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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맑음 Feb 15. 2023

과거와 미래보다 ‘현재’

2023년 2월 6일 들려온 튀르키예, 시리아 지진 소식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땅이 시루떡인 양 힘없이 쩌억 갈라지는 인공위성 영상과, 철근으로 무장된 건물들이 연체동물처럼 흐물흐물 주저앉는 모습은 마치 재난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이건 꿈일 거야. 아니면 CG겠지. 폐허로 변해버린 참담한 피해 규모를 보며 현실을 부정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잔인한 재앙을 맞은 그들의 어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따뜻한 보금자리를 빼앗긴 그들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1분 뒤에 일어날 사고를 미리 알았던들 피할 수 있었을까. 영화 ‘돈 룩 업’을 보면 사랑하는 가족들과 최후의 만찬을 즐기면서 종말을 맞이하고, 영화 ‘타이타닉’에서는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의 손을 맞잡고 침대에 누운 채 덮쳐오는 바닷물에 휩쓸린다. 이처럼 알아도 손을 쓸 수 없는 자연의 섭리와 운명앞에서 인간은 한 낱 먼지일 뿐이다.


우리에게도 전 국민을 실의에 빠뜨린 사건 사고가 있었다. 삼풍 백화점 붕괴와 세월호 침몰이 그랬고, 이태원 참사가 그랬다. 설렘과 기쁨, 행복과 즐거움이 공포와 눈물, 불행과 절망으로 뒤바뀐 순간들. 잘 다녀오라는 인사가 생애 마지막 인사가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불과 3시간 전에 안녕히 주무시라고 인사를 나눈 아빠가 싸늘한 주검이 되고, 내일 보자며 퇴근길 인사를 나눈 동료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식물인간이 되었다. 누구보다 건강하셨던 친구의 어머님이 뺑소니 사고로 영안실에 안치되었고, 쩌렁쩌렁 설교하시던 목사님이 어느 날 간암 말기 판정을 받으시더니 1년 만에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 이쯤 되니 확실히 알겠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우리 인생이며, 삶과 죽음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맞닿아 있다는 것을. 내일 일은 아무도 알 수 없음을.


최근 유방암 진단을 받고 힘든 일상을 살고 있는 언니와 아직은 건강 이상 없이 살고 있는 나는 똑같은 오늘, 현재를 살 뿐이다. 드러난 현상만 놓고 본다면 내가 더 오래 살 것 같지만 죽음의 순서는 장담 할 수가 없다. 미래는 현재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지만 아무도 알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이고, 과거는 현재를 기준으로 재해석될 수 있지만 이미 지나간 역사라고 했다. 그렇기에 우리가 더욱 힘써 집중해야 하는 시간은 현재이다.


현재를 뜻하는 영어 단어 ‘Present’의 다른 뜻이 ‘선물’이듯,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선물은 오직 ‘현재’.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오늘을 망칠 것인가, 내 앞에 허락된 오늘을 감사하며 가치있게 살 것인가. 선택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오늘, 현재를 열심히 살아내야겠다. 내 앞에 놓인 생을 뜨겁게 사랑하면서.




<드라마 ‘눈이 부시게’ 엔딩 내레이션 중에서..>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사랑하는 작가님들, 안녕하세요. 저희 언니의 아픈 소식을 듣고 위로의 마음을 쏟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동안 언니의 소식과 안부가 궁금하셨지요? 제 주위 친구, 지인들조차도 유방암 4기라는, 왠지 위중해 보이는 기수 때문에 함부로 묻지 못하시고 눈치만 살폈다고 하시네요. 배려 넘치는 다정한 마음에 감동했습니다.

저희 언니는 잘 지내고 있어요. 3월 중순에 진행될 정밀 검사를 받아봐야, 그동안 복용한 항암약이 암세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온 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공부했고, 검증된 절차를 거친 맞춤 설계로 병원 치료와 더불어 영양제와 보조제, 보완 치료, 건강한 식단과 걷기 운동 등 적극적으로 치유에 힘쓰고 있으니 예후가 좋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좋은 결과를 얻기까지는 암세포가 언니 몸에 살아온 시간만큼의 긴 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입니다. 길고 긴 인고의 시간이 될 것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단기간에 좋아지고 치료되는 마법의 암 치료제는 현재 없으니까요.

저희 언니는 4기라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통증이 거의 없어서 일상생활에 큰 불편함이 없습니다. 본인이 암 환자라고 밝히지 않는 이상, 암 환자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언니의 암종 자체가 워낙 순하고 진행 속도 또한 매우 느린 편으로 공격성이 거의 없습니다. 만약 1기에 발견되었다면 암 환자들에겐 꿈의 단어인 “항암 패스”가 가능했던 수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늦은 발견이 뼈아프면서도 그와 동시에 매우 희망적입니다. 공부해 보니, 암은 결국 결핍에 의한 결과입니다. 정상적인 유전자를 지킬 수 있는 물질들의 부족과 결핍. 그것들을 정성껏 채워주고 이전과 다른 삶을 살아서 암세포가 더 이상 살 수 없는 몸 상태로 만들어야만 이길 수 있습니다. 그 무엇보다 환자 본인의 끈기와 인내, 강한 의지와 독한 마음이 필요할 것입니다.

암 투병 중이신 어느 환우님이 어느 날 자신의 블로그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고 해요. “아직 계세요?” 그 말은 누가 들어도 “너 아직 살아있니?”와 같은 뉘앙스지요. 그날 하루 종일 그 문장 때문에 우울하고 마음이 슬펐다는 환우님 말씀에 제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저 역시 "어? 그분 아직도 살아계셔?"와 같은 무지에 의한 무례를 범했던 적이 있거든요.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 저희 언니를 보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누군가의 암 투병 소식을 들어도 함부로 예단하지 않고, 쾌유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응원해 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아직까지 호탕하게 웃지 못합니다. 하늘 끝까지 날아오르고 싶지만 나뭇가지에 걸린 헬륨 풍선처럼 언니에게 마음 한편이 사로잡혀 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 죽어도 부끄럽지 않은 오늘을 만들기 위해, 사랑하는 아이들 한 번 더 안아주고 칭찬해 주면서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가을, 하고 싶은 공부가 있어서 대학 편입을 했습니다. 이제 곧 봄 개강을 앞두고 있는데, 학업에 더욱 정진해 볼 생각입니다.

꼭! 좋은 소식 전할 수 있도록 언니와 손잡고 함께 파이팅 하겠습니다. 염치없지만 기도 부탁드려요. 작가님들 모두 건강하시고 늘 평안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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