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난 Jul 06. 2024

포기하기

 돌아보면 나의 가장 큰 고민은 가족이었다. 양친의 불화, 친인척의 부고, 친애에 대한 욕망과 인정욕구. 그중 가장 큰 딜레마는 양친에 대한 이해였다.


 여느 딸과 아버지가 그렇듯 내게도 친부는 난제였다. 그의 사고방식은 나와 비슷한 듯 사뭇 달랐고, 운동선수 출신이었던 친부는 거친 부분이 많았다. 때문에 그의 사소한 언행은 내게 늘 상처였다. 나는 예민한 기질을 지니고 있던 데다 문학을 즐겨하는 과정에서 어휘의 미묘한 차이를 인식하게 되면서 더더욱 우리 둘의 갈등은 깊어졌다.


 그는 어휘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늘 발화자보다는 청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믿었으며, 때문에 자신의 표현이 어떠하든 상대가 '알아서' 이해해 주길 바랐다. "다 알아듣잖아", "이해하잖아."가 그의 말버릇이었다.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이해했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했고, 그 기저에 깔린 감정과 직면했다. '말'이란 신묘한 측면이 있어서, 발화상황에서도 인지하지 못했던 발화자 내면의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심리가 반영되기 마련이다. 나는 그의 말이 비롯한 곳을 봤고, 그곳에 '사랑받고자' 하는 아이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누구나 그러하듯 그는 사랑받길 원했다. 좋게 말해 훈육이지, 사실상 가정폭력을 자행했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항상 애정에 목말라 있었다.


 그는 아내에게서 엄마를 찾았으며, 자녀로부터의 돌봄을 바랐다. 칭찬을 고파했으며 불안에 떨었다.


 그렇기에 일상생활 속 사소한 비난에 과하게 반응했으며 공격적으로 굴었다. 본인이 공격적이라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말이 날이 될 수 있음을, 그의 말 하나하나에 상대가 일희일비할 수 있음을, 그는 진정 모르는 듯 -어쩌면 모르는 척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했다.


 어릴 적에는 나름 애썼다.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의 내면에 자리한 어린아이를 수용하기 위해서. 물론 잘 해내지 못했다. 당연하다. 나는 '정말' 어린아이였으니까.


 너무 어릴 적에 가행된 그 시도는 되레 짙은 상흔을 남겼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이해는 자해와 다름없음을, 그때의 나는 몰랐던 탓이다.


 상흔을 입고 난 뒤에는 그래, 그가 안아주길 바랐다. 네가 그토록 노력했구나, 부모의 역할을 전가해서 미안하다, 그저 토닥여주길 바랐던 것 같다.-그때는 무엇을 바라는지 조차 몰랐다.


 소중했던 가족의 부고가 들려온 것도 그때쯤이었다. 내 유년기의 사 할은 차지하는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게 꽤나 버거웠다. 연이어 따라온 고등학교로의 진학까지. 그 일련의 상황이 지나치게 무거웠다.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로 글을 썼다. 글은 내게 동아줄이었다. 터져 나오는 감정, 끝없이 떠오르는 이미지와 형용되지 못한 생각들을 어찌저찌 써 내려갔다. 그러고 나선 곧잘 주위에 보여주곤 했다. 속된 말로 관종이라 그랬던 면도 있지만 알아주길 바라서였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위로해 주길. 차마 입으로는 내뱉을 수 없었던 마음을, 누군가는 알아봐 주길.


 양친에게 글을 건넬 적에는 떨렸다. 이제는 알아줄까. 어쩌면 그토록 갈구했던 말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 '말 한마디'가 무어라고. 그토록 갈망했더랬다. 그 한마디면 응어리진 무언가가 녹아내릴 수 있다고 믿었더랬다.


 당연하지만 끝내 그토록 원하던 말을, 원하던 사람에게서는 들을 수 없었다-난데없는 사람이 되레 한 적은 있다. 그때 나는 그를 포기했다.


 이후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자살기도를 한 뒤에는 다시 한번 슬며시 기대가 고개를 쳐들었다. 어쩌면, 이번에는. 이번에는 알아줄지도 모른다고.


 그는 그의 힘듦을 호소했다. 그게 그 나름의 위로방식이었음을 안다. 그러나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이 늘 같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는 감정을 털어놓을 것을 요구했고, 시간이 흐르며 드문드문 넘치는 감정을 풀었다. 그 과정이 과격하고 어리숙했음을 안다. 하지만, 그는 늘, 나의 감정을 버거워했다.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슬퍼한 행위를 반복했고, 이에 더 분노하면 예민하다 다그쳤다.


 나는 그에게, 그래, 화가 났다. 그에 대한 감정을 안타까움, 슬픔, 애정으로 표현하고는 했으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분노'였다.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님을 모르는 것에 화가 나고, 그것을 알려고 하지 않는 태도에 화가 났으며, 종국에는 그의 모든 언행이 아니꼬웠다.


 어른이 되면 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지 알았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더 많은 경험을 하면 할수록 그를 이해할 수 없게 되어간다. 자라면 자랄수록 그의 불행이, 나의 고통을 정당화할 수 없음을 알아간다.


 어쩌면 아직 덜 성숙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더 많은 경험과 감정 끝에서는 그를 수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나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그를 이해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게 못 견디게 수치스럽고 또한 후련하다.


이전 01화 호우주의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