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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

네이버 웹툰 <당신의 과녁>을 보고

by 하난

여느 날과 다름없이 달빛을 안주 삼아 술을 들이켰다. 감사했던 사람들, 즐거웠던 순간들, 연인과 사랑을 나누었던 나날. 못내 반갑고 꽤나 황홀했던 순간들을 곱씹으며 또 하루를 감사히 정리했다. 비척이는 몸을 흥겹게 흔들며 집으로 향했던 것 같기도 하다. 무거운 것에 짓눌려 낑낑거리는 어떤 노인을 도왔던 것도 같다. 사람 좋게 웃으며 감사를 전하는 노인에게서 시원한 음료를 한 잔 마셨던 것도 같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연쇄살인범이 되어 있었다. 온몸을 적신 붉은 피와 소리 지르는 사람들, 흉흉한 얼굴로 계란을 던지는 시민들. 도통 알 수 없었다. 내가 무고한 아이를 죽였다고 한다.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한 여인을 토막 내어 살해하고 그 시신을 먹었다고 한다.


순식간에 나는, 사형수가 되어 있었다. 알 길 없는, 고통스러운 하루하루가 지속되었다. 강압적인 수사와 몰아치는 사건들, 울부짖는 가족들과 멀어지는 친구들. 사람이되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죽였던 걸까. 난 그저 술을 마셨을 뿐인데. 아닌가. 술을 마시고 홧김에 지나가는 사람을 죽인 걸까. 그런 거였을까. 아아, 생각해 보니 그랬던 것도 같다. 붉게 물들었던 사람들이 생각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 내가 살인자였다. 극악무도한 짓을 저질렀다. 그럴 수가.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17년이 흐른 뒤, 새로운 기사가 세상을 들썩였다.


‘17년 전, 연쇄살인의 진범?’

‘17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최 모 군, 부실수사의 피해자’

‘진범은 사망. 피해자의 한은 누가 풀어주나’


이상한 일이었다. 오래 입어 한 몸이 된 수형복이 벗겨지고 지나치게 밝고 넓은 곳으로 내몰렸다. 몰아붙이던 기자들은 또 다시 달려와 소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아빠가, 나를 안는다.


“고생했다. 고생했어.”


이상한 일이다. 나는 연쇄살인마인데. 연쇄살인마여야 하는데. 어째서.



17년 전 연쇄살인의 진범은 내게 음료를 건네었던 노인이었다. 낡고 더 늙은 사진이었음에도 한 눈에 알아봤다. 노인을 보는 순간, 그가 자연사했음을 듣는 순간, 분노와 서글픔, 억울함이 북받쳐 올랐다. 왜, 어째서. 그날 그 노인을 돕지 않았더라면, 그날 혼자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그날 누구라도 데리고 갔더라면, 무언가 달랐을까.


돌아온 집은 엉망이었다. 온갖 낙서로 얼룩진 복도와 벽, 지우려 노력했으나 남은 끔찍한 욕설과 저주들. 망가진 안경을 겨우 쓴 채 지쳐있는 아빠, 뇌졸중이 와 식물인간이 된 엄마, 괴롭힘으로 학교를 자퇴하고 콜센터에서 근무 중인 동생. 모든 게, 모든 게 엉망이었다.


그렇게 나는, 복수를 결심했다. ‘진짜’ 살인범의 가족에게 똑같은 고통을 선사해 주기로.





___________





네이버 웹툰 <당신의 과녁>의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누명을 쓴 채 긴 옥살이를 한 주인공 최엽은 진짜 연쇄살인범의 손녀를 납치해 17년간 가두어둠으로써 그들에게 비슷한 고통이 주어지도록 계획한다. 계획에는 최엽이 무고한 죄를 뒤집어쓰는 데 일조했던 기자와 형사, 그의 친구들과 여동생이 동조한다. 그들은 살인자의 손녀를 가두어둘 공간을 함께 만들어 나가게 되는데, 그 과정이 퍽 특이하다. 산골 으슥한 곳에서 건물을 가다듬고 내부를 정리하는 것인데, 하물며 그것이 범죄를 도모하기 위한 것인데도 그들은 바비큐를 준비하거나 노래방 기기를 구비하기도 하며,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서로 좋아하는 예능 프로를 얘기하며 떠들썩한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모두가, 사실은 최엽이 계획을 멈췄으면 했던 것이다. 너무도 오랜 기간 고통받았던 그가 조금이나마 일상으로 돌아와 평안을 되찾길 바랐던 것이다. 최엽조차도 그런 것을 바랐던 것 같다. 한 사람을 납치하는 데 필요한 공범이 여섯이나 필요한가. 셋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일반인인 친구들과 여동생에게 말해야 했을까. 그저, 멈춰 주길 바랐던 것은 아닐까. 이것 외에는 살 방법이 없는데, 이걸 하고 싶지는 않아서, 누구라도, 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멈춰주길, 구원해주길 바랐던 것은 아닐까.


실제로 공간을 꾸리는 과정에서 최엽은 거의 계획을 포기한다. 그러나 신은 그에게 원한이라도 있는 것일까. 그가 행복을 꿈꾸는 순간, 또 한 번 그를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한다. 살인자의 손자가 그를 찾아와 사실 그들은 10년 전, 자신들의 가족이 진범이었음을 알았음을 누설한 것이다.

최엽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괴로워한다. 이제서야, 이제서야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왜.


이윽고 그는 손녀 납치를 행동에 옮기게 되고, 그녀에게 닿기 직전,

놀라운 일을 목도하게 된다.


근래 그 주변에서 기승을 부리던 연쇄 성폭행범들이 손녀를 먼저 납치한 것이다. 그냥 두기만 해도 큰 죄책감 없이 복수를 실현할 수 있는 상황. 계획에 동참한 그의 친구들을 갈등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도덕’을 위해, 전혀 무관한 타인의 안녕을 위해, 가장 가까운 이의 고통을 외면하는 게 맞는 것일까. 복수를 잊어라, 네 삶을 살아라, 같은 허울 좋은 말들이 진정으로, 청자를 위한 발언인가.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삼키며 갈등하던 그들이 결심을 다지고 최엽을 돌아보는 순간,


그는 이미 손녀를 태운 차를 추적하는 중이었다.


최엽은 끝내 인간이길 포기할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위험에 처한 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손녀를 구하고, 울부짖는 가해자 가족들을 보며 모두를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한 그는, 타인을 죽이지 못해 스스로 죽길 택했다.


철물점에 가 냉장고를 옮길 때 사용할 수 있는 탄탄한 밧줄을 달라고 했고, 주변을 거닐다 하늘을 보며 그렇게, 덜컹-

추락했다.


멀쩡하게.

그래, 그는 멀쩡하게 떨어졌다. 코끼리도 못 끊을 법한 끈이 그로 인해 끊어진 것이다. 끊어진 줄을 황망하게 바라보던 그에게 여동생의 다급한 전화가 온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울며 달려간 최엽, 밀치듯 들어간 곳에서 그는, 앉아 있는, 웃고 있는 어머니를 목격한다.


<당신의 과녁>은 그렇게 막을 내린다.

이야기를 보는 내내 갑갑함과 억울함, 분노와 슬픔이 가슴을 메운다. 묵직하게 뱃속을 짓누르는 감정은 울컥 쏟아져 나올 듯도 하다.


이야기를 보며 다양한 인물이 되어보았다. 최엽의 친구가 되어보기도, 그의 동생이 되어보기도, 그의 연인이 되어보기도 했다. 최엽이 진짜 범인일까 봐, 이제껏 봐 온 친구가 사실은 전혀 다른 사람일까 봐 두려워 단 한 번도 면회를 가지 못한 친구의 이야기를 보며, 내가 그였다면 친구를 끝까지 믿을 수 있을까. 망설임 없이 친구의 편을 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


오빠를 믿었지만, 지속되는 괴롭힘과 모욕으로 자퇴하고 내몰린 끝에 결국 꺾여버린 동생을 보며, 나는 우리 오빠를 저토록 강고하게 믿고 지지하며 나서고 외칠 수 있을까, 생각했다.


4년 동안 한주도 빠짐없이 면회를 가던 그의 연인을 바라보며, 나도 저렇게 간절히 흔들리지 않고 기다릴 수 있을까, 돌이켜봤다.


그러다 문득, 그 말이 생각났다.


“사실 가장 힘들었을 사람은 최엽 본인일 텐데, 주변 인물들의 사정에, 그들의 감정에 이입하게 된다.”


<당신의 과녁>을 추천해 준 연인이 한 말이다. 고통스러웠음이 분명하고, 노력하고 있음이 분명한 이들 앞에서 최엽이 울음을 삼키며 한 말을 봤을 때, 이상하게 그게 생각났다.


“너희와 함께 있을수록 나는 혼자 있음을 느껴.”


모두 힘들었다고 한들 최엽은 고통만을 겪어야 했던 반면, 다른 이들에게는 일상이 있었다. 잠시라도 숨통 트이는 순간이 있었고,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그들과 최엽은 분명 달랐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우리는 늘 주변인을 먼저 신경쓰곤 한다. 범죄 피해자의 가족, 자살자의 유가족 등. 우리가 가장 핵심적인 피해자가 되리라 생각지 못하기 때문일까. 그것은 너무 잔인함을 알기에 무의식적으로라도 그런 상상에서 도망하고픈 걸까.

사실을 자각하자 불편해졌다. 우리가 흔히 잘 되라고 하는 상투적인 말들, 혹은 제 딴에는 상대를 생각한답시고 진심을 담아 하는 말들이 사실을 나 좋자고 하는 말은 아니었을까. 내 죄책감 덜자고 하는 소리는 아니었을까. 과연 무엇이, 진정 상대를 위한 것일까.


문득 어디에서인가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복수가 공허함만 남기고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고 하는 건, 복수만 했기 때문이야. 복수하면서 놀기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쇼핑도 해 봐. 복수하고 나서 내가 해냈다고 애들이랑 부둥켜 안고 방방 뛰면 더 기분 좋지.’


이야기를 끝까지 보고 여러 번 되되며 생각해봤지만 무엇이 옳은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우리가 자주 입에 담는 정의니, 윤리니 하는 것들이 사실은 다 강자의 이익이어서 지킬 어떠한 의무도 없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이유로 되레 중요한 사람, 소중한 사람의 감정을 억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것 하나만은 명확하다.

그럼에도, 그것이 불합리에 가까울 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아름답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________





작품과는 별개로 연인에 대해 얘기해 보고 싶다. 솔직히 <당신의 과녁>은 자의로라면 절대로 보지 않았을 작품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림체가 굉장히 내 취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화를 중요시하는 사람으로서 제아무리 대작이라고 해도 그림체가 별로면 거들떠도 안 보았기에, 그리 유명한지도 모르겠는 이 작품은 평소의 나라면 결코 보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다섯 달 정도 만났을까. 그 기간동안 연인은 정말 많은 것들을 알려주었다. 원래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들을 하고, 평소라면 했을 것을 안 하게 한다. 패션도 그렇고, 화장도, 노래도, 음식도 많은 것이 그러하다.


그래서 두렵고 무섭기도 했다. 한순간에 너무 많은 것이 바뀌어서. 연인의 입맛에 맞게 조련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사라지는 게 아닐까. ‘나’는 무엇일까.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질문까지 올라가 한동안 괴로워했었다.


심하게 싸우고 화해해 보기도 처음이었다. 장장 7시간의 긴 다툼. 너무 울어서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머리가 아픈 와중에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이기고 싶다는 철없는 호승심이 들기도 했고, 포기하기 싫다는 간절함 때문이기도 했다. 화나고 슬픈 와중에도 상대가 듣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던 탓이기도 하고, 더 편하고 즐겁게 오래 보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그의 앞에서 나는 더 ‘나’다웠는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도 내보인 적 없는 생각들을 내보이고 이기적으로 굴기도 하고, 비논리적인 감정을 퍼붓기도 했다. 모순적인 스스로에 부딪혀 힘들다고 징징거려도 보고, 왜 날 더 무조건적으로 좋아해 주지 않느냐고 칭얼거리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참 못난 모습을 많이 보였다. 가장 정제된 모습,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못나고 원초적인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었던 것 같다.


<당신의 과녁>을 보며 울고 불편해하고 기뻐하고 낙담하며, 비슷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근래의 나날들이 연인으로 가득 차 있어서일까, 대부분의 순간이 그였다. 전혀 다른 이야기를 읽으며 그를, 그와의 관계를 정제했다. 어쩌면 뜬금없을지도 모르는 이 상관관계를, 그러나 꼭 남기고파 이렇게 정제되지 않은 글을 적는다.


감정이 앞서 늘 말이 너무 많은 글을 쓴다고 혼나던 나이기에 정돈된 글을 쓰려고 노력해 왔지만 이번에는 그냥, 쓰고 싶은 대로 손이 가는 대로 쓰고 싶었다. 엉망진창에 혼란스러운 글일지라도 이상하리만치 마음은 편안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대사를 끝으로 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러면!!
그러면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겁니까.....
나는... 또.... 참아야하는 겁니까..?
심장이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애간장이 흔적도 없이 녹아가는데도..? 당하는 놈은 늘 당하고 참는 놈은 늘 참아야하는 겁니까?
나 같이 당하기만 하는 등신은... 복수조차도 과분한 일입니까..?
나한테 그짓한 인간들..!!
띵가띵가 하면서 잘 살때!!
난 매일 밤 어떻게 죽을 지 생각합니다.... 매일... 매일이요....
그렇게 견디고 또 견디고
또 또 견디고
그러다가 결국 견디기 못해서...
이겨내지 못해서...
결국엔 제가... 목이라도 매달고 죽어야.. 그제서야 후회하실 겁니까..?

- 당신의 과녁 60화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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