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장 난 형광등처럼 적당히 할 줄을 모른다
싸구려 사탕처럼 현란하거나 퍼렇게 죽어있는 눈깔을 하고 쉴 새 없이 자기 얘기를 해대는 것들은 깜빡인다 열린 척하며 등 뒤로 슬며시 닫아두는 것들과 에라 모르겠다 하고 침을 뱉어버리는 것들과 위에서 턱을 괴고 지나가는 아이를 바라보는 두 눈과 더 이상 네가 내 눈동자와 내 시를 오랜 침묵 속에 녹여내지 않는 것과 견고한 문장을 읽으며 과거 속으로 부서지는 나는 깜빡인다
자꾸만 깜빡거리다가 내 종아리 한쪽이 사라지고 있어서 나는 삐까뻔쩍한 종이를 오렸다 종이 옷을 입히고 종이 신발을 신기고 종이 가방과 종이 핸드폰을 쥐어주고 종이 모자 종이 귀걸이 종이 시계까지 걸친다 저 멀리엔 도무지 적당히 할 줄 모르는 수염 난 쥐새끼가 언제고 내 목덜미를 물 준비가 되어있다 개는 종이로 만들기에 너무 투명했다 불투명한 것들이 투명한 것들보다 더 가까이 내 뺨에 코를 대고 숨을 쉬었다
스으으흐으으
하고
투명한 것을 만질 수 있을 때까지 종이 옷을 오리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