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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엽 Jul 14. 2022

진정한 배려는 배려하지 않는 것

이상한 배려법

요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천재 변호사라는 설정이 특이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이를 실감 나게 연기하는 배우 박은빈 씨의 활약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이토록 폭발적인 시청률을 기록하는 데에는

뭔가 더욱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한다


나는 그 이유가

거꾸로 읽어도 똑바로 읽어도 상관없는

극 중 주인공의 이름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 이름은 이동엽이다

거꾸로 읽으면 '엽동이'가 된다

학창 시절 친구들은 나를 엽똥이라고 놀려댔다                                                                       

남의 이름을 거꾸로 부르는 것은 큰 실례이다

그러나 거꾸로 불러도 실례가 되지 않는 이름도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이름이 그렇다          

토마토 스위스 별똥별 인도인... 그리고 역삼역

거꾸로 읽어도 똑바로 읽어도 아무 상관없는 단어들이다

찾아보니 이런 단어들이 의외로 많다    




나는 목사다

유튜브 '허당 그레이스' 채널에서 모자 쓰고 다니는

그래서 같이 다니기 창피한

이상한 목사로 소개되기도 했었다



내가 설교하는 교회는 애당초 교회 건물이 없다

오로지 온라인 줌 미팅으로만 예배 모임을 갖는다


예배 참석에 대한 불편함이 없어서 그런지

우리 교회에는 장애인 성도가 많다


사실 장애인들이 예배 참석하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다

이동 자체가 큰 일이기 때문이다


매주 함께 온라인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많은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장애인이라고 한마디로 뭉뚱그려 부르기에는

장애인들은 서로가 너무 다르다는 사실이다


휠체어를 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폐 증상이 있는 사람도 있고

이 두 가지 증세를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


장애인은 장애인끼리

서로 통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무조건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도 같을 것이다


장애인과의 만남도 사람과 사람의 만남일 뿐이다

우영우 변호사처럼 똑똑한 장애인이 있는 반면

7살 어린아이의 지능에 멈춰버린 장애인도 있고


호탕하고 성격 좋은 장애인이 있는가 하면

소심하고 잘 삐지는 장애인도 있다


 그러나 어떤 장애를 지녔든지 한 가지 같은 면이 있는데

그것은 모두가 인격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다름에 너무나 익숙하다

너와 내가 다르고

남자와 여자가 다르고

20대와 60대가 다르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다르고

동양인과 서양인이 다르고

백인과 흑인이 다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다름에 주목하는 동안

모두가 인격을 지닌 사람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쉽게 놓친다


그리고는

다르기 때문에 배려하기도 하지만

또한 다르기 때문에 너무나 쉽게 차별하기도 한다



나의 대학 후배 중에는 뇌성마비를 앓는 후배가 있다

휠체어가 아니면 움직이지 못하고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지만

졸업 후 미국의 명문 UCLA에 유학을 와서

트리니티 신학교를 졸업하고 장애인 목사가 된 친구다


대학 다닐 때는 그저 그런 후배가 있나 보다 하고 교류 없이 지냈는데

30여 년이 지난 후 미국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다


여전히 휠체어를 의지하며 말하는 것을 힘들어했지만

그의 눈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후배의 비틀어진 몸 안에 진짜 그가 있음을 발견했던 기억이 있다


장애를 지닌 육체 속에 있는 후배는

나보다 훨씬 인격적으로 성숙한

오히려 선배 같은 후배였다



이후로 나는 후배 목사가 장애인으로 보이지 않는다

술친구 찾기 힘든 목사로서 가끔은 생맥주 한 잔 걸치는 친구로

때로는 인생을 살아가며 조언을 구하는  상담자로서 후배를 찾는다


우리는 장애인을 배려하는데 너무 익숙하다

그것이 일반인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하다


그러나 그 배려가 장애인을

나와는 전혀 다른 존재로 여기는 데서

나온 것이라면 그것은 배려가 될 수 없다


진정한 배려는

장애인을  나와 동일한 인격체로 대하는 것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이상하다

그가 이상한 이유는

전혀 이상하지 않아서이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장애를 당당히 인정하고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친구와의 우정을 나누고

법조인의 양식을 지키는 모습이

너무나 상식적이고 정상적 이어서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면서

과연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기준이 모호하다

많은 사람이 동의하면 정상이고

그렇지 않으면 비정상인가?


이동엽은 정상이고 엽동이는 비정상인가?

그러나 나는 나를 '엽똥이' 라고 친근하게 불러준 친구와 제일 친했다



우리는 똑바로 읽어야만 정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에는 의외로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아무 상관없는...


아니 오히려 거꾸로 읽을 때 즐거운 이름이 너무 많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이름이 바로 그렇다


스위스, 별똥별, 기러기, 인도인

기름기, 일주일, 빈익빈, 부익부

토마토, 트로트, 오디오,

소주 만병만 주소


내 아내

아 좋다 좋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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