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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난 Jul 27. 2024

후우링

일본에서 여름에 문 앞에 달아놓는 종

 땅-

 후우링이 바람에 치여 맑은 소리를 낸다. 금빛 종이 흔들리며 뜨거운 공기를 흔들고 거기서 시작된 파동이 주위에 퍼지며 이윽고 내 볼에 닿는다. 조그마한 줄에 덜렁 매달린 주제에 힘차게 울리는 후우링이 가소롭게 대견하여 지긋이 보고 있으니 옆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리 운다.


 "또 그러고 누워 있어?"


 긴 검은 머리를 질끈 동여맨 채 양손엔 식재료를 가득 들고 있던 그녀는 매서운 눈초리로 날 한 번 흘겨보곤 무거운 짐을 내려둔다. 오늘 저녁은 소바와 돈가스인가 보다. 메밀과 고기, 밀가루, 돈가스소스, 샐러드가 든 장바구니를 보며 시답잖은 생각을 해 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돈가스와 메밀국수, 바삭하면서도 달콤하고 적당히 기름기 있는 돈가스를 한 입 베어 물고 적당히 입을 움직인 후, 약간의 고기를 입속에 머금은 채 와사비가 섞인 소바를 샐러드와 함께 집어 먹는다. 새어 나오는 육즙과 적당히 상쾌한 메밀이 어울리며 깔끔하고 풍족한 느낌을 준다.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침을 삼키며 욕망 어린 눈빛으로 장바구니를 노려보니 어딘지 답답한 한숨이 들린다.


 "하아. 대체 언제쯤 정신 차리련지."


 쌓이고 쌓여 터져 나온 말이라는 게 느껴져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인다.


 "거기서 멍청이 그러고 있지 말고 네 방에나 가 있어."


 가라앉은 목소리에 침묵한 채 고개를 끄덕이곤 방으로 향했다. 넓은 거실을 빠져나와 우측으로 돈 후, 앞으로 네 걸음. 정면의 열 두 개짜리 계단을 오르면 왼쪽에 위치한 아담한 방. 침대 하나 들어가기 버거워 이불로 대체한 내 방이 보인다. 쇠 된 소리가 나는 삐걱이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 어질러진 이불 위에 철퍼덕 드러누웠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자격증도, 취업도, 친구관계, 하물며 나 자신조차도 귀찮다. 생각이 필요한 모든 것들로부터 멀어지고 싶다. 단지 이 하나의 소망으로 올라온 일본이다. 서른이 되도록 취업 하나 제대로 못해 변변찮은 알바나 뛰며 모텔이나 친구 집을 전전하던 나를 보다 못한 그녀가 자신의 집에서 잠시 머물라고 제안하여 온 이국. 어릴 적, 몇 년간 지낸 적 있었기에 익숙하지만 낯선 이곳에서의 생활에 그리 큰 불만은 없다. 그저 친구라는 명목으로 그녀에게 빌붙어 사는 것이 못내 창피하고 미안할 뿐이다.


 그녀는 흔히 말하는 '엘리트'이다. 학창 시절부터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모든 것에 능통하며 쾌활하고 얼굴까지 단정한 그녀는 모든 사람들의 예상대로 졸업과 동시에 바라왔던 회사에 취직했고 현재에는 약관 29세의 나이로 과장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다. 중위권의 성적에 얼굴이 빼어난 것도 성격이 좋은 것도, 그렇다고 운동이나 요리, 미술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던, 모든 것이 어중간한 '나'라는 인간과는 애초에 종족이 달랐던 것이다. 어릴 적엔 그런 그녀가 마냥 부럽고 질투 났으나 이렇게 같이 살다 보니 그녀가 얼마나 노력하며 혹독하게 사는지 느껴져 그저 대단하다 생각할 뿐이다. 아니, 생각할 뿐이었다.

 

 원래 본인에게 엄격한 이는 타인에게도 엄격해지는 것인지, 어느샌가부터 그녀는 나에게 일일이 간섭하기 시작했다. 취업, 연애, 친구관계부터 기본적인 생활습관까지. 끈질기게 몰아붙이는 그녀에게 요즘은 두려움도 느낀다. 방금 전, 그녀의 한숨과 나무람도 결국 나가서 일자리라도 알아보지 무엇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항상 내 곁에 머무르며 함께 했던 이이기에 걱정되어 그러는 것이라는 건 알지만 걱정도 과하면 독이 된다는 걸 그녀는 모르는 듯했다. 하기야, 태어날 적부터 안 되는 것 없던 그녀가 누구의 걱정을 그리도 받아 보았겠나.


 난 하고 싶은 일이 없다. 그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별을 느끼며 달이 지고 태양이 떠오르며 그 아래로 사람들이 새록새록 피어나 움직이는 일련의 상황들을 지켜보고 싶을 뿐이다. 나아가고 멈춰 서며 다시금 떠올리고는 서로 마주 보며 웃는, 이상적인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즐거우나 저 속에 들어가고 싶진 않다. 나는, 그저 방관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나의 이러한 상황과 마음을 고려해 주지 않았다. 학교에 가라 하면 가야 했고 시험을 치라하면 쳐야 했으며 자격증을 따라 하면 따고 교우관계를 돈독히 하라 하면 억척스레 위장하며 원치 않는 만남을 가졌다. 모든 걸 세상이 원하는 대로 해주고 겨우 하나, 취업이라는 걸 못 하겠다 했을 뿐인데 사회는 날 '한심한 이'로 보았고 사람들은 나를 '낙오자'로 여겼다.


 썩은 냄새가 나는 날파리 한 마리가 전등 주위를 얼쩡거린다. 윙윙 조용하면서도 소란한 몸짓으로 그저 빛 주위를 돌고 또 돈다. 끝없는 원을 그리는 그 하찮은 생명을 바라보다 문득 동질감을 느낀다. 난 그저 한 마리의 파리가 아니었을까. 여기저기 치이고 부딪쳐 더러워진 몸을 이끌고선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어떻게든 행복해져 보겠다고 무언가 해 보려 하지만 정작 원하는 것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여 그 주위를 돌다 사그라드는 비명을 지르는. 그저 저 가엾은 파리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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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꿈


 내리쬐는 태양빛에 나뭇잎이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엉성하게 늘어선 그림자 사이로 신선한 바람이 훑고 지나갈 때, 어딘지 모를 공기의 쓸쓸함에 가슴이 먹먹해져 괜히 한숨을 내쉬어 본다. 겨울이 가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호흡 사이로 지난날이 퍼져나간다. 그 아련한 추억의 향기에 잠시 눈을 감아 본다. 가득 찬 어둠 사이로 미세한 빛이 스며들다 확장되어 간다.

 아득한 시선 너머로 아기자기한 책상과 의자, 아이들이 보인다. 8살쯤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다. 깔깔대는 웃음소리와 뛰어다니는 쿵쾅거리는 소리로 산만한 가운데 조그마한 손이 보인다. 하얗고 보드라운 손은 그 크기에 맞지 않는 책을 들고 있다. <피터 님블과 마법의 눈>. 청록색 표지는 우아한 느낌을 자아낸다. 거기에 페이지 수도 약 400장이라 장엄한 느낌도 얼핏 나는 것만 같다. 살포시 책장을 넘기다 보니 '눈이 보이지 않는 왕자'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아, 이거 알 것 같다.

 아주 어릴 적,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이다. 내용도 흥미롭고 감동적인 데다 문체가 아름다워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 사실을 떠올리자 이 책을 잡고 있는 것이 어린 시절의 '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친구들과 그리 못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애들에 비해 유독 책과 이야기를 좋아하는 꼬마. 그게 '나'였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생각이 많았던 '나'는 그 앳된 나이에도 불구하고 근심걱정이 많았던 것 같다. 별것 아닌 것에 집착하고 고민하다 보니 삶이 지쳤고 어딘가 숨이 트이는 장소를 찾아 헤맸다. 그렇게 도달한 곳이 '책'이었고 '만화'였다. 현실과는 다른, 또 다른 내가 존재할 수 있는 세계.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 슬픔과 외로움을 어루만져 준 친구. 보다 넓은 지식을 준 선생님. 그 모든 것이 내게는 '책'이자 '만화'였다.

 다양한 이야기를 읽고 들으며 점차 나는 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게 되었다. 쌓인 지식과 넘치는 감정을 어떻게든 표출하고 싶었고 나누고 싶었다. 창작에 대한 욕구는 늘어만 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터져 나오게 되었다. 정확히 무엇이 계기였는지는 모른다. 그저 무언가 쓰고 싶다, 알리고 싶다,는 간절한 갈망만이 아직 남아 가슴을 따뜻하게 할 뿐이다.

 4학년의 어느 시점 이후로 온갖 글을 썼다. 사랑, 갈등, 시험, 친구관계, 사회...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쓰다 보니 자연스레 실력이 늘어만 갔고 중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글쓰기 상이란 상은 다 휩쓸기 시작하였다.

 꿈 발표에서 '소설가'라 말하는 게 너무 벅찼다. 뱃속 깊이서부터 무언가 끓어오르는 듯했고 자세하게 장래희망을 발표할 때는 열정과 희망으로 얼굴이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그 당시 나는 나 자신에게, 그리고 글쓰기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미소 지은 얼굴로 당당하게 꿈을 발표하는 모습을 끝으로 과거의 영상은 종료되었다. 빛이 사라진 시야는 지극히 어두워 어딘지 무서워져 눈을 떴다. 어느새 바람은 멎고 태워 죽일 듯한 빛만이 전신을 감싼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때의 꿈이 더 이상 심장을 크게 박동시키지 못하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그 꿈을 꾸는 것조차 사치라고 생각하게 되어버린 것이.


 반복되는 시험과 수행평가, 대학에서 요구하는 끝없는 스펙들과 생기부 관리. 이제는 '취미'가 아닌 '의무'가 되어버린 독서의 서글픔 속에서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문장은 어느새 '감정'이 아닌 '기억'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과거의 찬란했던 날들을 떠올렸음에도 잠잠한, 무심한 심장에 문득 주체할 수 없이 안타까워져서, 어린 날의 '나'와 그 어린 소망이 너무 안쓰러워서 눈물이 났다.

 밖에서 울어버리면 돌이킬 수 없이 비참해질 것 같아 고개를 들어 올렸다. 따가운 햇살에 눈이 시리다. 촉촉해진 눈가의 물기가 열기에 이기지 못해 날아가는 걸 느끼며 한동안 그렇게 있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어 살짝 눈동자를 굴리다 보니 문득,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바람은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아.. 아하.. 아하하하하!"

 웃음이 났다. 바람이 익숙해지고 태양이 더욱 강렬해졌을 뿐, 여전히 바람은 불고 있었다. 살포시 살포시 내 뺨을 스치고 머리를 헝클이며 감싸 안아주고 있다. 한 번 알아차리기 시작하자 방금까지만 해도 전혀 느껴지지 않던 선선함이 크게 회오리치며 입으로, 코로, 머리로 스며들었다.

 그날 본 책과, 그날 본 아이들, 그날 내뱉은 말들은 세월의 풍파에 형태가 조금 변하였을 뿐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그날의 꿈 또한 분명 여기, 남아 있는 것이다. 그 순간, 퍼지는 따스하고 애틋한 감정에 그만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참아왔던 눈물이 넘쳐흐르며 입에선 기괴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혼자 하늘 보다 땅 보다 멍 때리고 울고 행복해하는 게 우스워 울면서 웃었다.


 투명한 빛과 스치우는 바람 사이로 기묘한 웃음소리만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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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의 기록들을 하나둘 정리했다. 이제는 기억에도 남지 않는,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했을 무렵의 기록을 버리고, 한창 분노와 슬픔, 과도한 기쁨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날들의 기록을 버리고, 얼마 전 흐리멍텅한 머리로 끄적인 기록을 버렸다. 점점 비워지는 책장. 정신없이 노트를 쓰레기통에 주워 담는데, 유독 두꺼운 책 하나가 손끝에 걸렸다.


 <2019 수령산>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받은 학교잡지였다. 한창 글에 미쳐있었던 시기라 학교 잡지에도 꽤 많은 글을 실은 데다, 친한 친구들의 글이 많아 추억하고픈 마음에 보관해 뒀던 것이다. 머뭇거리며 책을 열었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익숙한 이름들이 보였다. 환경에 관심이 많았던 친구, 페미니즘 운동에 앞장섰던 친구, 학교의 실태에 관한 주장이 견고했던 아이와 전자기기에 능했던 친구. 가장 아팠고, 가장 풍만했던 시기를 공유했던 이들의 낯낯을 보았다.


 이사를 하면서, 집 구조를 바꾸면서도 늘 가장 먼저 챙겼던 수많은 일기장과 기록장을 내다 버렸음에도, 이상하게 이 책은 버릴 수 없었다. 이 기록이 아쉬워서 그런가. 잡지에 실린 글은 남기고 싶은 것일까. 어딘가에 옮겨둔다면 버릴 수 있을까, 싶어 가장 크게 실린 글 두 가지만 여기에 옮겨 썼다.


 어설픈 문장과 그만큼 어설픈 감정들을 베꼈다. 장황한 문장, 절제되지 않는 날것의 감정. 지금 와 보면 그리 잘난 글이 아님에도 이상하게 이 책만큼은 버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버리며, 과거를 버렸다. 한심했던 생각과 감정들을 버리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이렇게 하나둘 과거를 버리다 보면, 지금의 나도 버릴 수 있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모든 기록을 다 정리하고 나면, 끝이 오지 않을까.


 그런데, 아직은, 아직은 그 끝을 볼 준비가 안 됐나 보다. 도저히 버릴 수가 없다. 내 생에 온기를 전해준 친구들과의 추억을, 다사다난했지만 끝없이 발버둥 쳤던 과거의 나를.


 우스운 일이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삶을 이어가게 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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