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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름모 Apr 05. 2022

그을음 에 대하여

서서히 꺼지는 마음을 바라보는 것

샤프의 연극이 끝난 후, 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원체 공연을 좋아하는 탓에 여러 번 무대에 오르기도 했었다. 연기를 하며 다른 이의 삶을 대신 살아보고 경험하는 일은 참 귀한 일이다. 관객에게 나의 모습을 보여주며 무언가를 전달하는 일은 정말 즐거웠지만, 사실 연극이 끝나고 모두들 떠나버린 후 무대에 남은 정적은 공연장 스탭만 느낄 수 있는 별미이다. 다들 인사를 하고, 뒷정리를 하느라 분주해지면 그토록 화려했던 무대도 한 숨을 돌리는 것처럼 조용해진다. 공연 중에는 홀로 조명을 받던 마룻바닥도 이제는 관객석 불빛에 가려져 그림자 속으로 숨는다. 그때를 틈타 나도 따라 숨어 조용히 오늘을 회상하면 마치 무대와 내가 교감을 하는 기분이 든다. 무대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만 난 그렇다.


영원한 연극은 없다. 어디선가는 신나는 앙코르로 구성된 커튼콜이 펼쳐지고, 배우들은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공연 재밌게 보셨나요-' 하고 묻고, 셔터 세례가 펼쳐지는 화려한 마무리가 펼쳐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도 천천히(어쩌면 아주 빠르게) 내려가는 커튼에 가려진다. 배우들의 신발 코까지 보이지 않게 관객석과 무대가 분리되면, 관객들은 조용히 일어나 가방을 챙긴다. 감상에 젖어 나가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공연장 근처 맛있는 삼겹살집을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그 극은 아주 조용히 관객들에게 묻어서 흩어진다. 모든 공연은 막을 내리기에 의미 있는 것이다. 공연에서 전달받은 것으로 오늘을, 내일을 또 살아갈 수 있게 한다. 


재작년, 19년도에 뮤지컬 공연 준비를 했을 때 공연의 막이 내리는 것이 무서워 덜덜 떨던 순간이 있다. 단원들과 함께 하나씩 정성 들여 준비했던 공연이 마무리되면, 우리 기수가 끝나는 것이 무서웠다. 다시는 보지 못하겠지? 끝나면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지? 평생 공연이 계속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그랬다. 그때는 상담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과도 이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나는 왜 이렇게 끝을 무서워하는지, 헤어지는 것이 왜 이토록 두려운지 계속해서 탐색했다.


집 근처 카페에 가서 계속 고민했다. 무언가를 사랑할 때의 나는 마치 활활 타오르는 촛불 같았다. 불이 꺼지면 죽을 것 같아서, 촛농이 떨어져 짧아질 때마다 너무 두려웠다. 하지만 두려워만 하고 있을 형편은 안되는지라, 어떻게 하면 불꽃이 꺼질 때 가장 덜 아플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그 당시 난, 무언가를 떠나는 것에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차라리 나중에 천천히 아플 바에, 빨리 모래를 뿌려 불을 꺼버리고 싶었다.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모래를 확 뿌려버리면 불이 꺼지고 - 적어도 탈 때까지 다 타고나서 아픈 것보다는 덜 아프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마음의 불꽃은 모래로 꺼지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억지로 끌 수 없으니 탈 때까지 타기는 해야 했다. 곧 내가 고안해낸 방법은, 그을음을 사랑해보는 것이었다. 불꽃이 타면서 만들어내는 그을음을 사랑하는 것. 언젠가는 막을 내리는 공연처럼 나의 사랑도 꺼지기 마련이다. 자의 혹은 타의로 사랑은 꺼진다. 가장 덜 아픈 방법은 서서히 타는 내 마음을 바라보는 것, 꺼지기에 아름다운 마음들이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아는 것이다. 그래서 19년도 가을의 나는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막을 내리기에 공연이 아름다운 것처럼, 꺼지기에 사랑이 아름다운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랑을 하고 많은 이들을 떠나보낸다. 나약하고 작은 심장을 가진 내가, 꺼지기에 아름다운 사랑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미 꺼진 불씨를 억지로 살리려 하거나, 탐탁지 않은데 불을 붙이고자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꺼지는 순간에는 조용히 바라봐야 한다, 우리가 이제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며 그을음을 사랑하게 될 때까지. 연극은 막을 내리기에 아름답고, 종종 우리는 꺼지기에 아름다운 마음들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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