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밀란쿤데라의 '농담'

by 호원장

밀란 쿤데라의 소설 『농담』 속 인물 관계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특히 루드빅, 루치에, 제마넥(그리고 헬레나)의 관계는 욕망과 허영, 배신과 집착이 얽혀 있으며, 이를 통해 인간의 나약함과 욕망의 허무함이 드러난다.



공산당원 루드빅은 반체제적 농담을 한 것이 밀고되어 인민재판을 거쳐 당에서 축출된다. 그는 평소 고향 친구들에게 공산당원으로서의 자격을 은근히 자랑하면서도, 정작 당내에서는 사상에 심취한 동료들을 경멸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 체제 내에서는 사상의 경직성을 조롱했지만, 막상 유형지로 추방되자 과거 공산당원으로서의 자격을 인정받고 싶어 하며 당의 행동 규범을 읊조린다. 체제를 절대적으로 신뢰하지도, 강하게 반대하지도 않는다. 무조건 체제를 믿거나 반대로 저항하는 것만이 진정성 있는 것은 아니나 뚜렷한 주관 없이 허영심에 취해 눈앞에 닥친 문제를 그럴싸하게 피해 가는 모습에선 내면적 발전이 가능하지 않다. 결국, 주체적인 성찰 없이 상황에 따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그의 모습 속에서는 자아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히브리어에서 "Lek lka"는 "떠나라"는 뜻으로,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내린 명령이다. 그는 고향과 가족, 기존의 익숙한 세계를 떠나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야 했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정신적 성숙을 위한 과정이었다. 어린아이가 성인이 되기 위해 부모의 권위에서 벗어나야 하듯이, 한 개인이 온전한 자아를 확립하려면 기존 사회의 욕망 구조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루드빅이 당에서 축출되어 유형지로 떠난 사건은 물리적, 정신적으로 체제를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기회였다. 하지만 그는 이 기회를 자아 성장의 계기로 삼지 못했다.



루드빅의 유형 생활은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 강요된 것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그는 체제나 개인적 가치관에 대한 설적인 회의보다는 욕망 즉, 자신을 밀고한 제마넥에 대한 개인적 복수심에 사로잡힌다. 르네 지라르의 욕망의 삼각형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욕망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즉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는 특징을 가진다. 루드빅은 유형생활을 통해 체제를 극복하거나 자아를 찾으려는 노력 대신, 제마넥과 관련하여 욕망의 삼각형에 갇혀 버리고 만다. 그는 그를 고발한 제마넥을 증오하는 와중에 오히려 그의 강력함을 선망하는 모순적인 감정을 품게 된다. 이러한 그의 집착은 제마넥의 욕망을 모방하는 욕망을 품는 계기가 되었으며, 결국 제마넥의 아내 헬레나를 욕망하게 된다.



한편, 유형지에서 만난 '루치에'는 가난하고 연약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루드빅에게 일종의 구원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속 소냐와 같은 헌신적인 인물은 아니었다. 소냐는 라스콜리니코프가 자신의 사상을 극복하고 성숙하도록 이끄는 존재였지만, 루치에는 루드빅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간으로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나약한 존재였다. 이들은 서로를 구원하기는커녕, 상호 간의 몰이해 속에서 결국 사랑마저 실패로 끝난다.



루드빅은 체제에 대한 분노를 제마넥 개인에게 투사하고, 그를 욕망을 모방하며 제마넥의 아내 헬레나를 유혹하지만 이는 실패로 돌아간다. 왜냐하면, 정작 제마넥의 욕망은 이미 아내 헬레나를 떠나 새로운 젊은 애인에게로 향해있었기 때문이다. 즉 루드빅의 욕망은 김 빠지게도 제마넥의 과거의 욕망을 모방한 것에 불과했다. 결국 루드빅이 헬레나를 차지하는 것은 무의미한 자기 위로에 불과했다. 이를 깨달은 루드빅은 욕망의 삼각형을 벗어나는 선택을 하기보다는 다시 그 안에 갇혀서 진정한 제마넥의 욕망의 대상- 그의 젊은 애인을 욕망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욕망의 새로운 모방은 발전적인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루드빅은 한 모방에서 다른 모방으로 옮겨가며 욕망의 굴레에 사로잡혀 자신의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것이다.



제마넥은 누구인가. 철저한 이념적 신봉자가 아니라, 단지 군중의 관심을 끄는 데 능숙한 기회주의자였다. 그는 사상에 충성하는 척했을 뿐, 실제로는 군중의 욕망을 욕망하는 존재였다. 제마넥은 군중의 욕망을 욕망했고, 루드빅은 제마넥의 욕망을 욕망했다. 이들은 누구도 자기만의 본질적인 삶을 살지 못한 채, 타인의 욕망에 종속된 삶을 살고 있었다.



제마넥의 아내 헬레나는 어떤가. 제마넥에게 버림받고 자신을 욕망하는 루드빅에게 기대를 걸지만, 루드빅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한다. 그녀는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수로 수면제가 아니라 설사약을 과다 복용해 우스꽝스럽게 살아남는다. 그녀의 욕망은 자신을 사랑해 주는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욕망이다. 타인이 그녀를 욕망할 때야 비로써 그 욕망을 모방하여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녀 또한 홀로 서는 존재가 아니다. 그녀의 욕망의 삼각형 또한 가냘프고 허망하다. 그녀가 비극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우습게 살아남는 설정은 작가의 삶에 대한 시니컬한 웃음- 농담을 연상시키다.



이러한 욕망의 우스운 다툼은 어디로 향하는 걸까. 소설의 욕망의 삼각형은 시골길을 지나가는 낡은 마차의 바퀴처럼 덜컹거리면서 시간의 거친 노면을 따라간다. 루드빅은 헬레나의 자살 소동을 겪으며 자신이 제마넥의 욕망을 모방하는 데 불과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루치에 와의 기억을 떠올리며 욕망의 삼각형에서 벗어나게 된다. 제마넥 또한 젊은 시절의 속물적인 욕망을 지나간 과거로 인정하며 군중의 욕망에서 벗어난다. 헬레나는 자신을 사랑해 준 또 다른 젊은 남자를 받아들이며 새로운 삶을 찾는다. 이 모든 과정이 진정한 정신적 성숙과는 거리가 멀다. 진정한 깨달음이라기보다는 그저 새로운 욕망의 삼각형에 들어가는 서막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욕망의 삼각형 속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절망했던 모든 순간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잊히고, 마치 가벼운 농담처럼 흩어진다. 인간 존재의 허무함과 욕망의 공허함을 농담처럼 가볍게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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