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연길 4박 5일
●왜 윤동주 문화제를 연변국제한국학교에서
매년 개죄하는가?
윤동주 시인이 연변에서 다닌 학교는 명동학교(明東學校)와 은진중학교(恩眞中學校)다.
명동학교 (明東學校)
윤동주는 중국 만주 북간도 지역의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나, 이곳에 위치한 명동학교에서 초등교육을 받았다. 명동학교는 1908년 김약연 목사가 설립한 민족교육기관으로, 기독교 신앙과 민족정신을 중심으로 한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 학교는 독립운동가와 지식인을 다수 배출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은진중학교 (恩眞中學校)
명동학교 졸업 후, 윤동주는 용정에 있는 은진중학교에 진학하였다. 이곳에서 그는 고종사촌인 송몽규와 함께 학업에 매진하며 문학적 감수성을 키워 나갔다. 은진중학교는 당시 조선인 유학생들에게 중요한 교육기관 중 하나였다.
이후 윤동주는 평양의 숭실중학교와 서울의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를 거쳐 일본의 릿쿄대학과 도시샤대학에서 수학하였다.
윤동주 시인의 생가가 위치한 '명동학교(明東學校)'는 1908년 북간도 화룡현 명동촌에서 김약연 목사의 주도로 설립된 민족교육기관이다. 이 학교는 조선의 독립과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교육을 실시하며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그러나 1925년, 일제의 탄압과 재정난 등으로 인해 명동학교는 폐교되었다.
●폐교 이후에도 명동학교의 정신은 지역 사회에 깊이 뿌리내렸으며, 윤동주 시인의 생가와 함께 현재까지도 그 역사적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중국정부의 동북공정이라는 미명아래
윤동주는 중국 시인이 되었고 그의 고향땅 명동촌은 개보수라는 이름으로 국적 없는 중국식
건물로 변해가고 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현지 조선족 문인들이 조국은 무얼 하고 있느냐 그냥 두고 볼 것이냐. 그냥 와서
절 만하고 낭송하고 춤추고 돌아가면 끝이냐?
그의 정체성을 살릴 공간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그의 묘소 하나 관리할 단체하나 못 만드느냐?
그의 정신을 계승발전 시킬 장소하나 못 만드느냐?
헌 지의 목소리에 대한민국 정부가 중국 연변지역에
"연변국제한국학교"를 한국정부에서 100% 출자해서 세웠고
이곳에는 조선족 자녀도. 중국인자녀도, 입학하지 못하고 오직 한국국적의 자녀들만 입학하여 수업을 받고 있다. 국적이 반드시 한국인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학교의 모든 교직원들은 교육부에
헌 직교원들을 대상으로 선발하고 근무기간은 3년이며 복무를 마치면 원소 속 교육청으로 돌아온다. 따라서 우리와 문화교류협약을 맺은
"연변국제한국학교 "는 교육기관이기도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폐교가 된 명동학교를 대신하고 있는
그곳과 2016년도에 방문하여 물밑작업을 벌였다
사실 "연변국제한국학교 "도 중국정부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은 것은 2018년이었다.
이 학교는 그냥 단순 교육장소가 아닌 영사관처럼
외교성지와 같은 곳이다. 하여 이곳에 제8대 최인섭교장과 문학시선 작가회 박정용 회장 간
협약식을 갖고 순 한글판 시비를 세웠고 그 이후 매년 학교 개교기념일에 방문하여 윤동주문화행사를 치르고 있고 지금까지 윤동주
시비 4점을 기증하였다. 작금의 중국정부에서 한글판 시비제작하는 것을 보고 제작 중단을 명하는 등 소수민족 언어 말살정책으로 인해 더 이상의 석재 시비건립은 불가하여 올해부터
디지털 문학관 건립을 수립시행키로 했다
학교 자체 내 교실을 활용하여 디지털 문학관을
개관하기로 했다.
따라서 올해 방문단은 윤동주 시 육필원고 18편을
그대로 판각하여 기증하기로 하였다.
해마다 장학금과 시비를 기증하고 백일장을 개최하고 심사를 하고 윤동주를 기리는 행사를
해 오고 있다.
●그로 인해 해마다 윤동주 탄생 기념문학상 공모전을 치르고 시상식 행사를 현지에서 하는 것이다. 賞만 챙기고 명예만 가져가려는 분들께는 대단히 죄송하지만 본 문학상 제정 뜻에 반하여 책이 싣는 것으로 가름하고 시상은 따로 하지 않는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잠시 쉽니다
이야기보따리 채워서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