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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빛고은 Aug 21. 2024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졌던 시절

그러나,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사실.

2008년 여름,

좌절의 시간은 끝나지 않았다. 


출판사 대표의 담배 사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에게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나는 평소 허리가 좋지 않았다.

그날도 허리가 아파 정형외과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았고 점심 먹을 때가 되어 겸사겸사 엄마와 병원 근처 냉면집으로 갔다.


신발을 벗고 앉는 좌식 테이블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니 다리가 저려왔다.

성격 급한 나는 다리를 주물러 혈액순환을 시키는 과정을 생략하고. 

금방 풀리겠지 뭐, 하고 엉거주춤 일어났는데 그때 마침 '우두득' 소리가 .


발이 저려서 절뚝거리면서 신발장까지 왔다. 이내 저린 게 풀려서 신발을 신으려고 보니 세상에, 발이 퉁퉁 부어있는 게 아닌가.


발목이 접질렸나? 

발을 땅에 디딜 수가 없을 정도로 아팠다.

보통 일이 아니다 싶어 오전에 갔던 정형외과로 향했다. 오후 진료 준비로 한창인 간호사가 나를 보더니, 뭐 놓고 간 게 있었냐고 물었다.


"아니요. 이번엔 허리가 아니고 다리예요"


의사는 X-ray를 찍어보자고 했다.

사진을 유심히 보더니, 말했다.


"금이 갔네요. 깁스를 해야겠어요."

황당해서 말이 안 나왔다.

그럼 아까 일어날 때 났던 '우두득'소리가 금 가던 소리였던 건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다.


"얼마나 깁스를 해야 하나요?"

"한 달 정도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기분이었다.

'내 인생 되는 일이 하나도 없냐. 나는 왜 이렇게 재수가 없는 거야.'

석고 붕대를 칭칭 감으면서도 인생 한탄이 이어졌고, 그저 눈물만 흘렸다.


사범대도 못 가

(수능은 왜 망하가지고)

전공선택 잘못해 

(삽질도 유분수지)

졸업도 혼자 해

(친구들 다 졸업할 때 너는 뭐 했니)

시험 볼 때마다 떨어져 

(이제 붙을 때도 됐잖아)

면접 가무시당해

(바보처럼 찍소리도 못하고)

하다 하다 일어났을 뿐인데 발등에 금이라고? (에휴..)


나의 20대 중반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재수 옴 붙었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가장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렇게 좌절하고 있을 때 내 소식을 들은 친구가 병문안을 와서 주옥같은 명언을 남기고 갔다.

그 친구는 나와 같이 도서관을 다니면서 사회복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얼마 전 합격한 친구였다.


"야,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대."


이 말이 내 인생을 바꾸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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