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왜 나는 이토록 투명할까요. 어떤 사람에게 또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매번 겪어도 정말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마음이 검은색이면 좋겠습니다. 그 어떤 색도 나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동요하는 것은 자꾸만 나를 다른 세계로 밀어 넣는 방아쇠입니다. 나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에게 관심도 애정도 정도 없다면 적어도 마이너스는 없을 텐데요.
누군가가 설명해 주면 좋겠습니다. 네가 그런 것은 모두 불가항적인 여러 요소들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것은 꽤나 보편적이며 누구나 그렇다고. 납득이 될 때까지 설명해 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안 되는 일이라면 그저 삐걱대다가도 다시 궤도를 찾는 흔들의자처럼 영점 조정을 해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이토록 홀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없을까요.
양재동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종종 오는 스페인식 카페에 앉아 에이포용지에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평소와 같이 운동장이 분주합니다. 매번 앉는 그 자리의 의자도 여전히 그대로이고 메뉴도 여전하네요. 바뀐 것은 도저히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저를 포함한 모든 게 말입니다. 적응을 할 때도 된 것 같은데 저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들에 기시감 정도밖에 느껴지지 않습니다.
종종 생을 이어나갈 의지가 없어 주변을 빙빙 돌게 됩니다. 그런 순간은 주로 동요에서 시작됩니다. 동요는 긍정적이기도 부정적이기도 합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의 동요는 큰 불안을 안겨줍니다. 보통이 그렇습니다. 간혹 준비를 단단히 한다고 해도 한 발 늦게 찾아오는 시간차동요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번 연도에만 이 말을 몇 번이나 하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누구의 따뜻한 마음도 제게 닿지 않습니다. 닿으러 오는 길에 부서집니다. 그것은 따뜻함의 질량이 부족했다거나 그것들이 강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저의 비정상적인 중력 때문에 저항을 버티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염려치 마십시오.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모든 걸 다 내 잘못이라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알아들을 수 있는 음악들이 두려워졌습니다. 노랫말이 급작스럽게 나를 인식하고 파고들 때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음악 감상을 위해서는 언어 학습을 멀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몇 가지 단어들을 띄엄띄엄 알고 있는 것은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같은 세계의 산물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요.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찾아 듣는 주제에 아는 단어를 만나면 반가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 자신의 전반적인 태도를 설명하는 아주 근접적인 사례입니다.
숨는 것과 도망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비겁할까요. 두 개가 다르긴 한건가요. 굳이 한 가지를 선택하자면 도망치겠습니다. 숨어서 나의 부재 이후를 지켜봐 봤자 좋을 게 없을 것 같아요. 고립되어 있는 기분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지금 그런 것 같습니다. 한숨을 뱉어도 아무것도 희석되지가 않습니다. 뱉은 한숨을 도로 마시고 다시 뱉고 또 도로 마시고 뱉는 행위를 반복합니다.
아, 짧은 진동들이 울릴 때 마음의 떨림을 느낍니다. 나는 대체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걸까요. 이리도 진득한 우울을 종이에 가래마냥 뱉어내고 있으면서도 저 작은 운동현상에 기쁠 준비를 하네요. 쿨한 사람은 도대체 어떤 가이드를 따라야 될 수 있는 것입니까? 왜 사랑은 주변을 다 별 볼일 없는 것으로 전락시킵니까? 사랑이 맞는 것은 확실합니까? 사랑을 다른 단어로 대체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서도요.
작디작더라도 그냥 인정하겠습니다. 나는 사랑을 느끼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잦게도 사랑을 일구고 있습니다. 모든 경기에서 져 버린 기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