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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난 Aug 31. 2024

언어의 반향

 한동안 귀가 먹먹했다. 물속에 있는 듯 귀에 물이 가득 찬 느낌이 지속되었다. 딱히 아픈 것도 아니고, 계속 그런 게 아니라 잠시 먹먹했다 괜찮아지길 반복했던 탓에 방치하길 보름. 도저히 나아지지 않는 증상에 기어코 병원을 방문했다.


 이전에도 고막이 터진 적이 있었던 지라, 대충 그런 것이겠지 하는 마음으로 들어간 이비인후과. 한 시간의 기다림 끝에 받은 진단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놀랍게도 귀의 문제가 아닌 코의 문제였던 것. 원래도 비염이 있었으나 그것이 심해지고, 가래도 계속 쌓이는 와중에 귀와 코가 연결된 부위의 기능이 약해지는 바람에 귀가 먹먹해졌던 것이었다.


 때문에 진료 내내 의료진이 주의를 기울인 건 코의 상태와 호흡문제였다. 계속해서 입을 벌리고 있는 습관은 코로 호흡이 되지 않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입이 자꾸 텄던 것이라는 의사의 설명. 이어지는 코 기능의 부실함과 그로 인해 컨디션이 떨어지면 생길 수 있는 증상들에 대한 말들.


 문득 친구들과 여행 갔던 날들이 떠올랐다. 똑같이 비행기를 탔음에도 유난히 오랜 기간 귀가 먹먹했던 순간들. 엘리베이터를 타면 비행기를 탈 때의 증상이 생기며 심할 때는 어지러웠던 것. 컨디션이 안 좋을 때면 순간 숨이 안 쉬어지며 가슴이 답답했던 것들.


 대다수의 사람들이 느끼는 증상들을 과하게 예민하게 받아들이며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진짜 신체가 안 좋았던 것이다.


 이상하게 가슴이 후련해졌다.


 생각해 보면 그런 순간들이 있다. 분명 아프고 괴로운데, 그 고통이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실재하는데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아무것도 아니게 될까 봐. 그저 그런 칭얼거림에 불과하게 될까 봐. 혀끝까지 치밀어오른 호소를 목구멍 아래로 밀어 넣는 나날들. 나조차도 내가 호소하는 아픔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어 아프다는 말조차 허용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허용되지 못한 통증은 몸을 불려 괴로움을 더한다.


 그렇기 때문일까. 그저 내가 아픈 것이, 정말 아픈 것이라는 인정만으로도 한결 통증이 가라앉기도 한다. 정신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그 별것 아닌 '인정'이 놀라우리만치 강력하다.


 때문에 누군가의 고민을 들을 때면 그의 감정을 그 자체로 수용하려 노력한다. 시비판단 이전에 그의 감정은 그 자체로 부정당할 수 없고, 부정당해서도 안 됨을 인지하려 애쓴다.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에게 전해진 나의 발화가 내게도 영향을 미침을 인지한다. 누구보다 듣고 싶었던 말을 상대에게 함으로써 되레 나 자신이 위로받고 있음을 느낀다.


 대화란 그토록 신비롭다. 타자에게로 향한 말은 발화자를 구속하고, 내게로 온 말은 너를 정의한다.


 그렇기에 우리들의 대화가 보다 섬세했으면 좋겠다. 상대에게 이 문장이, 이 단어가, 이 호흡이 어떻게 비칠지 고민하고, 곱씹으며 한마디, 한마디를 신중하게 내뱉었으면 한다.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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