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은 이야기 같은 관계를 많이 구축한 사람이다. 그와 그가 다니는 미용실 사장님의 관계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꽤 사교적인 사람이라 머리를 자르고 다듬는 순간에도 헤어디자이너와 다양한 대화를 나눈 듯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그는 헤어디자이너의 특별함을 발견했다. 자신만의 색채를 지닌, 범인에게는 특이함으로 비칠 수 있는 뚜렷함을 지닌 사람. 헤어 디자이너의 내면과 스타일링이 퍽 마음에 들었던 그는 이후로 줄곧 그 미용실을 이용하게 되었다.
며칠 전 초대받은 특별한 파티는 그 헤어디자이너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던 중, 애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링크와 함께 이곳에 초대받았는데 한번 같이 가는 게 어떻겠느냐는 그의 물음에 호기심을 안고 링크에 접속했다. 검은색 바탕에 거칠게 칠해진 하얀 붓놀림, 그 옆에 간단히 자리 잡은 정제된 문구. <All Night Long>이라는 이름의 파티는 테크노 음악과 함께하는 No phone 파티였다. 테크노라는 장르에 대해 무지했지만 애인이 즐기곤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게 기억나 흔쾌히 승낙했다.
시간이 흘러 파티 당일이 되었다. 어떤 것이길래 그리 즐겼을까 설레는 마음 반,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 반으로 들어선 클럽. 호들갑스럽게 춤을 추는 사람들과 술의 향연일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클럽은 꽤, 그래, 으스스했다. 어두운 입구와 직원을 지나치자 보이는 내부를 가득 메운 연기.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연기 아래로 사람의 인영만이 어렴풋이 보였다. 일렁이는 인영들이 드문드문 자리해 있고 조금씩 흔들리는 게 얼핏 사후세계 같아 소름 돋게 무섭기도 했다. 커다란 음악 소리와 가리어진 시야 사이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두려움에 벗어나고픈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이왕 와 본 것 한번 제대로 보자는 마음으로 애인의 손을 잡은 채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연기를 헤치고 안으로 들어서니 애인이 몇 번 이야기하곤 했던 헤어디자이너가 디제잉을 하는 것이 보였다. 어떻느냐고 묻는 애인에게 묘한 기분으로 신기하다고만 답했다. 쿵쿵거리는 음악소리는 심장을 커다란 판으로 내리치는 것 같았다. 숨쉬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자 나가고 싶다고 말할까,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강렬히 들었다.
그때, 애인이 눈을 감고 들어보라고 권유했다. 한껏 들뜬 듯한 그의 표정에 그래, 조금만 더 참아보자는 생각으로 눈을 감았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또 다른 세상을 보았다.
공허한 세상, 혹은 무언가로 가득해 알아볼 수 없는 검은 세상에서 나라는 형상만이 존재해 있었다. 검은 세상에 배경과는 다른 명도로 테두리 지어진 '나'라는 형상. 칠흑같은 어둠 아래 테두리 안쪽만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었다. 꾸덕한 질감의 푸른 물감이 거칠게 덧칠되고, 붉은빛을 머금은 노란색 스프레이가 온갖 방향에서 뿌려지며 세상에 흔적을 남긴다. 옅은 연두색의 물감들이 마구잡이로 칠해지고 그 위를 얇은 막대가 스치고 지나가며 정제되지 않은 길을 형성한다. 무수한 형태의 색이, 각기 다른 속도와 방식으로 빠르게 내부를 채우고 사라지고 덧대어진다. 그 빠른 움직임 속에서 나는, 고요를 느꼈다. 심장을 울릴만한 소음이 외레 정적을, 고요함을 일구었다. 격렬하기에 차분한, 역설적인 감각에 놀라움과 안정감을 느끼며 눈을 떴다.
놀랍게도 소음의 정도와 크기는 이전과 같음에도 더 이상 숨이 가쁘지도 불쾌하지도 않았다. 도리어 커다란 음악소리가 계속해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왔다. 바람에 따라, 음악에 따라 흔들리는 가느다란 초의 움직임, 눈을 감고 음악을 향유하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하얀 연기로 가득한 공간에서 그들을 볼 수 없음에도 볼 수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더 이상 그 광경이 기이하게도, 무섭게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문득, 이 공간을 가득 메운 이 연기가 우리를 고요함으로 이끄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해상도를 자랑하는 현대사회에서 잠시나마 너와 나가 식별되지 않는 흐릿한 세계에 뛰어든다. 늘 뚜렷했기에 그 모호함이 두렵고, 괴랄하게 다가왔지만 오히려 나와 너를 알 수 없기에 나와 너를 알 수 있게 됨을 인지한다. 내가 드러나지 않기에 나를 드러낼 수 있게 되고, 네가 드러나지 않기에 너를 궁금해한다. 그로 인해 마주한 가장 태초의, 가장 깊은 존재의 연원.
의도된 세상에서 다시 한번 눈을 감았다. 시야가 차단되자 직전에 보았던 또 다른 세계가 드러난다.
그러나 조금 달랐다. 짙은 어둠이었던 테두리 밖이 연한 그레이로, 더 짙은 검정으로, 얼룩덜룩한 형상으로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그 후에 마주한 현실세계는 또 조금 달라져있었다. 여전히 흔들리는 인영만 보임에도 주변에 자리한 사람들이 보다 더 가까운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들의 흔들림이, 그들의 정적이 그들 또한 방황하고 고민하며 무언가를 갈망하고 갈구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 지난함과 아름다움을 알기에, 그곳에서 처음 마주한, 이름조차 모르는 이들에게 옅은 애틋함을 느낀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그 공연은 내게 삶을 보여줬다.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할 수밖에 없는 낯섦과 두려움, 고난과 고통들을, 견딜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그것들의 지난함을 마주하기 위한 '나'와의 대화의 필요성을, 그 대화 이후의 확장된 세상을.
처음 그곳에서 마주한 과도한 음량의 음악은 고통이었으나, 그 통증 아래에서 나는 나를 마주했다. '나'라는 세상을 마주하고서야 고통은 즐거움으로 바뀌었고, 세상을 관조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을 관조하다 보니 상대가 보였고, 상대에게서 또 다른 '나'를 봄으로써 너와 나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이 당연하고도 어려운 과정을, 가사 하나 없는 음악을 통해 체험할 수 있다는 것에 경이감을 느낀다.
예술이라고는 공부하며 접한 각 철학자의 예술에 대한 정의 정도만을 겉핥기식으로 알고 있는 게 다인 나이지만,
이런 게 예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단순하게 느껴질 수 있는 감각적 경험으로 나와 세상을 궁구 해보게 하는 것.
어쩌면 나는, 내 인생 최초의 음악적 예술을 접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