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ina Dec 18. 2018

할머니

오랜만에 마주한 할머니는

어미 젖 찾는 송아지처럼 품에
파고드는 나를 익숙한 손길로
쓰다듬어 주셨어요 전처럼
유연한 손길은 아니었지요
세월을 손으로 가리다가
주름이 너무 많아져서 이제는
힘빠진 바람에도 손가락이
거칠게 몸을 떨어댄다나요

배냇머리 다 빠지기도 전에 나를
업어 키운 우리 할머니는 그래서인지
내가 그렇게나 보고싶으셨답니다
때때로 자식처럼 아끼던 텃밭에
나를 데려가 나보다 어린 새싹들
발로 뭉개놓아도 낄낄 웃고마셨다는
우리 할머니 내가 밉지도 않았을까요

국민학교에서 배운 짧은 글을
차근히 떠올리며 내가 일부러
아주 큰 글씨로 채워넣은 편지를
소리내어 읽었을 땐 할머니의
마음은 어느새 그 옛날 텃밭에
가까워져 있었을까요 사실
그랬으면 하고 썼던 걸요
내가 막 걷기 시작할 때로
할머니를 다시 데려가고 싶어서

그리웠던 시간만큼이나
더욱 짙어진 황혼을 할머니는
새싹을 뭉개던 나를 바라볼 때처럼
넉넉한 눈으로 응시하고 있습니다
나는 밤이 되는게 두려워서
뜨거운 숨을 한껏 가두고
할머니 이백살까지 살꺼지, 해보지만
할머니는 늙은이는 갈 때 되믄 가야한다
하고 그저 말이 없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든 것이 죽어버린 밤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