다란 고래상어를 만났을 때 내 삶의 이론이나 계획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매일매일 꾸준히 오래 다이빙을 하다 1년에 한 번 고래상어를 볼까 말까하는 다이버도 있고, 단 일주일 휴가 왔다가, 그것도 몇 번씩이나 고래상어를 만나는 다이버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공평하지 않다고 고래상어에 화를 내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그게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 삶의 키워드는 ‘밸런스’다. 사랑과 증오 간의 밸런스, 다이빙과 일상의 밸런스, 자유와 의무의 밸런스, 욕망과 절제의 밸런스, 스트레스와 릴렉싱의 밸런스, 그리고 모험과 정착의 밸런스. 동시에 꾸준함의 힘에 대한 확신을 인생의 경험으로부터, 삶을 살며 보고 배운 모든 사람들로부터 얻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덜 강박적일 것, 덜 계획할 것, 덜 준비할 것, 그리고 덜 기대할 것. 실패해도 원인은 찾되 책임을 따져 묻지 않을 것.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친절할 것.


모니카 마틴이 제임스 블레이크와 함께 한 노래 ‘Go easy, kid’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Cause, after all, no one’s in control. Go easy, kid, it‘s only rock and roll.’


모든 건 그저 로큰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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