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우리는 유독 시리고 푸른빛을 띠던 밤들을 보냈다. 민주주의라는, 공기처럼 당연해서 누구도 그 소중함을 몰랐던 단어가 가쁜 숨을 몰아쉬던 밤. 2024년 12월 3일, 우리는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몇 마디의 말이 한 나라의 심장을 멈추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무력하게 목도해야만 했다. 우리는 그것이 한 개인의 광기라 믿고 싶었지만, 그 광기에 침묵으로 동조하고 권력의 부스러기를 줍기 위해 기꺼이 박수를 보낸 이들이 존재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하나의 땅 위에 두 개의 서로 다른 계절을 사는 기묘한 국민이 되었다. 내란의 시도는 좌절되었지만, 그 상처는 더 깊고 음흉하게 곪아 들어갔다. 혐오를 자양분 삼아 몸집을 불리는 괴물들이 광장을 어슬렁거렸고, 분열의 장작을 태워 자신의 권력을 지피는 자들이 환호했다. 그리고 마침내 2025년 1월 19일, 언어가 뿌린 증오의 씨앗은,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아스팔트를 붉게 물들이는 폭력의 열매를 맺었다. 온라인을 떠돌던 유령 같던 증오가, 살과 피를 가진 현실의 폭력이 되어 우리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나는 잿더미가 된 광장을 보며, 무너진 법치를 보며, 서로의 눈을 향해 독을 뿜는 사람들을 보며, 문득 길을 잃었다. 이 지독한 병은 대체 언제부터 우리의 혈관 속에 흐르고 있었을까? 이 밤의 끝에서 우리는 무엇을 마주하게 될 것인가?
모든 질문의 끝에서, 나는 거울 앞에 섰다. 타인을 향해 삿대질하던 내 손가락이, 실은 서서히 나 자신을 향해 돌아오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우리가 타인의 얼굴 위로 덧씌운 그 모든 괴물의 가면은, 차마 마주 볼 용기가 없었던 우리 자신의 일그러진 맨얼굴은 아니었을까. 타인을 향한 그 모든 경멸과 분노가, 실은 길 잃고 상처 입은 자기 자신을 향한 가장 고통스러운 비명이자, 가장 서툰 방식의 구원 요청은 아니었을까.
이 책은, 그래서, 진정한 ‘혐오의 해부’를 시도한다.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정치적 현상이나 사회 갈등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현상을 가능하게 만든 우리 사회의 역사적 상처와 문화적 토양, 그 뒤틀린 구조를 한 겹 한 겹 벗겨낼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인간의 나약함, 그 원초적 공포와 자기혐오의 맨얼굴과 마주할 것이다. 고통스러운 과정이 되겠지만, 병의 근원을 알지 못하고서는 어떤 처방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 괴물의 자궁이 되어버린 시대를 해부하는 냉철한 기록인 동시에, ‘나는 내가 미워서 당신을 증오합니다’라고 속삭이는 내면의 목소리와 화해하려는 필사적인 시도이다. 만약 당신이 이 증오의 연쇄를 끊고 싶다면, 무엇보다 당신 자신과 먼저 화해하고 싶다면, 가장 깊은 이해와 따뜻한 화해의 순간이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