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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맑음 Jan 15. 2023

언니도 ‘꾀병’이면 좋겠습니다.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


팽팽한 검정 고무줄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가다가 보면 입술이 쩌억 갈라지는 순간이 온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듯 마른침을 쥐어짜 보지만 갈증이 해소될 리 없다. 마라톤으로 치자면 '사점'구간일 것이다. 다리마저 내 다리를 외치는 순간, 구원처럼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다.


"그만 놀고 저녁 먹어라!"


보이지 않는 바통 릴레이가 목소리에서 목소리로 이어진다.


"미선아! 그만 들어와! 밥 먹자!"


"철희야! 어서 들어와 밥 먹어라!"


"영미야! 국 다 식는다. 어서 들어와!"


끝내 우리는 구원받지 못했다. 다정한 엄마의 음성 대신 불어온 바람 소리. 땀을 식혀주는 바람의 손길마저 오싹하다. 점점 붉게 그라데이션 되는 신비로운 노을 끝에 고단했던 하루가 쉬어가는 저녁, 검은 그림자가 길게 누워버린 텅 빈 골목에 언니와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현주야, 우리도 그만 들어가자."


"응, 언니."  


딸깍. 스위치를 켜니 부엌에 숨어있던 어둠이 쥐와 함께 사라진다. 소꿉장난에나 어울릴법한 9살, 8살 고사리손이 저녁 준비로 바쁘다. 마당에 깊이 파묻힌 쌀독에서 쌀을 퍼 담는다. 조심스레 물을 붓고 쌀을 씻는다. 차륵 차륵. 양은 볼에 쓸리는 쌀알의 노랫소리가 경쾌하다. 뽀얀 물을 쪼르륵 따라내고 맑은 물을 받을 때 수도꼭지를 세게 돌리는 날에는 진땀을 빼야 했다. 하수도 구멍을 미끄럼틀 삼아 신나게 떠내려가려는 쌀알들,  쇼생크 탈출이 따로 없다. 탈출하려는 쌀알과 막으려는 우리의 필사적 사투. 패배자는 주로 우리였는데, 그런 날엔 옷도 젖고 우리 눈가도  젖었다.


압력밥솥에 쌀을 담고 물높이를 맞출 시간, 언니는 나보다 한 살이 많다는 이유로 밥물 높이를 맞추는 중대한 임무를 맡았다. 압력밥솥에 쌀을 탈탈 털어 넣고 그 위에 손을 덮은 뒤 물을 부으며 밥물을 가늠한다. 손등 위로 물이 잘박하게 덮이면 통과. 무거운 뚜껑을 꽉 덮고 딸깍 돌린 뒤 가스불을 탁 켜면,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휴.


칙칙 칙칙. 압력밥솥이 증기 기관차처럼 달리기를 시작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추가 춤을 추기 시작하는데 그땐 긴장의 촉수를 펼쳐야 한다. 칙칙 소리가 극에 달할 무렵, 적당한 타이밍에 불을 줄여야 밥이 찰지게 잘 되는데 너무 빠르게 줄이면 설익은 밥을, 너무 늦게 줄이면 까맣게 탄 밥을 먹게 된다. 숯검댕이와 누룽지 밥을 여러 번 먹고 난 뒤 언니와 나는 밥하기의 달인이 되었다.


밥하기라는 첫 번째 임무가 끝나면 언니와 나는 티브이 앞에 배를 깔고 누워 만화를 봤다. 그러나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시간이다. 즐거운 시간은 왜 이리 빨리 흐르는지. 뒹굴뒹굴 행복한 쉼도 잠시, 두 번째 임무를 수행하러 나가야 한다. 아빠는 왼팔이 없으시다. 오른팔로 시장에서 노점을 하시는 아빠의 퇴근을 돕기 위해 밤마다 시장에 나가야 했다.  


“따르릉, 따르릉.”


종소리만 들으면 침을 질질 흘렸다는 파블로의 개처럼, 같은 시간 울리는 전화 벨 소리에 나는 장이 꼬이고 배가 아팠다. 한겨울 호빵 같은 이불 속을 빠져나와 매서운 회초리 같은 눈보라를 맞으며 걷는 일은 고통이었다. 5분만. 2분만. 방바닥에서 미적거리는 나와 다르게 언니는 벌떡 일어났다.


“현주야! 어서 나가자. 아빠 기다리셔.”


“언니, 나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파. 아.. 배야. 진짜야 언니. 나 못 가겠어.”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던 언니는 그 어떤 추궁도 하지 않은 채 이불을 덮어주고 혼자 나갔다.


언니도 알았을 텐데, 꾀병이란걸. 차라리 꾀병 부리지 말고 어서 일어나라고 소리쳤다면 마지못해 따라나섰을 텐데. 그렇다면 이렇게 마음이 힘들지 않았을 텐데. 따뜻한 방에 누워 만화를 끝까지 보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큰 바위 아래 깔린 듯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못난 나를 책망하는 사이 시간은 빠르게 흘러 가족들이 돌아왔다.


도저히 언니와 아빠 엄마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이불을 뒤 짚어 쓰고 잠든 척 연기를 했다.


“현주야, 배 아픈 건 괜찮니?”


모두가 걱정스레 물으며 흔들어 깨울 때까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으응.. 이제 괜찮아.”


온 가족이 밥상에 둘러앉은 늦은 저녁시간. 엄마는 밥이 아주 잘 됐다며 언니와 나를 칭찬하셨다. 평소 같으면 함박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들썩거렸을 텐데, 죄인처럼 고개를 떨군 채 쌀인지 돌인지 모를 밥을 씹고 또 씹었다.


그날 이후 다시는 꾀병을 부리지 않았다. 일 안 하고 집에 있어도 절대 행복하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으니까. 나보다 겨우 한 살 많은 언니는 그 큰 진리를 어떻게 안 것일까. 태어날 때부터 첫째의 삶의 무게와 지혜는 다른 것일까.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언니의 속 깊음을 따라갈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연년생으로, 꼭 쌍둥이처럼, 힘든 시간을 함께 건너온 언니가 아프다고 한다. 언니도 오래전의 나처럼 꾀병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꾀병”이었다고, “농담”이었다고 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현주야, 언니 유방암이래.”


2022년 12월, 한 해의 끝자락에 걸려온 언니의 전화 한 통에 평온했던 일상이 산산조각 났다. 마치 내 삶이 멈춘 것 같은 충격이었다. 퉁퉁 부은 눈으로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처음 든 생각이 ‘이제 어제와 같은 아침은 없겠구나.’였다. 예상대로 그날 이후 오늘까지 “유방암”이라는 단어가 내 삶을 지배하고 있다.


국립암센터에 문의하니, 정밀검사를 모두 받고 정확한 병기와 암종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기까지 약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소유된다고 했다. 그사이 암과 유방암에 대한 책을 5권 정도 구입해서 공부하고, 유방암에 대한 정보가 공유된 건강 블로그와 카페에 가입해서 또 방대한 양을 공부하며 시간을 보냈다.


12월 29일, 정밀검사 결과 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피고처럼 그렇게 떨릴 수가 없었다. 불안에 떨고 있는 언니 손을 꼭 잡고 웃으며 말했다.


“언니, 너무 걱정하지 마. 내 생각에는 2기 정도 일 거야. 내가 촉이 좋잖아. 수술하고 항암 하면 되니까, 걱정 마. 언니.“


애써 태연한 척 들어선 진료실에서 우리가 마주한 검사 결과는 무자비했다. 유방암 뼈전이 4기라니.


왼쪽 가슴 원발암 사이즈는 크지 않았지만, 왼쪽 겨드랑이 림프를 타고 깊이 전이된 암이 경추와 흉추 뼈까지 퍼져있었다. 뼈 스캔 사진을 보는데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던 결과지라서, 도저히 보고도 믿을 수, 아니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치료를 해야 되나요?”


“너무 늦게 오셨어요. 지금 상황이면 온몸에 암이 퍼졌다고 봅니다. 수술은 전혀 의미가 없고, 불가하며, 완치를 위한 치료가 아니라 생명 연장과 지연을 위한 치료가 될 겁니다.”


우리는 너무 기가 막혀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 중 다행인 건, 언니의 암종이 치료 약이 많고 가장 예후가 좋다는 호르몬 양성에 허투 음성이라는 점이었다.


호르몬 억제 주사를 맞기 위해 언니가 피를 뽑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잠시 자리를 떠나 숨어서 울었다. 목 빠지게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친정엄마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너무 막막했다.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최대한 목소리를 밝게 하고 말했다.


“엄마, 언니 결과, 전화로 말씀드리기에 조금 복잡해서, 집에 가서 말씀드릴게요.”


곧이어 남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퇴근하고 엄마집으로 와. 설명해 줄게.”


전화를 끊자마자 신랑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떻게 됐어? 언니 몇 기래?”


신랑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꾹꾹 누르고 눌렀던 눈물샘이 폭포수처럼 터져버렸다.  


“여보.. 어떻게.. 우리 언니.. 4기래.. 뼈까지.. 전이가 되었대… 어떻게 여보.. 수술도 못하고.. 어떻게..”


어린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고 또 울었다. 아빠의 죽음 이후 이런 울음을 울어본 기억이 없다.


친정엄마와 동생, 그리고 시댁 가족들, 초1, 초3 어린 조카들까지, 한바탕 홍역을 호되게 치르고 난 이후, 우리는 더 이상 울지 않는다. 언니 치료를 위해 언니의 시댁과 우리 친정이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사랑으로, 씩씩하게 움직이고 있다.


속 깊은 신랑이 서둘러 우리 집 바로 옆, 전원주택 엄마 집에 언니가 머물 방을 하나 더 만들기 위한 공사를 진행했고, 가장 비싼 침대와 가장 좋은 이불을 준비했다. 바로 뒤가 산이기 때문에 자연치료제인 신선한 공기, 산소와 따뜻한 햇살이 보장된다. 거기다가 건강한 친정 엄마표 밥상까지, 그야말로 모든 게 완벽히 준비된 엄마 집에서 언니를 쉬게 하면서 오로지 치료에만 전념할 계획이다.


먹는 항암 약과 호르몬 억제 주사로 병원 치료를 잘 받으면서, 보완 치료와 보조 영양제, 그리고 건강한 식단과 운동으로 치유에 힘쓸 것이다. 언니와 같은 암종, 비슷한 병기, 더 심한 병기의 유방암 환우님 들 중 완전관해를 이루어가는 분들, 호전되고 계신 분들을 알게 되어 실제적 도움과 코치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유방암”에 대해 이해를 하고 나니, 해볼 만한 싸움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적을 모를 때는 무섭고 공포스럽지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하지 않던가. 유방암의 원리를 똑똑히 알고 나니 요동치던 마음이 잔잔하고 평안하다.


어려서부터 언니에게 사랑의 빚을 많이 졌다. 이제 내 차례다. 사랑의 빚을 갚을 절호의 기회. 마음으로, 물질로 아낌없이 도우리라 신랑과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선을 행하되 낙심치 말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또 새기며.


나는 갈망한다. 언니가 암에 걸리기 이전보다 더 건강해지길. 나는 소망한다. 언니가 암에 걸리기 이전보다 더 행복해 지길. 나는 기도한다. 언니의 암 투병이 단순한 치료를 넘어 재발과 전이를 원천봉쇄하는 완벽한 치유의 길이 되길.


그리고 확신한다. 아무리 험하고 높은 산도 오르고 오르다 보면 반드시 정상이 있고, 아무리 어둡고 긴 터널도 그 끝에는 반드시 밝은 빛이 있듯이,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이 싸움에서 끝내 승리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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