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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빛고은 Aug 19. 2024

백수의 자존심을 긁은 면접

도피보다 도전

나는 더 늦기 전에 임용고시생 딱지를 떼고 되지도 않을 시험에서 탈출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임용 고시 포기.

3년 했으면 됐다. 그걸로 끝.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취업포털 사이트에서 국어와 영어전공자 구인글을 눈여겨봤다.


출판사, 학원강사, 사무보조, 광고 회사 등등...

학원 강사는 수험생 때 잠깐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용돈 벌이를 했으므로 직업으로 삼기에는 적절해 보이지 않았다.


가장 눈길이 간 것은 출판사 공고.

졸업하고 여태 국어 공부를 했으니 이력서에도 어떻게 잘 끼워 맞춰 쓰면 어색하지 않게 나의 백수 생활을 포장할 수 있다.


그리 유명하지 않은 출판사에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연락을 받고,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나도 드디어 취업하는구나!!!


2008년 여름이었다.

무더위에 불편한 정장을 입고 딱딱한 구두를 신으니  이마에 구슬땀이 맺혔다.

가산디지털단지역으 향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취직을 해도 괜찮을 거리의 회사였다.


긴장감 때문인지, 복장이 불편해서 인지, 어쨌든 온몸에 힘을 주고 걸었다.

면접 시간은 마침 점심시간과 겹쳤고, 직장인들 틈에 껴있으니 나도 제법 직장인 티가 나는 것 같았다. 기분이 좋았다.


'이제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도박 같은 시험에 내 인생을 낭비하지 말자.'


출판사 문을 열었다. 사무실이 제법 컸고 깔끔했지만 일하는 직원은 많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면접 보러 왔습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대표라는 사람 한 명이 이력서를 훑으며 이런저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졸업하고 여태 뭐 했는지.

다시 임용고시 볼 생각은 없는지.

집에서 여기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예상 질문이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답을 하고 있는데, 세상에나.  눈이 동그랗게 커지고 말았다.


갑자기 재킷 안쪽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와 라이터를 꺼내더니 아주 자연스럽게  불을 붙이는 게 아닌가.

심지어 아무렇지 않게 담배 한 모금을 빨고 질문을 이어나갔다. 나는 벌어진 입을 얼른 다물고 책상 끝에 시선을 두고 대답을 했다.

사실 담배가 나온 뒤부터는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면접 보는담배라니.

사람 면전에 대고.

그것도 양해도 없이. 

무시당하고 하대 받았다는 생각과 함께 그 더러운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3년을 공들여 공부했던 내 소중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어렸을 때부터 꿈꿔 왔던 국어교사를 고이 접어 놓고  옛 여인을 냉정하게 잊어버리기라도 하듯 최선을 다해 면접을 보고 있었는데..

그런 내 모습이 담배 연기 속에 묻히 말았다.


그것은 마치 나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일지도 모른다.

예의도 개념도 없는 대표 밑에서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끔찍했다.


나는 그 길로 취업 준비를 접고 다시 도서관으로 출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취업에 대한 오만 정이 다 떨어지게 만든 대표가 감사할 지경이었다.

어쨌든 출판사를 끝으로 나는 이력서를 더 이상 내지 않았다.


출판사에서 나오자마자 눈물이 났다.

면접 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며 삐딱하게 앉아서 질문하는 그런 사람에게 내 존재가 그렇고 그런 사람으로 취급받았다고 생각하니 자존심이 상해서 견딜 수 없었다.

임용고시에서 도피하려 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날아오를 준비를 마치지 못한 채 세상에 나간 새는 결국 굶어 죽거나, 포식자에게 잡혀먹는다.

내면의 힘을 길러 사회에 나가, 당당한 나로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줄 아는 공부로 승부를 보기로 마음먹고, 다시 국어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2008년 여름, 임용고시 4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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