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주제 혹은 내가 끌고 가고자 하는 무드를 정해야 했다. 그런 뒤에야 비슷한 분위기와 BPM의 음악을 선별하고 어떻게 믹싱을 할지 정할 수 있는 것이다.
도쿄의 첫 전시회이니 나는 도쿄의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나에게 있어 도쿄는 장소별로 참 다양한 느낌을 주는 도시이다. 대도시 특유의 삭막하고 정 없는 느낌도 들지만 동네에 따라서는 일본 특유의 여유로움과 감성이 여전히 녹아있는 곳.
도쿄의 분위기를 표현하기 쉬운 세 곳을 추려서 만들어보기로 했다.
마루노우치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늦은 저녁 고급스러운 라운지 바에서 칵테일 한 잔 할 줄 아는 한마디로 Moody Night을 즐기는 어른들이 모이는 오피스 동네라고 해야 하나. 금융권, 외자계 기업들 그리고 황궁이 있는 곳이라서 거리의 분위기 자체가 정돈되어 있고 상당히 부티가 난다.
내가 참조한 이미지 레퍼런스는 아래와 같은 분위기. 듣자마자 위스키 한잔 걸친 듯한 나른하고 몽롱한 기분이 들게 만들면서도 어딘가 약간은 우울한 분위기가 있는 곡을 선별하기를 원했다.
여긴 그야말로 관광객들과 젊은 친구들이 모이는 동네다. 사실 너무 정신없고 기 빨리는 곳이라 용건이 없는 한 자발적으로 가는 일은 없지만 그래도 일본의 스트리트 씬 하면 하라주쿠니까!
참조 이미지와 같이 자유 분방하고 개성적인 Hip Hop 씬의 곡들을 선별하고 싶었다. 특히 최근에는 90년대 힙합에 빠져서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이 충만한 2 Pac, A Tribe Called Quest의 느낌을 내고 싶었다.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느낌이라 레퍼런스로 참고하고 싶은 동네가 너무나도 많았다. 히로오, 나카메구로, 요요기하치만, 가쿠게이 대학, 키요스미 시라카와 모두 다 나의 최애 동네들이다. 한가로운 오후에 따뜻한 햇살을 맡으며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여유롭게 산책할 수 있는 동네.
히로오는 롯폰기와도 아주 가까운 동네인데 대사관도 많고 일본에 주재로 온 외국인 고위 임원들이 많이들 사는 동네이다. 그래서인지 외국 식료품 점과 브런치 가게가 많다. 에비스, 나카메구로 와도 멀지 않으니 한 번쯤 들려보기 좋은 동네이다.
여담이지만 이미 너무나도 유명한 사진 속의 빵집 정말 맛있다. 이곳의 갓 나온 트러플 소금빵은 그야말로 천국의 맛!
DJ를 배우기 전에는 DJ들은 대체 뭘 하길래 저렇게 분주하게 턴 테이블을 돌리는 거야? 그냥 멋있어 보이려고 헤드셋 끼고 척만 하는 거 아니야?라는 아주 오만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막상 내가 직접 하려 하니 한 귀로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다른 한 귀로는 헤드셋에서 나오는 곡을 들으며 오직 귀에서 맴도는 감각만으로 싱크를 한 뒤 두 가지 음악을 섞을 타이밍을 찾고 필요한 경우 이펙트까지 넣어야 하는 그야말로 매우 분주한 상태가 되는 것이었다.
컨트롤러 본체에 작동 버튼은 또 왜 이렇게나 많은 건지 기계치인 나에게는 암호 해독과도 같았다. 적응이 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테였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나는 라이브 퍼포먼스가 아닌 그저 믹싱을 만들기만 하면 된다는 것!
'이 정도면 전반적인 무드랑 추후에 멤버들이 촬영할 장소는 정해졌고, 이젠 선곡만 남았다!'
근데 이 선곡조차 초보에게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다들 아는 너무나도 대중적인 곡은 넣기 싫었던 나에게 믹싱 하기에 BPM이 비슷하면서도 분위기가 어울리는 곡들을 찾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게다가 직접 믹싱을 했을 때 의외로 잘 안 어울리는 곡들도 있으니 이걸 언제 다하나라는 걱정이 가득했다.
이런 과정에서 새삼 깨달은 세상의 이치!
남들이 보기에 쉬워 보이면 그건 이미 프로 혹은 달인의 경지에 이른 것이라는 것. 다른 이들의 노력이 깃든 보이지 않는 모든 순간들을 그렇게 쉽게 판단하면 안 되는 거였다.
Moody Night // 피곤했던 어느 평일의 늦은 저녁 라운지 바에서 흘러나오는
Laid-back // 주말 오후 2시 산책길에 리듬을 타며 듣는
Hip-Hop vol.2 // 90년대 힙합이 듣고 싶은 날
힙합 믹스를 만들 때쯤에는 집중력이 한계치에 달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흐린 눈을 하고 타협해 버렸지만 무언가에 몰두하여 완성해 냈다는 것에 의의를 두려는 초보 DJ의 변명 아닌 변명을 더하며, 올해는 내가 직접 찍은 사진과 좀 더 발전한 디자인으로 앨범의 아트워크까지 제작해 보자는 또 다른 사소한 꿈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