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스존은 방 안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그의 정신은 이미 현실과 환각의 경계를 넘어섰고, 스칼렛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그의 귓가를 맴돌았다.
그러나 이대로 끝낼 수 없었다. 그는 마지막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는 옷을 꺼내 정리했다. 더 이상 남아 있는 것은 없었지만, 마지막으로 그녀를 직접 만나야 했다. 아니면, 이 모든 것을 끝내야만 했다. 그의 손끝이 떨렸지만, 그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어린 시절 델스존은 위대한 작곡가가 되고 싶었다. 아니, 단순한 작곡가가 아니라, 베토벤이나 바흐처럼 영원히 기억될 천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피아노 앞에 앉을 때마다,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은 그에게 모욕을 안겼다. 그것은 위대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너무 평범했고, 너무 진부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배웠다. 처음에는 단순히 좋아서였다. 피아노를 두드릴 때마다 만들어지는 음이 신비로웠고, 악보를 읽는 것이 마치 세상의 비밀을 해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그것은 즐거움이 아니라 증명이 되어버렸다. 그는 위대해져야만 했다. 단순한 연주자로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곡을 써야 했다. 자신만의 음악을 창조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부족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베토벤의 교향곡과 비교하며 좌절했다. 베토벤의 음악은 운명이었다. 한 음 한 음이 필연처럼 느껴졌고, 거대한 파도가 몰려오듯 청자를 휩쓸어갔다. 그의 음악 앞에서 델스존의 작품은 그저 물웅덩이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미미한 파동을 일으킬 뿐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신동 소리를 들었다. 부모는 그를 신동이라 불렀고, 귀족들의 살롱에서 연주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모두 감탄했다. 그러나 그는 어릴 때부터 한 가지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이 재능이 진짜일까? 나는 정말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의 스승은 냉정했다. “너는 재능이 있다. 그러나 그 재능만으로는 위대해질 수 없다.”
그 말은 그의 마음속을 후벼 팠다. 재능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하단 말인가? 그는 밤마다 악보를 뒤적이며 베토벤과 바흐의 작품을 연구했다. 그러나 연구하면 할수록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깨달을 뿐이었다.
그의 곡은 완벽하지 않았다. 때로는 기교가 지나쳐 감정을 담지 못했고, 때로는 감정에 치우쳐 구조가 엉망이 되었다. 그는 자신을 채찍질하며 연습하고, 작곡하고, 지웠다. 그러나 만족할 만한 작품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의 방에는 찢어진 악보들이 쌓여갔다. 완성된 곡이라 믿었던 것조차도 다시 들어보면 형편없었다. 결국 그는 모든 악보를 불태우고 싶어졌다. 그는 책상을 뒤엎으며 피아노 건반을 마구 두드렸다. 하지만 거기서 나온 소리는 거칠고 의미 없는 소음일 뿐이었다.
그때 그는 깨달았다. 그는 ‘작곡가’로서의 본질을 잃어가고 있었다. 음악을 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그녀의 사랑이 없다면 모든 것은 파멸이다. 그에게 그녀는 사랑의 대상일 뿐 아니라 작곡자로서의 도약을 위해서 그리고 스스로 자신을 인정하기 위한 모든 것이 되어버렸다.
그는 밤을 꼴딱 새우고 새벽에 집을 나왔다. 목적지가 없는 듯 느릿느릿 가끔은 넘어질 듯이 절뚝대는 걸음으로 긴 호흡으로 길을 걸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온몸이 바짝 서며 불편한 전기가 귀부터 내려와 등줄기를 타고 엉치 부근까지 세차게 흘러감을 느꼈다. 심장이 두근대고 콧잔등에는 이내 땀이 맺혔다. 그는 한 사람이 옆에 있다는 걸 인지했던 것이다. 길 옆쪽으로 난 오솔길에 스칼렛이 창백한 얼굴로 뚫어지듯 쳐다보고 서 있었던 것이다.
“기다렸나요?” 그녀는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는 혈압이 오르고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가 조용히 손을 뻗었다. “왜 그렇게까지 나를 기다렸어요?”
그는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손길이 닿는 순간, 그녀는 안개처럼 사라졌다. 갑자기 날카로운 통증이 눈알 뒤쪽을 스쳐 지나갔다. 불편하게 두근대는 심장소리가 차가운 새벽공기 사이로 퍼져나갔다.
그는 정신을 붙잡기 위해 자신의 뺨을 쳤다. 현실과 환각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었다. 그는 이제 그녀가 진짜인지, 환상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번에는 더 가까웠다.
“델스존 당신은 단 한 번이라도 진정한 감정을 담아 곡을 쓴 적이 있나요?”
그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는 이제 그녀가 자신의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망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은 너무나도 날카로웠다. 그는 숨을 삼키며 대답하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는 한 번이라도 가짜가 아닌 진짜의 정수의 무언가를 담아 음악을 만든 적이 있었는가?
그 순간, 환영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스칼렛뿐만 아니라 베토벤, 바흐, 모차르트, 슈베르트가 그의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차가웠고, 그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네 음악은 텅 비어 있다.”
베토벤이 말했다. “네가 원하는 것은 음악이 아니라 인정이다.”
바흐가 덧붙였다. “너는 선율을 짜내지만, 그것은 감동을 주지 않는다.”
슈베르트가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너의 영혼은 어디 있지?”
그들의 말이 그의 정신을 조각조각 찢어 놓았다. 그는 손을 들어 귀를 막았지만, 소리는 더 커졌다. 그들의 목소리가 마치 천둥처럼 그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그는 비틀거리며 땅에 주저앉았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그들이 옳았다. 그의 음악은 죽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어느덧 그녀의 저택 앞에 도달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