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3일, 대한민국의 주권은 또다시, 더욱 노골적인 방식으로 능욕당했다. 2024년 12월 3일, 국가의 헌정 질서를 짓밟았던 내란수괴 윤석열.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으로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려지고, 한때 철창 안에 갇혔던 그가, 오늘 보란 듯이 투표소에 나타나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표를 행사하는 희대의 부조리극이 대한민국이라는 무대 위에서 버젓이 상영되었다. 그의 얼굴엔 일말의 수치심 대신, 모든 것을 조롱하는 듯한 엷은 미소마저 어렸다. 극우 유튜버의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져 12.3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자가 도대체 투표는 왜 한단 말인가?
2025년 6월 3일 조기대선, 투표소를 찾은 내란수괴 윤석열과 김건희
법치의 근간을 뒤흔든 자가 다시 법의 비호 아래 유유히 활보하는 이 현실. 일찍이 지귀연 판사의 손에 의해 그의 구속은 허무하게 풀렸고, 정의의 마지막 보루여야 할 검찰은 그 결정에 항고조차 포기하며 스스로 직무를 유기했으니, 이는 국가 시스템 전체가 내란의 공범으로 전락했음을 만천하에 공표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곁에는 온갖 의혹과 비리의 중심에 선 배우자 김건희가 그림자처럼 동행했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잘 짜인 각본처럼, 이 나라의 정의와 양심을 비웃는 한 폭의 그로테스크한 풍자화였다.
이 섬뜩한 데자뷔, 이 낯설지 않은 절망과 분노는 우리를 1987년, 그해 겨울의 참담했던 역사의 한 페이지로,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성찰의 골짜기로 인도한다.
1987년, 내란범 노태우의 대통령 당선
1987년, 피와 눈물과 함성으로 일궈낸 6월 민주 항쟁. 전두환 군사독재의 철권통치에 종언을 고하고 대통령 직선제라는 민주주의의 새벽을 맞이했으리라는 국민적 열망은 그러나, 그해 12월 대선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 학살의 핵심 책임자 중 하나였던 노태우가, 민주화의 열매를 가로채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군부독재의 망령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어떻게 내란의 주역이 또다시 국가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1987년 노태우 대통령 당선
첫째, 민주화 진영의 뼈아픈 자기 파멸적 분열이었다. 김영삼과 김대중, 당대 민주화 운동을 이끌던 두 거목은 국민의 간절한 염원이었던 후보 단일화에 끝내 합의하지 못했다. 그들의 개인적 야심과 정치적 과욕은 결국 민주주의를 열망했던 국민의 등에 비수를 꽂는 행위였으며, 이는 마치 잘 차려진 밥상을 스스로 엎어버린 것과 같은 어리석음의 극치였다. 독재 정권의 총칼 앞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민주화의 기세는, 안타깝게도 내부의 균열로 인해 스스로 무너져 내린 자멸의 기억으로 사그라졌다.
둘째, 군부와 기득권 세력의 조직적이고 교활한 반격이었다.퇴진하는 전두환 정권과 그를 둘러싼 군부, 정보기관, 관료, 재벌 등 기득권 카르텔은 자신들의 정치적 생존과 특권 유지를 위해 노태우를 ‘보통 사람’, ‘안정의 적임자’로 포장하는 데 모든 역량을 총동원했다. 6.29 선언은 민주화 요구에 대한 진정한 항복이 아니라, 위기를 모면하고 정권 재창출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한 기만적 술책에 불과했다. 여기에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과 같은 북풍 공작은 국민들의 안보 불안 심리를 극대화하며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어용 언론들은 연일 노태우 찬양과 야당 비방으로 여론을 호도하며 진실의 눈과 귀를 가렸다. 국가기관의 불법적인 선거 개입은 공공연한 사실이었으나, 그들의 외침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치부되었다.
셋째, ‘안정’이라는 허상에 대한 대중적 갈망과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 부족에서 온 정치적 미성숙이었다. 오랜 독재와 사회적 혼란에 지친 일부 국민들은 급진적인 변화보다는 점진적인 안정을 선호하는 심리를 드러냈고, 이는 결국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위대한 보통사람들의 시대’라는 노태우의 구호는 이러한 대중의 심리를 파고드는, 그 이면에는 추악한 기만이 숨겨진 선전이었음을, 우리는 너무 늦게야 깨달았다.
그리하여 1987년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향한 거대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내란의 책임자가 다시 권력을 잡는 모순과 부조리를 온몸으로 겪어내야만 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패배를 넘어, 정의와 양심이 패배하고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비극적 신호탄이었다.
내란범 노태우와 윤석열,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오늘, 2025년 6월 3일. 내란수괴 윤석열이 이죽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온갖 범죄 혐의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배우자와 함께 투표권을 행사하는 이 장면은, 1987년의 악몽을 더욱 참혹하고 노골적인 형태로 반복하고 있다. 과거의 역사에서 단 한 치의 교훈도 얻지 못한 채, 오히려 더욱 교묘하고 파렴치해진 방식으로 법치와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권력의 망령이 대한민국을 배회하고 있다.
여전히 친일‧적폐 청산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불의는 심판받지 않고 오히려 더욱 당당하게 활개 치는 역사의 모욕이 반복되고 있다. 정의는 땅에 떨어졌고, 법은 가진 자와 권력 있는 자들의 전유물, 혹은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한 눈치 보기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기득권 카르텔의 힘은 음지에서 양지로 나와 더욱 공고하고 뻔뻔하게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하고 있으며, 사법, 행정, 입법, 언론, 심지어 학계와 시민사회 일부까지 그들의 탐욕스러운 아성에 포섭되거나, 침묵이라는 이름의 소극적 동조로 그들의 만행을 용인하고 있다.
조희대와 대법관들은 오늘 대통령 선거 결과를 두 눈 똑바로 뜨고 보아라! 이 나라의 민주화엔 한 줌도 힘을 보태지 않았으면서, 골방에서 공부만 해 시험을 잘 친 것이 인생의 전부인 당신들이 '사법부의 독립'을 외치면서도 스스로의 말을 뒤집어 정치판에 뛰어들어, 감히 얼마큼의 국민적 지지를 받는 대통령 후보를 제거하려고 했는지. 당신들이 얼마나 오만하고 어리석은지를. 당신들이 무슨 짓을 하려 했는지를.
내란범 노태우와 윤석열,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과거의 권위주의가 총칼의 위협으로 국민의 입을 틀어막고 노골적인 폭력으로 민주주의를 짓밟았다면, 현재의 퇴행은 합법의 탈을 쓰고 시스템 내부에서부터 민주주의를 교묘하게 질식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악랄하다. 과거에는 ‘북풍’과 같은 안보 프레임으로 공포를 조장했다면, 이제는 소셜미디어를 타고 흐르는 가짜뉴스와 혐오 선동이 이성과 공동체를 파괴하며 대중을 분열시키고 고립시킨다.
과거의 독재가 언론을 직접 통제하려 했다면, 현재는 더욱 교묘한 방식으로 사법과 언론을 길들이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고립시키며, 심지어 자신들의 행위가 정의롭다고 강변하는 일종의 ‘신념형 파렴치’의 단계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은 끝내 대통령 선거에 나가는 후보가 내란 세력의 끊임없는 살해 협박을 받으며 3kg 방탄복을 입고 방탄유리 안에서 연설하는 혐오의 사회로 전락했다.
윤석열 개인의 후안무치를 넘어, 그를 비호하고 그의 내란 행위에 면죄부를 발행한 사법부와 검찰,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도 마치 남의 일처럼 방관하거나 냉소로 일관하는 사회 전체의 집단적 책임은 한국 민주주의의 근간이 송두리째 썩어 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그러나 멈출 수 없는 저항
우리는 언제까지 이 끝없이 반복되는 역사의 배신과 퇴행 앞에서 그저 절망하고 무릎 꿇어야만 하는가? 우리는 이 절망의 잿더미 속에서도 마지막 남은 분노의 불씨를 지펴 저항해야 한다. 그 저항은 단순한 분노의 폭발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향한 창조적 몸짓이어야 한다.
1987년의 뼈아픈 실패는 우리에게 값비싼 교훈을 남겼다. 분열은 곧 패배이며, 안일함은 불의의 승리를 가져온다는 것을. 오늘 내란수괴 윤석열과 김건희가 대한민국의 주권을 유린하며 투표소에 나타난 이 현실은, 우리에게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외면할 권리도 없음을 웅변하고 있다. 그의 투표는 주권의 행사가 아니라, 죽은 민주주의에 대한 조롱이자, 살아있는 국민의 양심에 대한 정면도전이다. 우리는 이 도전에 응답해야 한다.
헤밍웨이의 노인이 모든 것을 빼앗긴 바다에서 홀로 돌아왔을지라도 결코 패배하지 않았듯, 우리의 투쟁 또한 결과 이전에 그 과정의 치열함과 순수함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우리의 분노는 파괴가 아닌 창조를 향해야 하며, 우리의 슬픔은 연대의 힘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밀실에서 써 내려가는 진실의 기록 한 줄, 광장에서 터져 나오는 불굴의 함성 한마디, 부당함에 “아니요”라고 말하는 작은 용기 하나하나가 모여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다. 때로는 냉철한 분석으로, 때로는 뜨거운 연설로, 때로는 날카로운 풍자로, 때로는 서로의 어깨를 다독이는 따뜻한 위로로, 우리는 저항한다.
오늘 우리가 던지는 한 표 한 표는, 단순한 의사 표시를 넘어, 불의한 권력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자, 빼앗긴 정의를 되찾고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선언이다. 그것은 또한, 다음 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물려주겠다는 간절한 약속이다.
역사는 저절로 전진하지 않는다. 그것은 깨어있는 시민들의 피와 땀, 그리고 불의에 굴하지 않는 용기를 자양분으로 삼아 더디게 나아갈 뿐이다. 과거의 잘못을 명징하게 인식하고, 현재의 부조리에 치열하게 맞서 싸우며, 미래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이 지긋지긋한 역사의 악순환을 끊고 진정한 민주공화국의 새날을 열 수 있을 것이다. 그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하며, 때로는 모든 것이 칠흑 같은 절망 속에 잠긴 듯 암담할지라도, 우리는 결코 걸음을 멈추거나 돌아서지 않을 것이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 양심의 등불을 밝힌 수많은 눈빛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작은 손들을 맞잡을 것이기에. 그것만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역사적 소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