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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엽 Oct 23. 2021

아내의 죽음

병원을 나오며 나는 아내가 죽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을 했다. 오히려 의사에게 호통을 쳤다. 고치지 못할 거면 가만 놔두라고.. 내가 믿는 하나님이 아내를 고쳐 주실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아내가 4개월 뒤에 죽을 것이라는 의사의 말이 너무나 나를 화나게 했다.


정작 큰 소리는 쳤지만 퇴원을 하고 나니 갈 곳이 없었다. 장모님과 함께 수소문을 해보니 노원구에 있는 원자력 병원에 국내 1위의 암 치료 전문가가 있다고 했다. 당장 원자력 병원에 입원 수속을 밟았다. 왠지 '원자력'이라는 병원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원자력으로 뭔가 대단한 치료를 해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요란한 검사를 끝낸 후 국내 1위인 암 전문 의사 선생님은 우리에게 강남 성모 병원의 주치의 선생님과 동일한 말씀을 해 주셨다. 앞으로 길어야 4개월이라고.. 수술하면 6개월 정도 더 살 수 있다고...


그래도 나는 굴하지 않았다. 금식 기도원에서 나올 때 맛보았던 평안함을 떠올려 보았다. 분명 어떤 길이 열릴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장모님의 교회의 믿을 만한 분이 경주에 있는 기도원을 소개해 주셨다. 그곳에는  아내처럼 병원에서 포기한 말기 암환자들과 말기 당뇨병 환자들이 완치되어 나간다는 것이었다. 다시 한번 한줄기 희망이 보였다. 당장에 그곳으로 향했다.


경주의 기도원에서는 우리 부부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그곳에서는 매일 새벽과 밤에 기도회가 열렸다. 환자들은 매일 밤낮으로 하나님께 낫게 해 달라는 기도 했고 목사님은 각 환자들의 방을 돌며 매일 안수기도를 해 주셨다. 낮 시간에 기도원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들은 한결같이 표정이 밝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병이 완치되어 나갔다며 우리 부부도 여기까지 온 거 보면 운이 좋은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우리 부부는 더욱더 소망을 가지고 매일 밤마다 기도에 매달렸다.


어느 날 목사님이 우리 부부를 따로 부르셨다. 다소 어두운 표정이던 목사님은 잠시 생각하시더니 곧바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젯밤에 우리 부부를 위한 기도 중에 생생한 꿈을 꾸었는데 아내의 병을 고쳐주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 이 기도원에서 기도하며 머물러도 소용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그런 꿈이 있는가?  설령 고치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더라도  기도원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그곳에 기거하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매일 밤 기도회 때 헌금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서 맥이 빠지게 하는가?  뭐 어쩌자는  것인가?


이곳의 상황을 알지자 서울에서 식구들에게 연락이 왔다. 아내와 아주 가까운 사이의 목사님 에 노숙자를 돌보며 사역을 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최근 이분의 꿈속에서 우리 부부를 데려와 돌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 가운데는 대학 교육까지 받은 우리 부부가 목사들이 꿈속에서 메시지를 받았다는 이야기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거처를 옮기는 모습이 이해가 안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의 목숨이 달린 상황에서 달리 선택의 상황이 전혀 없던 당시 나는 꿈이 아니라 설령 졸다가 받은 메시지라도 붙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서 찾은 그곳은 정말 암울했다. 강북구 번동에서 몇 개월 후 철거 예정인 허름한 집을 빌어 노숙자들을 모아 잠자리를 제공해 가며 목회를 하시던 목사님은 우리 부부를 위해 그나마 도배를 새로 한 방을 안내해 주셨다. 정말 여기 외에는 그 어느 곳도 아내의 생명을 약속해 주지 않았다. 이곳을 나가면 그저 죽음을 기다리라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 어두컴컴한 지하 방에서 아내와 나는 한 달여를 보냈다. 그러는 동안 아내의 병세는 점점 더 악화되었다. 밤마다 아내의 괴로움에 떠는 신음소리에 나는 귀를 막아야 했다. 목사님은 어느 정도 아내의 회복을 확신하셨다. 그 확신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해 볼 방법은 없었지만 그 말을 믿는 수 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목사님은 우리에게 굳은 믿음을 강요하셨다. 우리는 그러리라 다짐했다. 굳은 믿음의 표현으로 병원에서 주는 약은 진통제를 포함해서 일체 먹지 말라고 하셨다.  우리는 그럴 것이라고 동의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동의했다. 일리 있는 말씀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밤마다 나는 아내와 싸워야 했다. 아내는 매일 밤 고통에 겨워 나에게 진통제를 요구했다. 나는 귀를 막았다. 살길은 믿음을 보이는 길밖에 없다고 아내를 꾸짖었다. 집에 남겨둔 애들을 생각하라고 달래보기도 했다. 진통제를 달라고 떼를 쓰던 아내도 아이들 이야기만 나오면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아이들 약발도 얼마 가지 못했다. 밤만 되면 아내는 눈동자가 돌아갔다. 그 세련되고 똑똑했던 아내가 미친 사람처럼 변했다. 나에게 욕까지 해가며 진통제를 달라고 소리쳤다. 아내가 지쳐 잠들 때까지 나는 귀를 막았다. 그것이 내가 아내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은 지인이 이곳까지 찾아왔다. 아내가 자신의 몰골을 보이기 싫어하여 철저하게 사람들의 방문을 막았는데 기필코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아내의 사정을 설명하고 집 앞에서 지인을 돌려보냈는데 그가 사들고 온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은 받아 들었다. 아내가 흘깃 내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을 보았다. 그리고는 초췌한 몰골에 최대한 애교스러운 목소리로  나에게 아이스크림 한 입만 먹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나는 정색을 하고 아내를 나무랐다. 암환자가 아이스크림이라니 무슨 소릴 하냐고.. 아내는 아이스크림 한입 먹기 위해 아픔을 참아가며 초췌한 몰골에 애교까지 부린 자신의 모습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울기 시작했다. 우는 것조차 힘들게 보였다. 세련된 도시 여자 차도녀였던 그녀가 아이스크림 한입에 지금 울고 있는 것이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면 아내는 조금 괜찮아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괜찮아지는 것이 아니라 탈진한 것이었을 것이다.

장모님은 이틀에 한 번 딸을 보러 오셨다. 강남에서 강북 번동까지 매일 오시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어쩐 일인지  아침부터 장모님이 오셨다. 바로 어제 다녀가셨는데 또 오신 것이다. 딸이 갑자기 보고 싶으셨다는 것이다. 아내는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정신이 혼미했다. 그리고 자꾸만 밖에 누가 왔으니 문을 열어 주라는 것이다. 아무도 없다고 이야기를 해주어도 자꾸 밖에서 누가 찾는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기침이 나오는지 쿨럭였다. 장모님과 나는 아내의 손을 잡아 주고 기침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아내는 몇 번 더 쿨럭이더니 더 이상 쿨럭이지 않았다.


장모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아내가 세상을 떠났음을 전했다. 나는 그게 무슨 소린가 했다. 10년 전 엄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나는 그게 무슨 소린가 했었다. 다시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번엔 바로 내 눈앞에서.


10년 전에는 그저 악! 하고 주저앉았지만 이 번엔 조금 달랐다. 목사님을 찾았다. 목사님은 기도 중이었다. 나는 기도 중인 목사님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살 수 있다면서.. 살려 준다면서.. 그리고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아내가 죽기 바로 전까지도 아내가 죽을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나 자신이 너무나 한심했다.


털썩 주저앉았다. 또다시 머릿속이 텅 비었다. 세상에 이렇게나 멍청할 수가.. 한 번 당했으면 됐지 두 번씩이나.. 엄마도 이렇게 허무하게 죽지 않았나. 어떻게 하나님이 살려 줄 것이라고 철석같이 순진하게 믿을 수 있었는지 내가 너무나 한심했다.


며칠 전 아이스크림 한입 먹기 위해 힘들게 애교를 부리던 아내가 생각났다. 아내가 흘리던 눈물이 생각났다. 순간 피가 거꾸로 솟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깟 아이스크림 실컷 먹여 줄걸... 이럴 줄 알았으면 밤마다 고통 가운데 몸부림칠 때 마음껏 모르핀을 줄걸. 그때 그 의사 선생님이 말하지 않았던가? 말기 암환자가 겪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라고..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윤지야 정말 미안하다. 내가 죽일 놈이다. 정말 분통이 터졌다. 정말 미안했다.

나는 그저 짐승처럼 주저앉아 이상한 신음 소리를 내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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