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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난 Nov 23. 2024

세상을 날아오를 수 있을까

영화 <위키드>를 보고

 이듬해까지 두 달도 남지 않은 무렵. 겨울임에도 따뜻한 햇볕을 맞으며 영화관으로 향했다. 수험생 할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자 열의를 불태우며 선택한 영화, <위키드>를 보기 위함이었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한산한 극장 안. 듬성듬성 자리한 사람들과 공활한 듯 소담한 공기를 공유하며 그렇게 영화는 시작되었다.

영화 <위키드>는 서쪽 마녀의 죽음을 축복하며 시작된다. 말을 할 줄 아는 동물들과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던 곳. 화목했던 공간에서 시작된 균열. 동물들의 편에 선 서쪽 마녀. 서쪽 마녀의 등장으로 동물들은 점차 힘을 키우게 되고, 사람들은 그녀를 저주하게 된다. 이야기는 또 다른 마녀, 글린다가 서쪽 마녀를 죽이고 그의 죽음을 사람들에게 전하면서 시작된다.


 서쪽 마녀의 죽음을 전해 들은 마을 사람들은 다 함께 서쪽 마녀 동상을 불사 지르며 춤추고 기뻐한다. 글린다는 그들과 함께 춤추며 서쪽 마녀의 죽음이 "Good News "라고 하지만, 어쩐지 그녀의 눈은 슬퍼 보인다.


 긴 춤 끝에 떠나려는 글린다를, 한 소녀가 붙잡는다. 소녀는 글린다에게 서쪽 마녀와 친분이 있었는지를 묻고, 글린다는 씁쓸한 표정으로 서쪽 마녀의 과거를 이야기한다.


 서쪽 마녀- 엘파바-는 영주의 딸이었다. 초록 피부를 지닌 채 태어난 그녀는 어려서부터 냉대와 차별 속에 커온다. 선천적으로 마법에 재능을 지니고 있었으나 그조차도 두려움과 괴이함의 증표일 뿐이었다. 부모에게서도 외면받는 나날들.


 그녀의 삶이 바뀐 날은, 그녀의 동생이 쉬즈 학교에 입학하던 날이었다. 동생을 데려다주러 간 엘파바는 우연히 대마법사의 눈에 들어 그의 수제자가 되게 된다. 또한 대마법사의 눈에 들기 위해 아등바등하던 글린다와 룸메이트가 되게 되는데, 아름답고 모두에게 예쁨 받는 글린다와 대마법사에게 인정받은 이질적인 모습의 엘파바는 상당히 자주 부딪히게 된다. 상극인 두 소녀는 툭하면 싸움을 일삼고 서로를 비난하지만,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절친한 친구가 되게 된다. <위키드>는 두 소녀를 중심으로 그들이 서로의 대척점에 서게 된 계기를 보여주며, 그 과정에 녹아든 현실의 부조리함과 씁쓸함을 고발한다.


  <위키드>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것이 많으나, 가장 먼저 주인공 '글린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글린다는 상스럽게 말해 '머리 꽃밭인 예쁘기만 한 여자애'이다. 어여쁜 외모와 사랑스러운 목소리, 제법 좋은 가문에 외동. 모두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란 그녀에게 타인의 애정과 호감은 흔하고 당연한 것이다. 그녀는 스스로 '남들보다 대단하다'라고 생각하며, 그들에게 선의를 베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선의로 베푼 것을 고마워하고 자신을 선망하고 갈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흔한 귀족집 아가씨였다.


 글란다가 처음 엘파바를 보았을 때, 그녀는 무수한 군중 앞에서 "네 삶을 동정해. 내가 대마법사가 되어 네 피부색을 바꾸어줄게. 네 문제를 해결해 줄게."라고 이야기한다. 이에 대해 엘파바가 부정적으로 대응하자 글란다는 황당해하며 그녀를 싫어하게 된다.


 글란다가 이후 친구에게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뭘 잘못한 거야? 난 선의로 그런 건데."


 우리는 쉽게 값싼 선의를 던지고, 그에 대응하는, 혹은 그것을 뛰어넘는 보상을 바란다. 이에 대한 거부를 상대의 예민함 혹은 싸가지 없음으로 정의하고, '감히' 나의 선의를 무시한 그를 비난하곤 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쉬이 우월주의에 빠져서 무엇이라도 된냥 상대에게 선의 아닌 선의를 '베풀고', 원하는 값을 바랐다. 지금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인식했다고 해도, 아마 앞으로도 종종, 혹은 자주 그럴 것이다. 그런 사고가 너무도 쉬운 것이기에. 너무도 자연스럽기에.


 그렇기에 지금, 한번 더 고민해보고 싶다. 내가 상대에게 준 것이 진정 '선의'에서 비롯된 것인지. 나를 돋보이기 위한 것인지, 상대를 위한 것인지. 상대의 거부가 그의 예민함일지, 나의 무관심함일지.


 자주 사용하던 단어들이 문제시되고, 흔한 행위들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는, 때론 '피곤하게' 느껴지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기에 더더욱 고민해야 함을 인지한다. 우리가 바꾸어 나가야 할 문제가 그들의 예민함으로 퉁쳐져 외면당하지 않도록. 불편함이 불편함에 그치지 않도록.


 또, 글란다가 엘파바에게 'popular'의 중요성을 노래하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저명했던 사람들, 후대의 혀끝을 맴도는 그들이 모두 똑똑했기 때문이냐고 생각하냐고 하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popular'이며, 그것이 인생을 영리하게 사는 방법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허례허식, 겉모습, 치장. 내면을 중시하는 과정에서 그것들은 가치 없고, 때로는 불결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내면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외면의 중요성, 겉으로 보이는 것들의 강력함을 절감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기에, 사람들의 틈에서 살아가기에. 우리가 사는 곳이 사람이기에, 일차적으로 접할 수밖에 없는, 어쩌면 가장 강렬하고 단순한 지표인 외관은 중요하다. 말투, 웃음, 손짓 등도 마찬가지다.


 더불어 외관과 언행은 내면을 표방한다. 그 사람의 가치관이 그의 모습으로 드러나고, 반대로 그의 겉모습이 내면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내면과 외면의 유기성에 의해서 한 인간은 구축되고 존속한다.


 '쇼(show)'는 그래서 중하다. 영혼을 드러내고, '척'이 진실이 되도록 하며, 사회가 굴러가도록 한다. 명분을 도외시한다면, 사회는 굳고 자연상태로 복귀할 수밖에 없다.


 글린다와 연인관계를 맺은 왕자, '피예로'에 대해서도 논해보고 싶다. 피예로는 자유분방한 영혼으로 수없는 퇴학을 경험하고 쉬즈학교에 들어온다. 쉬즈학교의 도서관에서, 학업에 몰두하는 학생들의 책을 덮으며 그는 '자유롭게 춤추라'고 노래한다. 쉽게 포기하고 춤추듯 살아가라고 노래하는 그는 유쾌하고 흥겨워보이나 동시에 서글퍼 보였다.


 피예로의 춤을 보노라면, 요즘의 욜로족들이 떠오른다. 이전에 비해 포기가 빨라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노력이 웃음거리가 되고, 열정이 거적대기가 되는 것을 쉽게 발견하곤 한다.


 웃음거리가 된 열정에 분노하면서도 비웃는 이들을 생각한다. 그들이라고 그런 삶이 무가치해 보였을까. 진정 그곳에서 어떠한 두근거림도 느끼지 못했을까.


 어쩌면, 비웃지 않고는 버티기 힘들었던 건 아닐까. 어떤 분야에서든 최상위의 성과만을 인정하는 사회에서, 그 아래는 허송세월로 취급하는 행태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력이 짓밟히는 것을 목도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무가치하다고 생각해야만 했을까.


 성취 없는, 인정 없는 성장이란 불가능에 가깝다. 제대로 달리기도 전에 다리가 꺾인 이들이 선택해야 하는 건, 누워있는 것뿐이지 않았을까. 누워서 하늘이라도 바라보며, 이것도 낭만이라며 울음 어린 웃음을 짓는 것뿐은 아니었을까.


 책을 내던지고 배움을 그친 듯했던 왕자는, 핍박받는 동물들을 위해 기꺼이 위험한 일을 무릅쓴다. 스스로를 이기적이고, 무관심한 사람이라 말하는 그는, 당연하다는 듯 우리에 갇혀 학대당하는 표범을 구한다.


 그게 못내 슬펐다. 왕자가 교육을 외면했던 건 교육에 실망했기 때문은 아닐까. 혹시나 우리도,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포기를 가르치고 있지는 않을까.


 서쪽 마녀-엘파바-가 인간들의 적이 된 까닭은 동물들 때문이다. 공생하던 말하는 동물들과 인간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인간은 동물에게서 언어를 빼앗고, 그들을 핍박한다. 잔인하게 그들의 혀를 뽑고 날개를 꺾는다. '친구'에서 '도구'로 전락한 동물들. 두려움에 떠는 그들을 보며 엘파바는 동질감과 슬픔을 느낀다.


 엘파바는 그들을 돕기 위해 대마법사가 되고자 노력하고, 노력 끝에 무슨 소원이든 들어준다는 마법사들의 아버지,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간다. 친애하는 스승님과 존경하는 오즈의 곁에서 웃음 짓던 엘파바. 그러나 그녀의 웃음은 오래가지 못한다. 동물들과 반목하게 된 계기가 다름 아닌 오즈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 탓이다.


 혼란스러워하는 엘파바에게 오즈는 안정적인 국가를 위해, 민심을 모으기 위해서는 공공의 적이 필요했다며 설득한다. 믿었던 스승의 어두운 면을 목도한 엘파바는 그들의 반대편에 서기로 결심하게 되고,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여기서, 동물을 핍박하기 위한 수단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그들이 동물을 격하시키기 위해 가장 먼저 취한 액션은 다름 아닌 '말'을 빼앗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를 조금만 반추해 봐도, 기득권이 그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했던 것이 '언어'를 독점했던 것임을 떠올릴 수 있다.


 그들은 알았던 것이다. 언어의 힘을.



"인간이 서로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낱말 50만여 개, 5500만여 개 따위가 무슨 소용일까. 말과 글은 우리가 서로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증표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낙인찍으면 말과 글은 효용을 잃는다. 말과 글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숨이며 희망이다. 현실이 초토화되었어도 글을 짓고 말을 할 수 있다면 희망과 믿음을 버리기에 아직 이르다.

'산말(실감 나도록 꼭 알맞게 표현한 말)', '산소리(어려운 가운데서도 속은 살아서 남에게 굽히지 않으려고 하는 말)'는 있어도 '죽은 말', '죽은 소리'는 없다. 대신 '거짓말(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미는 말)', '신소리(상대편의 말을 슬쩍 받인 엉뚱한 말로 재치 있게 넘기는 말)', '허튼소리(함부로 지껄이는 말)', '헛소리(실속이 없고 미덥지 아니한 말)' 등이 있다.

접히고 구겨지고 꼬부라지고 늘어지고 너절해지는 한이 있어도 죽지 않으며 하거나 듣거나 못 하거나 많거나 적을 수 있을 뿐이다. 나거나 굳거나 떨어지거나 뜨거나 되거나 아닐 수 있을 뿐이다. 죽이려 한 권력자는 많았으나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말을 죽일 수는 없다."


-어른의 어휘력, 유선경-




 언어를 창조하고 기록하며 넘겨줄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인간이게 만든다. 언어는 생각이며, 생각은 영혼의 또 다른 이름이다.


 언어는 언어 자체로 고귀하거나 가치 있지는 않다. 그것이 전할 수 있는 것들, 그것이 담고 있는 것들로 인해 언어는 생동한다. 그것이 담고 있는 것은 너무도 다양하나, 그중 역사에 대해 말하고 싶다.


 작중에서 동물을 억압하기 위한 수단 중 두 번째로 행해지는 것이 역사교육의 폐지이다. 미래를 보아야 한다는 이름으로 역사를 지운다. 처음부터 동물이 도구였던 냥 아이들을 가르치고 그들의 이름을 지운다.


 기득권이 국민을 저들 마음대로 부리기 위한 흔하디 흔한 수단 중 하나이다.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 사람으로서, 하나의 생명체로, 역사에 무임승차하지 않기 위해. 언제가는 동물이 되어있을지도 모를 미래의 '나'를 위해, 우리는 끝없이 언어를 궁구하고 역사에 질문해야 한다.


 이번에 본 것이 <위키드 : 파트1>이기에 엘파바의 끝이 어떠한지 명확히 알지 못하나, 처음의 내레이션에 의해 그녀의 죽음을 예측한다. 그녀가 인류의 적으로 기억되었던 것을 떠올린다.


 역사는 가장 필요하고 절실한 것임과 동시에 가장 강력한 거짓말쟁이이다. 때문에 끝없이 의심해야 한다. 언어 너머의 시대를, 그 시대의 정신을, 우리가 이어받아야 할 것을 고민해야 한다.


 엘파바처럼 죽어간 이들이 많다. 핍박받는 이들의 행복을 기원하고 부정의를 타파하고자 했으나, 그렇기에 매도당하며 떠나간 이들이 너무도 많다.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그들의 반짝임이 빛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누군가의 죽음 위를 사는 우리들이 그들에게 보내는 최소한의 감사는, 그들의 뜻을 잊지 않는 것이다. 그들의 뜻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위키드>는 외모로 인한 차별, 기득권 계층의 선동, 우정과 사랑, 현실과 이상의 괴리, 역사의 위조가능성 등 다양한 주제를 조화롭게 드러낸다. 한 번쯤은 고민해 보고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을 너무 무겁지 않게, 그러나 유치하거나 장난스럽지 않게 풀어낸 점이 인상적이다.


 내년 이맘때쯤 개봉될 파트 2를 고대하며, 작중 인상 깊었던 대사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실망을 반복하게 되면 희망이 사라지게 되고, 희망이 사라지면 침묵하게 돼."

- 위키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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