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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난 Jul 13. 2024

지난밤의 기억

 물에 잠긴 듯 정신이 몽롱하다. 눈을 떴음에도 여전히 암흑이라 두어 번 더 눈을 깜박인다. 문득 손이 축축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겨우 잡힌 초점 사이로 보인 손은,

피에 잠식되어 있었다.


 서늘함과 축축함. 소리 없이 떨어지는 핏방울을 멀거니 바라보다 고개를 들었다. 사람, 사람, 사람. 온통 사람으로 가득하다. 피부가 보일 틈 없이 검은 옷으로 무장한 사람들. 그들 또한 온몸을 피로 적신 채였다.


 둥글게 서 있는 사람들 중앙에 놓인 피투성이의 사내. 아니, 여성인가. 알 수 없다. 그저 그것이 사람이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침묵 속에서 우리는 모두 그렇게 서 있었다. 몸을 움직이는 것도, 하물며 눈을 감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은 채, 그저 그렇게. 나는 그들을 바라봤다.







#


 어릴 적 같은 학교에 다닌 애였다. 같이 논 것은 고사하고 같은 반조차 된 적 없는, 그저 이름만 아는 아이.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어울린 적 있는 아이도 있었지만 대개 이름만 아는 정도의 친분이었다. 그들은 내게 프레젠테이션을 강요했다. 급작스러웠지만 자신 있는 주제였기에 자신 있게 나섰다.


 들뜬상태로 얼마간 떠들었을까 온화하던 공간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청중은 날카로워졌고, 아무도 무어라 하지 않았으나 입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 후로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정신을 차려보니 수일이 지나있었고, 나는 그 애를 모욕한 희대의 쓰레기가 되어있었다. 그 애는 교묘하게 날 비난했고, 아니, 의도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그녀는 상처받은 듯, 혹은 기쁜 듯했다.


 누구도 내 변명을 들어주지 않았다. 당연했다. 나도 지난 수일이 생각나지 않았으니.








#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몸이 흔들리고 바닥이 흥건해졌다. 누군가가 계속해서 날 공격하고 있음에도 이상하게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칼이었던 것 같다. 아니, 그저 날카로운 무언가였을 수도 있다.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는 고저 없이, 해야 할 일을 한다는 듯 그렇게 끊임없이, 행위를 반복했다.









#



 이상한 일이다. 친모는 평소와 달리 과격하게 화를 냈다. 소꿉친구는 기가 질려 다시는 오지 않겠다며 떠났다.





#


 누군가가 계속해서 내 팔을 건드렸다. 툭툭. 가볍게, 그러나 지속적인 움직임에 궁금증이 일었다. 눈을 떴으나 흐릿해 상대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까만, 무언가가 날 보고 있음이 느껴졌을 뿐이다.


 









 계속해서 이런 류의 꿈이 이어진다. 잠에서 깨고 난 후엔 한동안 좌측 가슴이 아려오고 떨린다. 숨을 가다듬고 필사적으로 재밌는 것을 보고 난 후에야 겨우 진정시키지만 일상 속 끈적한 감각은 떨쳐내지지 않는다.


 어느 날은 잠에 드는 것이 무서워 부러 공부를 하거나, 재밌는 것을 찾아보기도 했다. 심리적으로 몰린 탓인가 싶어 쉬어보기도 했다. 친구를 불러 실컷 떠들다 함께 잠들어보기도 했다.


 소용없었다.

 자지 않을 수는 없기에 그저 지치길 기다렸다 기절하듯 잠들기를 반복한다. 일상이 흔들리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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