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ina Jan 02. 2020

림보

너와 나의 정수리는 붙어있다 우린 서로를 좇지 않는다 다만 쫓기는 것에 갈급하다 너무나 같은 것 혹은 너무나 다른 것은 커피 한 잔도 무안한 사이로 남는 것이 미덕이라고 세탁소 아저씨가 그랬다 다리미가 엉덩이를 붙이는 둥 마는 둥 지나간 스트라이프 셔츠는 주름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수치심을 느낀다


너의 말들은 끝이 어딘지 도통 알 수 없는 긴 줄에 매달려 있다 때론 동트기 전의 선착장 같았고 겨울날 빛이 스며든 삼십사 센티만큼의 흙바닥 같을 때도 있었다. 너의 말이 쏟아져 나올 때마다 눈알은 정박(渟泊)이란 건 생전 구경도 못한 것처럼 굴었다 나는 귀를 후비고 싶어서 손톱 밑을 긁었다 삼십사 센티만큼의 흙바닥에 가슴을 깔고 숨을 참으면 너는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고 나면 이대로 손가락을 몇 개나 접어야 식물인간이 될 수 있을지 곧 죽을 것처럼 헤아리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없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