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렁울렁
또 뭐가 불안해서 브런치를 기웃거린다. 마음이 조금 울렁거릴라 치면 글자를 찾는다. 한 장을 채울만한 거리가 없지만 뭐든 써야만 할 것 같아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는 채로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뭐.. 이렇게 쓰고 있다고 해서 멀미가 멈추는 것은 아니군.. 을 막 느끼긴 했지만.
작년에 운이 좋았다. 자격증을 따고 연수를 받고, 타이밍 좋게도 일하고 싶었던 곳에서 구인이 있었고, 자격증 실물이 발급되기 전에 취업이 됐다. 돌이켜봐도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운이 없는 편인데, 내 생애 운을 그때 다 써버린 것 같기도 하다. 8월이면 입사 1년이 된다. 지금은 10개월 차 햇병아리.
10개월 차에 접어드니 기억이 났다. 자격증을 준비하고, 전문직을 갈구하고, 안정적 삶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잠시 잊게 했었는데, 취업부터 지금까지 점진적으로 기억이 나다가 드디어 완전히 떠올랐다. 내가 얼마나 조직생활에 맞지 않는 사람인가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변화에 잘 적응했고, 동료들과 잘 지내고, 업무도 평균 정도는 되는 것 같다.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 겉으로는. 속은 아니다. 과도하게 긴장하고 걱정하고 그 누구도 주지 않는 눈치를 스스로 보느라 애를 쓴다. 전적으로 개인적 성향과 왜곡된 인지 때문인데, 20대 때 보다 훨씬 건강한 사고를 갖게 됐음에도 어쩐지 여전히 작은 일들에 발목 잡힌다.
혼자 있고 싶다. 지속, 정기적으로 동일한 타인들을 만나는 일이 쉽지가 않다. 혼자가 아니면 깊숙한 내부의 항상성과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 왜 이런 식으로 나약한 것인가 자주 원망하다가 지금은 받아들인다. 이런 나인데 여지껏 이만큼 노력했으면 그것 나름으로 인정해 줘야지. 또 한편 생각한다. 이를 나약이라는 범주에 넣는 게 맞는 것인지에 대해서. 성향이나 기질은 훈련과 경험을 통해 필요한 외피를 두를 수 있을 뿐 원형 자체를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라. 한 자리에 오래 머무는 사람, 한 우물만 파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반도 따라가지 못하고 내린 결론이다.
이런 나라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또 의문과 의구의 구렁텅이로 다이브. 회피와 도망의 역사를 지닌 나는 또 회피와 도망의 계획을 세우고 있다. 공부를 많이 한 것 같은 어떤 사람이 그러던데, 사람은 서른다섯까지 삶을 살아가는 법이나 대처 방식을 배운다고 한다. 그래서 서른다섯 전까지 크고 작은 성공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무언가를 시도하고 이를 통해 얻은 경험이 학습된 사람만이 서른다섯 이후에도 그렇게 살 수 있다고. 서른다섯까지의 경험과 학습이 평생 반복되는 것이라고.
서른다섯이다. 만 나이 적용 안 하면. 회피와 도망의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은 무모함이다. 그럼 나는 남은 생애동안 무모함을 반복할 수 있겠지. 빌어먹으며 살고 싶진 않은데, 무모함을 반복할 수 있는 삶이란 꽤 낭만적인 것 같다고 생각하다 보니.. 참으로 대책 없는 것들만 배워왔구나 싶다. 그래서 느끼는 멀미겠지.
삶의 어디쯤에서 멀미를 느끼고 있는 걸까. 어떤 말을 함으로써 속을 다스리고 싶은 걸까. 나열한 단어들과 문장들을 알약처럼 곱씹다 보니 조금 나아지는 것도 같다. 뭘 깨달은 건 아니고 진통제처럼 잠깐 호전된 느낌이 드는 것인데, 다들 그렇겠지. 자신의 어떤 것들을 곱씹으며 현재를 그럭저럭 버티는 거겠지. 듣고 싶다. 그들에게는 무엇이 알약이 될 수 있는지, 불안이라는 울렁거림 안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고 있는지. 서른다섯까지 유효하고 신중하고 앞뒤를 잘 헤아리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대책은 무엇인지.
오 년만 있으면 마흔인데, 오 년은 화살처럼 날아올 텐데, 어쩌자고 여태 이런 불안을 품고 사는 것인지도, 듣고 싶다.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