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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Jan 05. 2019

이런 일로
Thank you 하게 해서 미안해.

여유로움 충만한 오전이었다. 평소보다 아이들을 일찍 등교시키고, 어제부터 먹고 싶었던 빵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큰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으며 홀로 앉아있었다. 그 뜨거움이 내 살갗을 파고들어 심장까지 달굴 기세였다. 그러나 팔 위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타 들어갈 듯한 열기조차도 만족스러웠다. 빵을 한 입 베어 물고 진한 커피를 한 모금 삼키기를 무한 반복 중이었다. 아침부터 바삐 움직여 나가던 너에게 메시지가 왔다. 우리의 아침은 항상 아이들과 함께 헐레벌떡이기 일쑤. 메시지로 소소히 아침나절의 안부를 전하는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일과이다. 그러나 그날 너에게 온 메시지의 내용은 결코 소소한 것이 아니었다.


다음 주에 샌프란 갈 수도 있어. 

아직 결정은 안됐는데 당일치기로 다녀와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엥? 갑작스러운 너의 통보에 영문을 몰라 당황스러웠다. 샌프란시스코에 당일치기라니. 회사와의 과제를 위해 급하게 계획 중인 일정이라 했다. 새벽-밤 일정이거나 아주 짧은 1박 2일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사정을 듣고 있자니 여유로운 시간을 누리고 있는 나와는 너무 대조적인, 너의 살인적인 스케줄이 안쓰러웠다. 진심으로 힘든 일정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알겠다고, 당신이 너무 힘들겠다고 그리 전했다. 다만 그뿐이었다. 그런데 너에게서 예상치 않은 대답이 돌아왔다.


땡큐.


앗, 하트 뿅뿅 이모티콘까지 넣은 탱큐이다. 사람의 눈은 손보다 빠르지 않던가. 일단 시각적인 만족감이 나의 신경계 어디쯤을 압도했다. 그런데 너는 나에게 무엇이 땡큐한 것일까. 곧 부교감 신경의 조각들이 흥분을 가라앉히느라 바삐 움직이고 나에게 이성의 힘을 실어주었다. 나는 너의 땡큐의 의미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알고 있다고 인지한 순간 또다시 고통을 담당하는 어느 신경 세포들이 요란스럽게도 날뛴다. 이내 그것들은 나를 참 많이 쓰라리게 만든다.


나를 걱정해줘서^^

나는 하나 혼자 애들 봐야 해서 미안한데, 나를 걱정해줘서.


내가 직감한 땡큐의 의미를 네가 확인시켜주고야 말았다.

너를 걱정하는 나의 마음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순간이 되어 너에게 닿았구나. 얼마나 많은 당연한 것들을 너에게 특별함으로 포장하여 생색내었던 걸까. 아니면 당연한 것도 특별하고 귀하게 생각할 줄 아는 너의 그 맑음을 우러러야 하는 것일까? 오만가지 돌고 도는 생각들이 나의 뇌에 오작동을 일으킨다. 울컥하기도 하고, 가슴 곁이 쓰라리기도 하고, 동시에 역시 너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내가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났다는 어떤 희열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나머지 것들은 금세 쓰려가 버리고 남은 것은 아릿함 하나이다. 그 아릿함을 너에게 전하기 조차 미안하다. 그저 미안하다 이야기하는 것밖에 나의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다. 나도 하트 뿅뿅 이모티콘을 넣어서. 너의 눈을 통하는 신경계 어디쯤에 나의 진심이 닿길 바라며.



이런 일로 땡큐 하게 해서 내가 미안하다.

진심으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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