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가 왔다.
"안녕하세요, 요한이 엄마예요. 혹시 오늘 애들 방과 후 수업 끝나고 정우 일정이 어떻게 되나 해서요 놀이터에서 같이 놀릴 수 있을까요?"
며칠 전 정우 엄마는 안젤라와 잠깐 단지 안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서 어딜 다녀가는 길 같아 보였다.
정우 엄마는 안젤라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그리고 곧장 안젤라 손에 들린 책으로 시선이 갔다. 안젤라는 영어로 된 원서 책을 들고 있었다.
"어머, 안나 어머님, 영어 잘하시나 봐요. 무슨 책이에요?"
"아니에요, 잘하긴요. 영어 원서 모임에서 읽는 책인데 없어서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길이에요."
안젤라는 수줍게 웃었다. 일주일에 한 번 동네 모임에서 영어 원서 책을 읽고 서로 이야기 나누는 모임에 참여한다고 했다.
안젤라는 요한이와 안나를 임신하기 전까지 호텔에서 일을 했었다. 주로 프런트에서 손님들의 객실을 배정해 주고 컴플레인을 접수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그래서 안젤라의 말투나 억양은 차분하면서도 힘이 있고 고급스러웠다.
호텔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알 만한 해외 유명 체인 그룹이었다. 결혼 전에는 하와이에 있는 지사에서도 약 6개월 정도 근무를 했었는데 안젤라는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며 활력을 얻곤 한다.
그곳은 엽서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었다. 에메랄드 빛 바다가 부드럽게 출렁이고, 따스한 바람이 살결을 감싸며 노을이 포근하게 내려앉는 그런 곳에서 반년을 생활했다는 것은 안젤라에게 축복이었다.
더구나 영어로 마음껏 대화를 나누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안젤라는 마치 자유를 선물받은 것처럼 느꼈었다.
퇴사를 한 이후에도, 아이들을 돌보면서도 안젤라는 영어를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원서 모임을 하기 전에는 하루에 30분씩은 꼭 원서를 읽었고, 이곳으로 이사 온 이후에는 운 좋게 원서 모임에 가입해 다른 사람들과 영어로 말할 수 있는 시간도 생겼다.
무엇보다 안젤라는 아이들의 머리가 커지면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줄 수 있어서 좋았다. 사교육비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요한이와 안나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한 가지 더 생겼다는 것에서 엄마로서 뿌듯했다.
그리고 원서를 읽는 자신을 주변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도 싫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더 좋았는지도 모른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이곳에 이사 와서 아이들을 키우며 의지할 곳 하나 없었는데 원서를 들고 다니면 명품을 걸치지 않아도 위축됐던 마음이 조금은 풀렸다.
안젤라는 문자로 정우 엄마에게 아이들을 놀이터에서 놀리자는 제안을 했다.
정우와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안나, 요한이를 위해 안젤라는 이리 저리 궁리 끝에 정우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정우처럼 활발한 친구와 시간을 자주 보내야 내성적인 안나가 활발해질 것 같아서 안젤라는 아이들의 친한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정우와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안나, 요한이를 위해 안젤라는 이리 저리 궁리 끝에 정우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정우처럼 활발한 친구와 시간을 자주 보내야 내성적인 안나가 활발해질 것 같아서 안젤라는 아이들의 친한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오늘은 마침 셋이 똑같이 방과 후 창의과학을 듣는 날이다.
3시 20분, 방과 후 수업을 한 타임 듣고 나오는 아이들이 교문으로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다.
안젤라와 정우 엄마는 교문 앞에서 아이들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정우 동생 정환이도 데리고 나왔다. 낮잠에서 이제 막 깼는지 칭얼대려고 시동을 거는 중이었다. 정우 엄마는 유아차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둘째를 돌봤다.
드디어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셋이서 뛰어오는 모습이 마치 공익광고의 한 장면 같았다.
[학교폭력 없이 행복한 우리 아이들]
이런 문구로 끝이 나면 완벽했을 장면이었다.
"안나가 정우랑 노는 것을 너무 좋아해요. 오늘도 수업 끝나고 놀고 싶다고 했어요."
안젤라는 고백처럼 툭 진심을 말해버렸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신나게, 깔깔대며 놀았다. 정우 엄마는 정환이가 걸음마 연습을 할 수 있도록 유아차에 내려주어 걷는 것을 도왔다. 그러면서도 정우 쪽을 주기적으로 바라봤다.
혹시 싸우지는 않는지, 누가 우는 것은 아닌지, 다치진 않는지, 살폈다.
안젤라가 아이들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옆에 있어줘서, 정우 엄마는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두 사람은 공동 육아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두 사람은 공동 육아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