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에 위치한 카페인 탓인지 착석한 사람들은 제각각 책이나 노트북을 꺼내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다. 고요한 공간에 그에 맞춘 듯 고요한 음악이 선선히 흘렀다. 시간이 남아 다이어리를 꺼냈다. 다이어리에 끼워두었던 편지지들. 대상자에 대한 기억, 그에 대한 감정을 차곡차곡 적어 내렸다.
오후 5시가 지나니 애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퇴근하고 집에 가는 중이라는 그와 소소한 일상을 나누었다. 아침에 보고 헤어졌음에도 애틋한 마음에 짧았던 하루가 어땠는지 도담도담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기다리던 사람이 도착했다.
머리를 예쁘게 틀어올리고 한쪽 어깨가 보이는 성숙한 옷을 입은 여인. 예전의 이목구비가 남아있지만 볼살이 빠지고 성숙해져 몰라보게 바뀐 그녀는 오랜 친구였다. 한 해가 넘도록 보지 못했음에도 익숙하고 반가운 얼굴이었다.
한껏 들뜬 기분으로 친구에게 인사를 전했다.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더 예뻐졌네. 상투적인, 그러나 진심이 담긴 인사를 나누는데 그녀의 반응이 이상했다.
웃으며 인사를 하는데 어딘가 찝찝한 구석이 있는, 시끄러운 공간에서 옆 사람이 무어라 말하는 걸 알아채긴 했는데 내용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어서 그냥 웃어넘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짧은 선물 교환식이 있고 난 후, 테이블에 시선을 둔 그녀가 우는 듯 웃는 듯 말을 꺼냈다.
“얼마 전에 네가 쓴 글을 읽었어. 네 애인과 함께 테크노 클럽에 갔던 날의 이야기였는데, 참 찰 썼더라. 그 감각이 어땠는지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어. 원래도 글을 잘 썼는데 필력이 정말 더 좋아졌더라고. 그런데. 그게 좀 이상하더라.
네가 이렇게 필력이 좋아지는 동안, 난 뭘 한 거지. 네가 이렇게 필력이 좋아지는 동안, 난 널 모르고 있었구나.
예전에는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냐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너라고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게, 그게 조금 씁쓸하더라.”
울먹이며, 숨을 들이켰다, 말을 더듬고, 테이블을 바라봤다, 다시 날 보는, 울음을 삼키는 그녀를 보며, 울컥, 눈물이 치솟았다. 어떤 기분인지 너무 잘 알 것 같아서. 어떤 생각을 한 것인지 너무, 너무 잘 알겠어서.
그녀는 가장 오랜 벗이다. 초등학교 1학년, 여름날 교문에서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먹었던 것이 그녀와의 첫 기억이다. 오랜 친구이니만큼 많은 순간들을 함께 했다. 처음으로 친구와 바다에 가 보기도 했고, 영화를 보러 가보기도 하고, 좋아하는 아이에 대해 호들갑 떨며 이야기 하기도 하고, 첫 요리를 함께 하고, 서로의 보호자를 알고, 서로의 집에서 묵기도 했다.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새벽 같이 일어나 농구대로 향하기도 했고, 괴상한 간식들을 창조해내기도 했다. 마을에 생긴 커다란 공원에 가 서로의 우스꽝스러운 사진을 찍어대기도 했고, 서로에게 전달할 편지를 마주 앉아 적기도 했다. 다 떠올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순간들, 무수한 처음을, 가지각색의 감정을 함께 했다.
‘내 가장 오랜 벗이자 가장 친한 친구.’
오랫동안 그녀를 정의했던 문구이다. 문구였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그녀가 대학을 가며 자연스럽게 교류는 드물어졌다. 우리가 향하는 방향이 너무나 달랐기에, 취향이 너무 바뀌어서, 그렇게 자연스레 서로를 모르게 되었다.
그녀는 춤을 곧잘 추어서, 대학 동아리도 댄스동아리에 들었다. 한번씩 SNS에 관련 영상을 올리곤 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알던 어린 모습은 사라져갔다.
그녀가 상을 탔다고 한다. 무슨 대회에 나갔다고 하는데 지난번에 나간 대회와 다른 건지 잘 모르겠었다.
그녀가 애인을 만난 지 한달이 되었다고 한다. 전 애인과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내가 나의 삶을 사는 사이, 그녀는 아득해져 이제는 ‘안다’고 말하기 힘들어졌다. 그렇게 많은 걸 공유했던 사이였는데, 그렇게 허물없이 지냈던 너인데, 이제는 무얼 좋아하는지 조차 명확히 알 수 없다는 게 씁쓸하고 쓸쓸했다.
그 쓸쓸함이,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데에 이기적이게도 위로 받았다.
단절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이어짐’이란 묘한 것이어서, 단절되어도 이어질 수 있는 것이었구나. 꼭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두 시간선처럼 서로를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더라도 그 공간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이어짐은 이어지는 것이었구나. 우리의 어린 날은 여전히 예쁘게 서로를 장식하고 있었구나.
그게 퍽 고맙고 기뻤다. 그게 퍽 좋았다.
그녀와의 일이 발화점이었던 걸까. 그건 모르겠다. 다만 아주 오랜만에 친오빠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 졌다.
고등학생 때 취직해 집을 떠난 오빠여서 꽤 오래 남처럼 지냈다. 크게 서로를 무시하거나 외면한 것은 아니지만 여느 집처럼 먼저 연락해 잘 지내는지 묻기에는 꽤 낯부끄러웠다. 부모님이 나설 때만 가끔 만나곤 하길 6년인가. 그동안 오빠는 많이 달라졌다. 수도권으로 가더니 부산 사투리는 어디 가고 버터 바른 듯 부드럽고 조금은 느끼한 말씨를 구사하기 시작했고, 어릴 때 잘 먹던 음식은 먹지 않고, 싫어했던 것들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생일 선물 고르기도 퍽 어려웠다. 예전에는 돈이 없어 못해줬다면 이제는 무얼 좋아할지 몰라 무얼 해주기 어려웠다.
데면데면 지낸 것과 별개로 오빠는 늘 내게 고마운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러 나가 우리 둘밖에 없을 때면 오빠가 항상 나의 보호자였다. 친구랑 놀고 싶을 법도 한데 집에 머물며 밥을 차려 주기도 하고 장염에 걸려 구역질을 해대면 싫어하는 기색 없이 날 앉혀 놓고 토사물을 치웠다. 친구랑 놀 때도 날 데리고 가곤 했고, 취업한 후에 돈을 벌고 나자 내게 노트북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친구와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꽤 비싸다는 말을 듣고는 곧장 티켓을 끊어주기도 했다. 엄마, 아빠가 다투는 소리에 울고 있을 때면 제 용돈으로 치킨을 사 와 신경쓰지 말고 먹으라며 다독여주기도 했다.
오빠는 내게 오빠였지만, 또 다른 양육자였고 보호자였다. 저도 어린 아이였는데 그보다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울음을 참고, 화를 견디며 날 지켜준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항상 고마웠고, 행복하길 바랐다. 좋아하는 프로그래밍 실컷 하며 인정받고, 좋아하는 사람과 즐거운 연애도 하고 재미난 곳, 신기한 곳도 잔뜩 다니고, 그렇게 행복했으면 했다.
이러저러한 사고도 치고 못나 보일 때도 있지만 언제나 선하고 바르게 살려 노력하는 오빠는 내게 자랑이었다.
그렇지만 우리도 흔한 남매였기에 낯간지럽다는 이유로 감사를 전하고 안녕을 기원하는 것을 미루곤 했다. 그래서, 이번에 전하기로 했다. 전하고 싶을 때, 가장 전해야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감사를 전하기로 했다.
마침 얼마 전 오빠가 부산에 내려와 편지를 전했다. 와플을 먹다 대뜸 받은 편지에 이게 뭐냐며 웃던 오빠는 편지를 읽어내리며 눈을 붉혔다. 떨리는 손끝에 괜히 땅끝을 바라봤다. 잘 전했다. 정말 잘했다 싶었다.
약간은 다른 이야기로, 오빠가 내려왔을 때 가족들과 대화 같은 대화를 했다. 아니, 논의라고 해야 할까. 여느 집이 그러하듯 우리집도 갈등이 잦았다. 엄마, 아빠가 싸우기도 했고, 부모님과 나, 혹은 부모님과 오빠가 갈등할 때도 있었다. 특별히 불행하지는 않았지만 퍽 힘들긴 했다. 늘 얼른 이 냉전이 끝나길 바랐고, 신경질적으로 굴거나 무시해버렸다. 그게 내 나름의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대화를 시도했다. 중재자가 되어 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만류하고 가족 구성원이 각자의 생각을 온전히 말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내 생각과 감정을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말해보았다. 처음으로, 합의에 가까운 결론을 내렸다.
별 것 아닐지도 모를 이 일이 내게는 크나큰 기쁨이었다. 해방감이 들었다. 후련했다. 오랜 짐을 내려놓은 것 같기도 했다.
하나 둘, 마음에 쌓아놓았던 옛 관계들을 제대로 마주하자 삐그덕거리던 바퀴가 제대로 굴러가기 시작하는 것 같다. 기름칠이 필요했나보다. 새로운 것을 가지고 와 여기저기 달고 장식하기 이전에 원래 있던 것들을 다듬을 필요가 있었나 보다. 그 덕인지 근래에는 좋은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다.
수능이 끝나고 난 후에 빵집과 보드게임 카페 알바를 시작했다. 꽤나 오래 히키코모리 생활을 했기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떨리기도 했고 알바를 안 한 지 너무 오래되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도 걱정되었다. 손이 빠른 편이 아니라 민폐가 되지는 않을까 불안하여 잠 못 이루기도 했다.
사실 알바하며 많이 힘들었다. 제 딴에 빨리 해보겠다고 하다 여기저기 부딪혀 멍도 잔뜩 들고, 공부하는 동안 체력이 너무 떨어진 탓에 알바 다녀온 다음 날이면 온 몸이 아파 고생이었다. 계속 예민해진 상태였고 늘 피곤했다.
그런 나날을 버틸 수 있었던 건, 함께 했던 사람들이 너무도 좋은 분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빵집 점장님은 내가 추울까 걱정하며 당신의 옷을 벗어주시곤 했다. 당신의 간식을 나누어 주시기도 하고 내 이야기를 듣고 새 출발을 응원해주시기도 했다. 실수해도 괜찮다고, 초보니까 실수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숨기지만 말라고 하시기도 했고. 실수해 당황해 하는 내게 괜찮다고 다독여 주시기도 했다.
빵집에서 함께 알바하는 다른 언니들도 모두 친절하다. 아직 서툰 날 배려해 내가 해야 하는 몫을 가져가 대신 해주시며 당신은 설거지를 좋아한다고 해주기도 하고, 진상 고객이 있으면 나서서 물리쳐 주기도 했다.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고 배고파하는 것 같으면 옆 자리에 앉게 하고 식사를 하게끔 배려해주었다.
보드게임 점장님은 내 주거지가 근무지에서 먼 것을 감안해 부러 알바시간을 조정해주시기도 했다. 계속해서 좋아하는 것을 묻고 음료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다른 알바생들과 친해질 수 있도록 일부러 서로를 불러 각자가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고 이야기할 수 있게끔 하셨으며, 갑작스레 알바를 빼야된다고 했을 적에도 외레 잘 다녀왔냐고 물어주셨다.
트레이너님은 크리스마스에 서버가 터지고 손님들이 몰리는 상황에서도 알바생들을 챙겼다. 시간이 남을 때마다 알바생들에게 이렇게 바쁘고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당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당신이 가장 힘드실텐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보드게임 카페의 알바생들 또한 모두 비슷하다. 언제고 친절하려 노력하고 잘잘못을 가리기 이전에 사고를 해결하고 다른 사람이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어쩌다 구한 알바처들이 모두 이렇게 좋은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게 참 감사하고 기쁘다. 생각해 보면, 그들 덕분에 오히려 옛 관계들, 정리하지 못한 것들을 다시 마주할 힘을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참 재밌다. 나의 오랜 사람들이 또 다른 관계를 일구는 밑거름이 되고, 새로운 관계가 오랜 관계를 더 튼튼하게 지탱하는 끈이 된다. 이렇듯 순환하는 관계가, 이토록 친절한 사람들이, 세상이 살 만하다고 느끼게끔 한다.
그들로 인해 살아가고 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