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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Feb 26. 2020

명상 50일 차,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원래 명상 같은 건 수염을 길게 기르고 개량한복을 즐겨 입는 도인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걸 내가 할 줄이야. 그것도 50일이 넘도록 할 줄은 정말 몰랐다. 이런 걸 두고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하는 것일까.


아무튼 이렇게 된 거 그냥 계속하기로 했다. 큰 기대 없이 시작한 일이었는데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궁금하다면 글을 계속 읽어보시길. 시간이 많이 흐른 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게 되었지만, 명상을 시작하려는 분들도 참고할 수 있을 것 같다.






1. 컨디션과 생활 습관이 변했다.



전에 자율신경계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물론 내 것은 늘 불균형적이었다. 자율신경계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나는 교감신경이 지나치게 작동하는지 아무 일도 없는데 심장이 빠르게 뛰고 손에 땀도 자주 났다. 불면증을 극복하려고 억지로 하루를 꼬박 새우고 기절하듯 잠을 잔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명상은 이완 상태일 때 작동하는 부교감신경은 활성화하고 교감신경은 안정시켜서 자율신경계의 균형을 이루도록 도와준다. 명상을 한 뒤 가장 큰 변화는 숨 쉬는 게 편해졌다는 것이다. 전에는 늘 얕은 호흡을 했고 일부러 깊게 호흡해도 시원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늘 호흡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는데 겪어본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사람을 예민하게 만드는지 알 것이다. 늘 하는 호흡이니 귀중함을 모르다가 어려움을 겪고 나서야 감사함을 느낀다.


자율신경계가 균형에 가까워지니 이유 없이 안절부절못하던 증상도 거의 사라졌다. 이젠 숙면도 할 수 있다. 전에는 새벽 3~5시쯤 잠에 들어서 대낮에 일어날 때가 많았는데, 이젠 특별한 일이 없으면 11시 반쯤 잠에 들어 7~8시 사이에 일어난다. 명상을 한 지 2주 차까지는 뇌가 각성 상태에 계속 머무르는지 꿈을 많이 꿨다. 초저녁에 명상을 하도록 일정을 조절하면서 개선할 수 있었다. 컨디션도 많이 좋아져서 이젠 생리전증후군(PMS)의 영향도 거의 받지 않는다.




2. 생각과 감정을 잘 알아차리게 된다.



이건 좋은 점이기도 하고 불편한 점이기도 하다. 명상을 한다고 반드시 좋은 생각만 하고 좋은 감정만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좋은 점은 어떤 생각과 감정이 올라왔을 때 바로 알아차리고 그것을 건강한 방법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에는 불편한 생각이나 감정이 올라오면 그것에 계속 끌려다니거나 회피하려고 했다. 이제는 ‘내가 왜 이런 생각과 감정을 가지게 됐지?’하고 분석하거나 ‘그렇구나’ 하고 그저 관찰한다. 그래서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올라와도 금세 평온함을 되찾을 수 있다.


한편,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폭과 깊이도 확장됐다. 그래서 쉽게 울고 웃는다. 자주 웃어서 좋은 점은 주변 사람들도 나에게 잘 웃어준다는 것이다. 내가 먼저 웃으니까 가게 점원이나 이웃들도 나에게 웃어주고, 전보다 더 친절하다. (기분 탓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당황스러운 일도 있다. 얼마 전에는 실수로 집에 있는 화초를 부러뜨렸는데 화초가 느꼈을 고통이 내게도 전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화초 앞에서 ‘미안해! 아팠지!’하다가 문득 내가 명상 때문에 미친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이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늘 내 감정에 집중하고 있으니 전에는 그냥 지나쳤을 사소한 느낌도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또 명상을 하다 보면 타인을 포함한 모든 존재, 더 나아가 우주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 때문에 공감 능력이 발달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3. 내면의 상처를 발견하고 치유할 수 있다.



명상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매일 명상을 해도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내가 훈련했던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잊어버리고 감정에 휩쓸리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데, 이런 일은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상처와 연관되어 있다. 그 상처를 찾아내 치유하지 않으면 명상을 해도 소용이 없다. 깨끗이 세탁한 옷과 세탁하지 않고 탈취제만 뿌려댄 옷을 비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상처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는 대개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다. 나 같은 경우 스스로에게 끈질기게 묻는 방법을 선택했다. 얼마 전 외출을 했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어디냐고 묻기에 집에 다 왔다고 했더니 ‘집에 오면 얘기할게. 일단 와라.’ 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음속에서 두려움이 느껴졌다.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혼자 이런저런 걱정을 하면서 내가 잘못했을지도 모를 것들을 찾아냈다. 엄마가 하려고 했던 얘기는 홈쇼핑 애플리케이션 사용법을 알려달라는 게 전부였는데.


내가 두려움을 느낀 게 의아해서 마음에 계속 질문을 던졌다. 그러다가 칭찬보다는 꾸지람을 듣는 것이 익숙한 환경에서 자라면서 ‘엄마=나를 혼내는 사람’이라는 잘못된 관념이 생겨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명상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때론 명상이 내면의 상처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명상을 하면서부터 아주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상처들, 수치스러운 기억들이 불쑥 떠오르는 일이 많아졌다. 굉장히 오래됐거나 너무 깊이 묻어놔서 케케묵은 냄새가 나는 기억들이다. 그럴 때마다 깜짝 놀라기도 하고 괴로움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도대체 어떤 원리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마음을 깨끗이 청소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상처 치유는 자기 긍정과 인생 전체의 긍정으로 이어졌다. 내게 어떤 단점이 있든, 내가 어떤 일을 겪었든 간에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넉넉함이 생긴 것이다. 늘 ‘결점 없는 인간’이 되기를 바랐지만, 치유를 통해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면서 스스로를 ‘결점이 있어서 괜찮은 인간’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이것이 얼마나 나를 자유롭게 만드는지 모른다. 나는 매일 자유롭게 평온하다.



4. '지금'에 집중하는 습관이 생겼다.



나는 아침과 저녁마다 30분씩 명상을 한다. 점심에 짬이 나면 5~10분씩 한번 더 한다. 처음엔 무조건 좋은 에너지를 끌어오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는데 마음만 앞서서 5분도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 집중하라는 명상 선생님의 조언 영상을 보게 되었고, 가끔 차크라 명상을 하는  외에는  가지에 집중하거나 아무런 평가 없이 현재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위빠사나 명상, 이렇게  가지만 한다. 아무것도  하고 현재 혹은  몸에만 집중하는데도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재미도 느낀다.


명상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한 번에 마음이 건강해지기를 바란다. 글로벌 기업 CEO들이 수차례 명상을 강조했기 때문에 ‘명상을 하면 나도 그들처럼 성공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명상을 계속하다 보면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는 것으로 충분하며, 현존하는 것이야말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임을 알게 된다. 왜 현존하는 것이 큰 행복과 풍요를 가져다주는지는 내공이 부족해서 설명하기가 어렵다. 다만 현재에 집중하는 습관이 생기면서 당장의 행복에 몰입하게 되었고, 지금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게 되니 업무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을 경험했을 뿐이다.


현재에 집중하려고 노력하게 되면서 별다르게 바라는 것도 없어졌다. 떼돈을 버는 것, 높은 사회적 지위에 오르는 것, 유명해지는 것 등등 세상이 대단하고 좋다고 여기는 것들이 이제 나에겐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냥 원할 때 맛있는 라테 한 잔 정도는 마실 수 있는 경제력과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는 삶 정도면 괜찮다. 다만 요즘 온몸이 근질거릴 정도로 너무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바로 숲과 바다에 가서 명상을 하는 것이다… (질병관리본부가 이 글을 싫어합니다…)


명상을 계속하면서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티끌 하나 없이 투명하고, 생기 있으나 고요한 곳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판단과 저항 때문에 발견하지 못할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있는 곳은 지금 이 순간이다.






명상을 하며 내가 생각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다이너마이트에 비유하면, 예전엔 그 다이너마이트에 달린 도화선이 내가 가진 전부인 줄 알고 살았다. 심지어 불을 붙일 줄도 몰라서 쳐다보기만 하는 멀뚱한 나날들이 계속되었는데, 명상은 나로 하여금 내 손에 이미 성냥이 들려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나를 제한하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뿐이었던 것이다. (혹시 오해하실까 싶어 덧붙인다. 명상이 추구하는 바는 다이너마이트처럼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고작 50일 동안 명상을 했는데도 이렇게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반년 뒤, 1년 뒤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지금처럼만 평온했으면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도 명상이든 무엇이든 좋으니 스스로의 내면의 힘에 설렐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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