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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민 Feb 20. 2024

도쿄에서 가성비 찾아 삼만리

어느 하나 놓치기 싫은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 오로지 나의 즐거움만을 충족하는 일을 하면서도, 안락함과 사회적 위치를 유지해 줄 일을 놓칠 수 없다.

- 젊은 감각을 유지하면서도, 멋있게 나이 든 사람 특유의 지혜로운 고상함을 놓칠 수 없다.  

-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오래된 소중한 친구들과의 돈독한 관계를 놓칠 수 없다.


이상과 현실 그 어느 것 하나 포기하기 싫었듯이 이번 전시회의 멋과 가성비 둘 중 하나도 포기하기 싫었다.






놓치기 싫은 이상과 현실


아주 어릴 때는 꿈을 좇는 사람들만 멋있는 줄 알았다. 중간에 낙오된 사람들은 현실에 타협해 버리는 의지가 나약한 사람들인 줄 알았다. 그래서 기를 쓰고 꿈을 좇던 때가 있었다. 낙오자가 되기는 싫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현실도 포기가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내 머릿속의 상상을 현실로 이뤄내는 과정이 너무 즐겁고 재밌었지만 이게 나의 밥벌이가 아니라서 즐길 수 있었던 듯하다.


보통이상의 강단과 능력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생계수단이 되는 순간 내 맘대로 할 수가 없게 되고 결국에는 방향성을 잃게 되지 않을까?


그때 깨달았다. 내 인생을 풍부하게 만드는 요소로만 꿈을 소비하고 싶다는 것을. 현실의 안락함과 소속감, 그리고 어느 정도의 지위도 나의 행복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놓치기 싫은 멋과 가성비


"음악이랑 사진도 준비되었으니 그럼 이제 각자 전시회 장소 후보군 몇 개 뽑아올까?"

 

멤버들이 뽑아온 장소들은 현실적인 예산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곳들이었다. 레스토랑의 한쪽 구석에 무료 전시를 할 수 있는 곳, 시부야 뒷골목의 작은 갤러리. 아무것도 아닌 우리의 전시회를 보러 굳이 굳이 찾아와 줄 사람들이 적은 것을 고려하면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명색이 도쿄에서 처음 하는 전시회인데! 다 같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만든 결과물인데! 그저 누군가의 뒷 배경처럼 소비되고 싶지는 않았다.


작은 인원이라도 좋으니 온전히 전시회에 집중해 줄 사람들이 와 주기를 원했고, 돈을 조금 더 내더라도 아마추어스럽지 않고 전시회스러운 느낌을 주는 곳을 찾고 싶었다. 가성비도 중요하지만 퀄리티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싶었다.


내가 발견한 곳은 아주 작은 갤러리였지만 깔끔한 분위기에 꽤나 많은 전시용 물품들이 갖춰진 데다 도쿄 내에서는 합리적인 가격이었다. 나야 직장인이니 대여 금액에 큰 부담은 없었지만 아직 학생이거나 프리터족인 다른 멤버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여 최대한 가성비가 좋은 곳을 찾느라 애를 썼다.


게다가 키요스미 시라카와(清澄白河)에 있는 갤러리라니! 멋진 카페와 미술관 그리고 소품샵들이 즐비한 동네에서 첫 전시회를 한다는 사실에 설레었다.


1층의 플라워/베이커리 카페의 왼쪽 구석에 있는 계단을 타고 1.5층으로 올라가면 전시회가 열릴 갤러리가 위치해 있었다. 위에서 뭐 하나라며 기웃거리는 카페를 찾아온 손님들까지 모객 할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좋은 선택지였다.



1층 카페는 멋을 좀 아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인 듯했다.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지가 전시회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도쿄의 힙스터들이 모이는 카페에서 전시회를 열 수 있다는 건 아주 매력적이었다.   


이제 어느덧 전시회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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