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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름모 Apr 20. 2023

시답잖은 이야기

1

3년 전쯤, 회사에서 만난 디자이너 J에게 하루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J는 하루키의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무작정 하루키를 좋아한다고 했다. 하루키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한 때 그는 하루키의 하루 패턴을 모방했다고 한다. 저녁에는 무조건 러닝을 하고 자기 전에 맥주를 마시는 것이다. 사실 J는 그냥 러닝과 맥주를 좋아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시점은 하루키가 사실 두부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였다. 하루키는 두부도 좋아했는데. J는 두부를 좋아하지 않았는지 하루키의 패턴에서 두부를 빼버렸다. 


나는 두부를 좋아한다. 따뜻하게 모두부를 데쳐 십자로 조각을 낸 후 간장과 함께 먹는 것을 좋아한다. 집에서 종종 두부를 데쳐먹는데 어느 날은 갑작스럽게 하루키 생각이 났다. 하루키의 대표적인 2개 일화를 알고 있다. 첫 번째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무조건 정해진 분량의 글을 쓴다는 그의 철칙이었고.... 두 번째는 두부와 맥주와 러닝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특별한 관심이 있는 건 아니라서 많은 부분을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두부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하루키와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J는 내가 그 회사를 퇴사하고도 몇 개월을 더 다닌 것 같다. 그러다 조용히 사라졌다. 그 사람은 아직도 하루키를 좋아하고 있을까? 아직도 러닝을 하고 맥주를 마실까? 묻어두기로 했다.


2

경기가 좋지 않다. 우리 회사의 채용은 동결되었고 예산은 모든 부분에서 타이트해졌다. "꼭" 필요한 것에 쓰이는 돈인가? 하는 질문이 자주 들린다.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꽤나 어렵다. 꼭 필요한 것을 추려내려면 우리가 가장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가 통일감 있게 명확해야 하기 때문이다. 몇 천명이 있는 회사에서 이를 잘 정렬하여 모든 임직원 마음에 꽂아 넣게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내 옆 자리 동료는 매일매일 "그놈의 돈 없다 소리 좀 그만 듣고 싶다"라고 말한다. 아무래도 우리는 얼라인에 실패한 거겠지.


3

옛날 드라마를 보고 있다. 2019년에 방영된 것을 옛날이라고 하기엔 사람마다 시간의 흐름을 다르게 느끼기 때문에 대립이 일어날 수 있으나 어쨌든 그렇다. 이제는 가지 않는 동아리의 뒤풀이 자리에서 갓 20살이 된 여성분이 나에게 추천해 준 작품이다. 문어체 대사가 너무 매력적이라고. 참 표현을 잘했다. 그 한 마디에 궁금증이 생겨 늦깎이 시청자를 하나 이끌어 냈으니. 그 친구는 법학과였는데 카피 쓰는 일을 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 드라마를 실제로 확인해 보니 하나의 사물 혹은 개념을 근본적으로 사유하는 대사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대본집을 사고 싶다고 생각했다. 난 뭐든 딥다이브 하는 게 좋다. 근데 내가 직접 말고. 누가 딥다이브 해보고 답을 다 알아낸 채로 나에게 소크라테스 문답법 해주면 좋겠다.


4

언젠가부터 가면의 존재를 나에게 밝히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나와 있을 때 가면을 쓰지 않는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함인지, 나를 제외한 타인을 대할 때 쓰는 가면의 무게를 위로받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아직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잘 받아들일 수 있는지 해답을 찾지 못했다. 주변에 조언을 구해봤더니 "누구나 가면은 쓰지 않나?"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내가 언짢은 부분은 무엇일까? ① 모두가 쓰는 가면임에도 본인의 무게를 과시하는 심리 ② 상황에, 사람에 따라 준비해 놓은 다양한 가면을 사용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찬사 하는 것 / 타인과 본인의 가면 무게가 같다고 해서 각자의 어려움과 힘듦이 상쇄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가면을 구비해 놓은 것은 어찌 보면 장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빠른 시간 내에 내 감정골의 뿌리를 찾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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