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는 시간이 걸린다. 그림에 친숙해지는 데도, 무언가를 학습하는 것에도, 알고 있는 것을 써 내려가는 것에도. 그것이 사람 간의 관계에 관한 것이라면 더더욱.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것은 부던히도 괴롭고 지난한 과정이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이제까지 쌓아온 지식과 감각이 온전하지 않았음을 자각하고, 변경하고 수용하는 것. 상대의 세계에 귀 기울이고 나의 세계를 적절한 언어로, 적당한 몸짓으로 나타내는 것. 변화는 필연적으로 고통을 낳는다.
고통에 대한 역치가 낮은 내게, 그렇기에 관계는 더더욱 어렵고 긴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런데 처음으로, 그 시간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만남을 마주했다.
그의 첫인상은 솔직히 말해 좋지 않았다. 날카로운 눈매와 벼린 눈빛, 큰 체구는 위압감이 들었다. 단순하게 말해, 무서웠다. 때문에 더 신기했던 것 같다. 발화상황에 맞추어 시시각각 바뀌는 눈빛과 점차 동그래지는 눈, 순순한 끄덕임과 공감의 목소리. 첫 만남의 끝에서 그는 어느새 좋은 청자로 탈바꿈해 있었다.
어쩌면 거기서 끝났을 수도 있을 만남은 그의 연락으로 이어졌다. 글쓰기를 즐기는 그는 우리의 담화에 대한 글을 전했다. 덤덤하게, 그러나 섬세하고 어여쁘게 표현된 발화상황과 그로 인해 야기된 파스텔톤의 감정들. 순간 호흡이 멈췄다. 글이기에 전할 수 있는 감동을, 너무 오랜만에 느꼈다.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특출 난 글이 아니었다. 담백한 상황표현, 적절한 비유를 활용한 감정과 생각들. 그의 글은 솔직했다. 솔직해서 특별했다. 스스로의 내면을 거리낌 없이 드러낼 수 있는 글. 억지로 꾸미지 않았기에 자연스러운 호흡이 담긴, 사람이 담긴 글. 박동하는 에세이였다.
이후로는 궁금했던 것 같다.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일까. 어떤 삶을 살아왔고,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일까.
많은 이야기를 했다. 각자의 고충에 대해, 지향하는 바에 대해. 어떤 철학자의 견해에 대해 생각을 나누기도 했고, 어떤 웹툰에 대한 감상을 나누기도 했다. 그는 나와 달랐고, 동시에 비슷했다. 상이한 고행을 겪었고, 비슷한 감정을 공유했다. 신기한 일이다. 제각각의 삶에서 향유하는 정서가 이토록 유사할 수 있다는 것이.
그와의 대화에서 가장 신기했던 점은, 너무도 쉽게 오랫동안 갈망했던 말을 해주었다는 것이다. 너무 오래 갈구했기에 이제는 스스로조차 포기했던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가장 원하는 순간에 해주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얼마나 오래 고민했던 걸까.
말을 잘하는 사람은,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말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은, 무수한 좌절과 깨달음 끝에서야 얻을 수 있는 것임을 안다. 끝없이 고민하고 공부하고, 찾아가면서 상황을 익히고, 언어를 배우고, 세상을 자각하며 애썼을 때에서야 비로소 나올 수 있는 다정함을 안다.
잘 배운 사람이 좋다. 수학이나 영어와 같은 지식이 많다는 게 아니다. 자신의 언행이 지니는 힘을 알고, 타자를 그 자체로 수용할 줄 아는, 세심함을 갖춘 사람이 좋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저 하염없이 눈물이 나서, 감사하다는 말만을 되뇌었다. 빈약한 앎과 어휘가 원망스러울 만큼 감사하고 벅찼다. 사실 아직도 이 감정을 표현할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다. 압도적이고 서러운, 기쁘면서 아픈 감정이었노라고 어렴풋이 묘사할 뿐이다.
빠르게 얻은 것만큼 빠르게 잃기 쉬운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늘 상대를 경계하고 의심했다. 하지만 이번만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신뢰에 따른 대가가 무엇이든 기꺼이 감내하겠노라. 내 머릿속 빅데이터가 말해주는, 지난 삶이 외치는 감정을 믿어보겠노라, 감히 결정하고 말았다.
여전히 불안하고 두렵다. 기질적으로 겁이 많고 만성적인 불안 장애를 앓는 데다 악한 인간군상의 집합체라고도 할 수 있는 범죄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무수히 보아야만 하는 학과를 택했다 보니 이제는 작별할 수 없는 감각이다. 아마 죽을 날까지 떨쳐낼 수는 없겠지.
그러나 이 감각에 짓눌려 사는 것을, 적어도 한 번은 벗어나보려 한다. 최후의 방어선인 불안이라는 친구와 억척스레 한 발자국 나아가려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