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을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막히는 부분이 생긴다. 개념의 공백이든, 활용능력의 부족이든 반드시 고민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머리를 쥐어뜯거나 답답함에 다리를 떨면서도 그 부분이 퍽 반갑다.
여러 배움 중 책상에 앉아 일어나는 배움은 적은 기회비용으로 삶에서 가장 중요할지도 모르는 가치를 새겨준다. 좌절하고 분노하며 문제상황을 제대로 마주하고 스스로 처리해 나가도록 하는 것. 일상을 비롯한 대부분의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이자 태도를 지니게 한다.
인강을 주요 학습수단으로 활용하는 내게는 몇몇 존경하는 선생님이 있다. 그중 이투스와 Ebsi 수학 강좌를 진행하시는 정승제 선생님과 Ebsi 윤리와 사상을 담당하시는 한보라 선생님의 말이 유난히 머릿속을 맴돈다.
정승제 선생님-선생님 당신께선 선생이라 불리기에는 미흡하다며 생선님이라 부르라 하셨지만 그분을 그저 강사로 국한하기에는 수학뿐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가르침을 받았기에 선생님으로 칭하겠다-께서는 "수학은 안 풀려서 수학이다"라고 하신다. 풀리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시간이 걸리는 건 필연적인 것이라며 끝없이 고민하고 실패하라고 하신다.
'많은' 문제풀이에 집중하여 각각의 문제에 대한 고민을 도외시하는 현교육의 행태에서, 그분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는, 잊혀진 교육의 목적을 상기시킨다.
'빨리' 교재를 끝낼 것을 강요하는 여타 강좌들을 듣다 조급해진 마음을, 그분의 강의를 통해 진정시킨다. '어차피 지금 못 풀면 11월 14일에도 못 푸는 거다. 풀 때까지 도전하자. 안 되면 내년에 다시 하면 되지.'라는 마음가짐으로 문제를 마주하면 놀랍게도 문제의 본질이 보이기 시작한다. 출제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어떤 개념을 어떻게 활용한 것인지, 더 간단하게 해결할 방법은 없는지를 고민하다 보면 흔히 킬러문제라 불리는 것들을 풀어낼 수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늦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되레 학습을 가속화시킨다.
Ebsi 윤리와 사상 담당 한보라 선생님께서는 어려운 개념에 앞서 늘 학생들에게 '쫄지 말 것'을 당부하신다. 문제에 압도되는 순간, 문제를 볼 수조차 없게 되니까.
어렵고 급할수록 스스로를 토닥이며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못할 것은 없다는 자기 확신을 쌓아가는 것. 그것이 수험생활을 통해 아이들에게 가르치고자 한 것은 아닐까.
실패해도 부작용이 적은 교과과정을 통해 삶에서 마주해야 할 갖가지 고난들에 맞설 수 있는 힘을 쌓도록 해주는 것.
학생을 가르치는 것을 목표로 다시금 수능에 도전하는 것이니만큼 교육의 주된 목적을 끊임없이 상기하며, 학생의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는지를 성찰한다. 추후에 가르칠 아이들이 좋은 '성적'뿐 아니라 진정한 '배움'을 얻을 수 있게끔. 그리하여 나와 그의 수업이, 그들의 미래에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줄 수 있도록.
오늘도 터덜터덜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를 부여잡고 걸어간다. 내가 포기하는 순간까지는, 결코 네게 패한 것이 아니라는 일념으로 그에게 도전장을 내밀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