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세습을 끊어낼 때까지
작년 내내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은 딩크족도 많지만 나는 아니다. 그래서 결혼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아이도 떠오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아이와 함께 가정을 꾸리는 상상은 내내 나를 설레게 했다. 그렇다고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진짜 결혼을 원했다기보다는 안정감을 바랐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삶은 난파선에 몸을 싣고 있는 것처럼 불안했고, 배에서 뛰어내리자니 지평선 너머로 끝없는 망망대해만 가득한 것 같았다. 결혼은 공포스러울 만큼 광활한 삶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은신처 같이 느껴졌다. 현실은 다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저 꿈속에 살고만 싶었다.
가슴을 충동질하는 감정은 수명이 짧다. 시간이 좀 지나니까 결혼에 대한 욕구가 사라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가 인스타그램에서 무얼 봤느냐 하면, 우울의 세습에 관한 내용이었다. 어느 책 내용 중 일부였는데 '엄마의 슬픔은 아이의 슬픔이 되어 자라난다'는 말이 있었다. 뺨을 맞은 것처럼 마음이 시큰하고 서글펐다. 평생 우울증을 앓아온 나는 엄마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될 것 같았다.
'우울의 세습'은 얼마 전 엄마와 대화를 하면서 피부로 와 닿게 된다. 집안 사정상 몇 달 내로 독립해야 해서 이것저것 알아보는 중인데, 전세 대출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중에 엄마가 뜬금없이 화를 냈다. 엄마는 내가 독립하려는 이유가 자기가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가 돈이 많아서 지금보다 더 좋은 집에 살았다면 내가 나가지 않았을 거란다. 황당함에 말문이 막혔다. 누가 봐도 독립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일 뿐인데 엄마는 그 화살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를 보면서 이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삶은 좌절의 연속이라고 굳게 믿으며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쳐 살았던 과거가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오랫동안 우울증과 싸웠지만 엄마의 영향이 크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울은 평생에 걸쳐 체계적이고 은밀하게 세습되고 있었다. 육십 세가 다 되도록 생각과 감정에 끌려다닌 엄마가 안타까웠다. 내가 명상과 마음공부를 만나기 전엔 평생 우울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처럼, 엄마도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남은 삶을 자기 파괴에 헌납할 것이다. 엄마와 아이를 모두 살리려면 내가 그 악습을 끊어내야 했다. 내가 스스로 거울이 되어 삶의 맑고 투명함을 비춘다면 그들도 그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만 생각하며 결혼하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내 행복을 아이에게서 찾지 않기로 한다. 냉소적인 마음이 아니다. 감사와 기대가 있는, 간지러운 마음으로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누군가를 책임지기 위해 내 마음부터 책임져보기로 한다. 마음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경험해볼 만한 것이 인생이라는 걸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