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동엽 Oct 23. 2021

득도

질문이 사라졌다

“여보 나 아무래도 득도한 거 같아”


뜬금없는 나의 말에 잠자리를 준비하던 아내가 빵 터졌다 


"아니 무슨 목사가 득도 타령이야"


허긴..  목사가 득도라니 나도 우습긴 하다


그런데 정말이다. 암만 생각해도 더 이상 궁금한 것이 없어졌으니 말이다.

더 이상 질문거리가 사라지면 득도한 거 아닌가?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내가 목사가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질문'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죽음 이후엔 무엇이 있는가?

우주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나는 늘 이렇게 남들에겐 쓸데없고 한가하게 들리는 질문들이 궁금했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빠져들곤 했다. 집 옥상에서 곧바로 우주를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신기했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밤하늘의 별들이 사실은 수백 년 아니 수백만 년 전 과거의 모습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그러나 단지 어린 시절의 호기심이  나를 지금의  ‘종교인’의 자리로 이끌진 않았을 것이다. 그 정도로 순진한 인생을 살진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목사가 된 것은 순전히 죽음 때문이었다

10년의 간격을 두고 마주한 두 번의 죽음 덕분이었다


첫 번째 마주한 죽음은 엄마의 죽음이었다

군대에서 야외 훈련 중에 평소 약간 말을 더듬던 옆 소대 소대장이 심각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목소리로 “너.. 너 너의 어어어 머니  도.. 돌아가셨다.  빠.. 빨리 외 외출 준비해라” 고 전해 주었던 엄마의 죽음이었다


두 번째로 마주한 죽음은 아내의 죽음이었다 (나는 아내와 사별 후 재혼했다) 

이번엔 바로 내 눈앞에서였다. 아내는 몇 번 쿨럭이더니 더 이상 눈을 뜨지 않았다


내가 삶 가운데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두 사람의 죽음이었다


어린 시절 엄마는 그야말로 나의 모든 것이었다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았던 나는 울 엄마에겐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들이었고 엄마 또한 나의 생명보다 소중한 존재였다

강원도 최전방 부대에서 군 생활하면서 가장 바랬던 것은 오로지 제대해서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 한 그릇 같이 먹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얼마 전 정기휴가 때 뵙고 온 엄마였다.  조금만 더 있으면 제대하니까 그때 보자고 손 흔들어 주시던 엄마였다. 그런데 그 엄마가 죽었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아내는 직장 동료였다 

미인에다가 똑똑하기까지 했던 자동차 회사의 광고팀 대리였다

아내는 둘째 아이 출산 직후 그동안 임신으로 인해 미루어 왔던 머리 뒤쪽 종양의 조직검사를 받았다.  그 결과는 피부암이었다

임신 10개월 동안 행여 뱃속의 아이에게 해가 될까 봐 조직검사를 미루었는데

그동안 암세포는 이미 임파선으로 전이가 되어 손을 쓸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속수무책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엄마와 아내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두 사람이었다

결혼 전에는 엄마가 나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엄마가 죽은 후에는 아내가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다


심리학자들이 말하길

결혼 전의 사람에겐 엄마의 죽음이 가장 큰 트라우마로 남는다고 한다

결혼 후에는 배우자의 죽음이 가장 큰 트라우마로 남는다고 한다

결국 나는 인생의 가장 큰 트라우마를 두 번 연속 제대로 경험한 것이다


이후 나는 삶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나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그것도 두 번이나..


답을 찾을 길은 막연했다

그나마 삶과 죽음에 대해 적극적인 탐구가 이루어지는 곳은 종교였다

아마 그 당시 나의 종교가 불교였다면 나는 머리 깎고 중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나는 기독교인이었다

아내 역시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는데 사별 후 장모님은 나에게 신학교에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어 오셨다

얼마 동안의 고민 후 나는 신학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때가 2005년 무렵이었으니

무려 16년에 걸친 삶에 대한 나의 질문 여정이 이제 막 끝난 것이다


참으로 먼길을 돌아왔다


그러나 이제라도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었으니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평생을 걸려 답을 못 얻는 사람이 태반이고

그나마 그런 질문조차 던져보지 못하고 삶을 마치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을 테니 말이다   

이제 내가 두 번의 죽음을 경험한 후 

삶과 인생에 대해 더 이상의 질문거리가 사라진 

득도의 경험을 여러분께 들려주려 한다

작가의 이전글 가장 중요한 질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