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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빛고은 Aug 16. 2024

슬럼프

장수생이 불합격하는 이유

스터디를 하고 드디어 두 번째 임용고시를 치렀다.


처음과 다르게 합격의 열망이 뜨거웠다.

처음보다 눈에 띄게 성장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2차 문턱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1차 시험에서 고배를 맛보았다.

충격적 이게도 스터디원 언니들도 모두 탈락.

역시 임용은 어려운 시험이었고, 아무나 되는 시험이 아니었다.


나는 그렇다 치고.

무림의 고수들인 언니들조차 이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다니.


갑자기 이 길이 내 길이 맞나 싶었다.

'공부한다고 된다는 보장이 있을까?'

'이러다 나이만 먹는 거 아니야?'

'평생 공부만 하다가 끝나면 어쩌지?'


두 번째 시험에서는 합격 커트라인보다 3점 정도가 부족했다.

내가 쓴 답안을 확인하고 싶어서 경기도 교육청에 가서 시험지를 확인했다.


지하 창고로 갔다. 담당자가 한참을 있다가 시험지를 꺼내왔다.

수감된 아들 면회 온 것처럼 두 손에 꼭 쥐고 답안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읽어보니 짠한 생각이 들었다. 합격답안지로 분류되지 못한, 그저 그런 폐지로 취급받으며 잠자고 있는 나의 답안지에게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합격하지 못해서 미안해.


3점 차이. 근소한 차이 같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워낙 지원자가 많아서 1점당 거의 100명 정도의 사람이 몰려 있다고 하니, 1차에서 나는 300등으로 탈락한 셈이다.

당시 임용고시 뽑는 인원은 경기도에서 보통 100명 내외였고, 1차는 1.5배 수로 뽑으니 내 점수가 그리 아까운 점수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점수도 아니었다. 전혀 방향성 없게 답을 쓴 것도 아니었다.

조금만 더 하면 합격할 것 같은 희망고문 같은 점수차였다.

그래서 나는 과감히 3수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부모님과 식구들은 내가 당연히 임용고시를 준비해야 한다고 여겼다. 감사하게도 부모님께서는 다 큰 고시생 딸에게 밥벌이 못한다고 눈치 한 번을 안 주시고 든든한 버팀목처럼 서 계셨다.

 

내 나이 스물여섯이 되던 해였다. 가족 누구도 나의 불합격에 대해 비난하거나, 앞으로의 미래를 재촉하지 않았지만, 나는 나 스스로 비난하고 재촉하기 시작했다.


졸업하고 2년이 되어 가니, 친구들의 취업 소식이 들려왔다.

부럽다. 좋겠다.

만약 내가 일반 회사에 지원한다면?

이력서에 임용고시 준비한 기간을 뭘로 채워야 할지, 어떤 이야기를 써내야 할지 애매했다.

임용 말고는 준비한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금은 임용에 발을 담근 이상 빼도 박도 못하는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확실하게 붙는다는 보장도 없고. 주변과 비교되면서 흐릿한 내 앞날이 자꾸만 불안해져 갔다.


그래서 임용 3수 때 나에게 슬럼프가 왔다.

2년 간 봐왔던 책 내용이 다 아는 것 같아,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말 그대로 꼴도 보기 싫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지 않았다.


또 오랜 백수 생활에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이 보태어져서 합격에 대한 압박감과 불합격에 대한 불안함이 극에 달아 무기력에 이르는 날이 많았다.


'나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올해 티오가 줄면 어쩌지.'

'사범대 출신도 떨어지는 시험을 내가 붙는다고?'

'더 늦기 전에 다른 회사 알아볼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또다시 겨울, 시험날이 다가왔다.

시험 답안을 쓰면서도 불합격의 기운이 느껴졌다. 재수 때보다 답을 못썼기 때문이다.

답을 쓸 때 확신이 없었고 출제 의도에 맞지 않게 시간에 쫓겨 아무 말이나 쓰고 나온 것 같았다.

역시나 일 년을 나태하게 보낸 결과가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예상대로, 두 번째 시험보다 점수가 더 떨어졌다. 커트라인에서 -5점 차이.

우울함을 넘어 삶이 막막했다.

눈물이 나왔다.

아침 시간에 출근하는 내 또래 직장인만 봐도 슬펐다. 나는 언제 출근이란 걸 해볼수 있을까...

나는 이제 뭘 하고 살아야 하지...


내 나이가 스물일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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