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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엽 Feb 07. 2023

하나님이라는 우상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


마태복음 산상수훈에 나오는

그 유명한 팔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흔히들 팔복의 메시지를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한

조건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령이 가난하면, 마음이 온유하면,

의에 주리고 목마르면..

그러면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가난한 심령을 가지기 위해,

온유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야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오해한 잘못된 해석입니다

팔복의 메시지는

복을 받기 위한 처방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팔복의 각 항목은

언뜻 들으면 마치

복이 있기 위한 조건들을 설명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는 말은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가난한 심령을 가져야 한다 ‘라는 말처럼 들리고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는

땅을 기업으로 받기 위해선,  즉 땅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온유한 사람,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말로 들립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되어야..

마음이 온유한 사람이 되어야..

복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심령의 가난함 자체를

축복하고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모략’이란 책으로 유명한

신학자이자 목화지인 달라스 윌라드는


마음이 가난한 자를

영적으로나 물적으로,

즉 모든 면에서 절대적인 빈곤으로

허덕이는 사람으로 해석합니다


바꿔 말하면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란

하나님 앞에 도저히 설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사람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아무리 가난해도

마음만은 부자라고

스스로를 자부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정이 너무나 형편없다 보면

심령조차도, 꿈속에서라도

스스로를 위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듯 그야말로 철저하게  

하나님께 소외되었다고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사람조차도,

아니, 바로 그러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고

오히려 강조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가난 때문에, 질병 때문에,

자신의 무능함 때문에

절망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던

당시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어떠한 마음이었을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야말로 희망과 기쁨이 찬 얼굴로

예수님을 쳐다보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이야말로  

진정한 기쁜 소식이요 복음이었을 것입니다


연이어 말씀하시는 바도 같은 맥락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비참한 환경에서 어찌할 도리가 없어  

탄식하며 슬퍼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온유한 사람에서의 온유함 이란

인자한고 너그러운 이미지보다는

저항할 힘이 아예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저항을 못하니 당연히 온유하게 보이겠지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의를 갈망한다는 말인데 즉 정의, 공의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을 뜻합니다

사회적으로 억울하게, 불의하게 취급받는 사람들이겠지요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란

복수와 보복이 너무나 당연한 당시의 사회에서

복수를 포기하고 긍휼을 베푸는...

자기 밥그릇도 못 챙기는

어리석은 사람일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란

모두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 나가는 사회 속에서


욕망을 채울 능력도 마음도 없어

홀로 뒤처져 타박타박 걸어가는

세상에 소망이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사람이란

싸우는 사람 사이에 끼어 있는 사람입니다

서로 상대방을 이겨 먹으려 애쓰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양쪽 편 사람의 손을 잡고

평화를 호소하는 약한 사람일 것입니다.  


모두가 한결같이 힘없고 천대받고

억울함에 짓눌려 살던

그 사회의 하층민들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을 보고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그러한 상태에 처한 사람들에게


그 상태 그대로

그들을 복 있는 사람들이라고

힘 있게 강조하시는 겁니다


결국 예수님이 전하시는 메시지는

복을 받기 위한

어떤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온유하기 때문에

의에 주리고 목마르기 때문에…


혹은

유대인이기 때문에

안식일을 꼬박꼬박 지켰기 때문에

어떤 착한 일을 했기 때문에


즉 어떤 조건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아무리 가난하고 힘들어도

참고 견디면

인내심을 가지고 열심히 하나님을 믿는다면


결국엔 사업도 성공하고

출세도 할 수 있고

이도 저도 아니면

최소한 천국에 가서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달콤한 속삭임이 아닙니다


복음은,

지금 현재를 저당잡혀

미래에 대한 축복을 보장받는  

약속의 말씀이 아닙니다


복음이란

지금 이 순간

내가 누릴 수 있는

‘절대적인 기쁨’에 관한 소식입니다


복음이란,

사업이 부도가 나든

불치의 병에 걸렸든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 있든

그 어떠한 상황 가운데 있더라도 상관없이


지금 이 순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기쁨에 관한 소식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지금 이 모습 대로의 나를

기쁘게 여기신다는 메시지입니다


바로 지금이 구원의 순간이요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는 메시지가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팔복의 복은 우리가 오해하는 처럼


마음이 가난해져야 누릴 수 있는 복이 아니라

마음마저 가난해도 누릴 수 있다는 복이고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누릴 수 있는 복이 아니라

의에 주리고 목말라도 기뻐할 수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늘 어떤 조건을 지켜서

그에 대한 대가로 하나님의 복을 얻으려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은

그것이 설령 우리가 원했던 것일지라도

삯에 불과할 뿐이지

진정한 복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당시의 유대 백성들,

자신의 동포들, 종교인들에 대해

때로는 안타까워하시며

때로는 질타하시고,

때로는 연민으로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설파하셨던 말씀은

오로지 한 가지...


무엇인가를 열심히 해드려서

하나님으로부터 대가를 받아내려는

삯꾼의 모습, 종의 신분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진정한 자녀로서 거듭나라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손에 들려진 축복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까?


만일 하나님이

우리가 원하는 축복을 하나도 안 주신다 하더라도

주어진 상황 속에서

그분을 따를 자신이 있습니까?


만일 고개가 갸우뚱 해진다면

씁쓸한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출애굽기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금송아지 우상을  ‘여호와 하나님’이라 부르며

섬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한 어떤 조건을 내건다면...


우리는 지금 ‘하나님’이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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