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세대가 넘는 아파트 단지에 왕복 2차선 작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위치한 초등학교로 사람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고학년으로 되어 보이는 아이들은 혼자 가거나, 친구들과 함께 가면서 장난을 쳤고,
저학년 아이들은 주로 엄마나 아빠의 손을 잡고 등교를 했다.
특히 이제 막 갓 입학한 1학년 아이들 옆에는 부모가 꼭 있었다.
부모가 없으면 조부모라도. 아이들을 지키고 있었다.
부모들의 모습을 찬찬히 훑어보고 있노라면 생활에 쫓겨 분주해 보이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들은 화려하진 않지만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상표가 조그맣게 보이는 외투를 깔끔하게 걸쳐 입고
아이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와 걷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하나같이 여유와 품격이 느껴졌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대놓고, 야무지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것 같지 않은 느긋함도 느껴졌다. 어쩌면 원하는 것이 없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부모들은 아이들과 잡았던 손을 교문 앞에서 놓았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등굣길은 누구에게나 교문 앞까지만 허락되었다.
특별한 이유 없이는 학교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이 동네 부모들은 학교의 그런 통제를 마음에 들어 했다. 내 아이를 학교에서 잘 보호하고 있다고 여겼다.
등교시간이 가까워지자 교문 쪽은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정우와 안나, 요한이도 엄마의 손을 잡고 등교를 하던 길이었다.
그리고 셋은 우연히 교문 앞에서 만났다.
지난번 놀이터에서 통성명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정우 엄마와 안젤라도 고개를 살짝 숙이며 아는 체를 했다.
아이들은 엄마들을 뒤로한 채,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들은 아이들을 들여보내며 선생님 말씀 잘 들으라는 말과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을 하면서 아이들을 배웅했다.
아이들은 그런 엄마의 시선을 뒤로한 채 서로 앞 서거니 뒤 서거니 장난을 치면서 교실로 들어갔다.
정우 엄마는 안나, 요한이와 장난을 치며 빠르게 달려가는 정우가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걱정스레 그 모습을 지켜봤다. 저렇게 장난치며 가다가 누구 하나라도 넘어져 다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사실, 정우 엄마는 정우가 재빠르고 또래보다 키가 커서 걱정이 많았다.
아이들보다 덩치가 크기 때문에 똑같이 부딪혀도 상대 쪽 아이가 다치는 일이 있어서, 정우 엄마는 늘 조심시켰다.
놀이터에서도 정우의 흥이 지나치다 싶으면,
"이정우...!!" 하고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좀 더 차분하게 놀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러면 정우의 속도는 좀 줄어들었다.
정우 엄마가 놀이터에서 정우를 지켜보는 이유도, 정우의 완급 조절을 돕기 위해서였다.
아직 미성숙한 초등학교 1학년이였기에 부모가 되도록 아이 옆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정우 대신 가서 사과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만약을 대비해 정우 엄마는 늘 정우 곁에서 정우를 지켜봤다.
정우가 친구와 놀 때 행여 잘못된 행동을 했다면, 어김없이 집에 와서 이야기를 하며 교육시켰다.
하지만 학교에 있을 때는 그럴 수 없었다. 그저 집에서 너무 심한 장난은 치지 말라고, 뛰지 말고 걸어 다니라고, 혹시라도 친구가 다치면 바로 괜찮냐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라고 일러주었다.
아이들이 건물 안으로 다 들어가고 나서, 정우 엄마와 안젤라는 함께 단지를 걷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정우네 집은 안젤라 집보다 학교에서 조금 더 멀리 있었다.
"오늘은 정우 동생하고 같이 안 나오셨네요?"
"네, 친정 엄마가 일찍 오셔서요. 놓고 나왔어요."
"가까이서 할머님이 도와주시니 좋으시겠어요. 지금 시간 괜찮으시면 커피 한잔 하면서 좀 걸을까요?"
안젤라는 정우 엄마에게 먼저 산책을 제안했다. 정우 엄마도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둘은 커피를 테이크아웃하고 아파트 단지에 난 작은 산책길을 걸었다.
정우 엄마는 안나와 요한이에 대해서, 그리고 안젤라가 쌍둥이 남매를 키우면서 힘들었던 것에 대해 물어보았다.
안젤라는 시험관시술로 아이들을 어렵게 임신해서 낳았고, 친정이나 시댁 도움 없이 아이들을 키웠다고 했다.
혼자서 두 아이를 돌보느라 도우미 선생님이 늘 필요했는데, 마음에 드는 사람을 쓰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보내지 않았고 집에서 작년까지 보육을 했고, 아이들에게 사탕이나 과자 같은 것도 먹이지 않았다고 했다. 최근에 시리얼을 먹기 시작했다고. 안나와 요한이는 누가 사탕이나 젤리를 주면 안 먹고(먹을 줄을 몰라서) 엄마에게 갖다 준다고 했다.
왜 양가 도움을 못받았는지,
왜 가정보육만 고집했는지,
왜 사탕, 과자를 제한했는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안젤라의 말투에는 뿌듯함과 자부심이 들어가 있었다.
정우 엄마는 안젤라의 육아 태도를 들으며 실례가 될까싶어서 이유를 묻지는 않았지만, 임신부터 육아까지 연신 대단하다는 말을 내뱉었다.
7세가 될 때까지 두 아이를 가정에서만 보육했다는 것과 사탕이나 과자 같은 군것질을 먹이지 않고 지금도 먹거리에 굉장히 많이 신경 쓰고 있다는 것에서, 안젤라가 두 아이를 아주 공들여서, 귀하게 키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변에서 보지 못한, 결코 평범하지 않은 육아 방식이었다.
정우 엄마는 안젤라와 산책을 하고난 후 가까워졌지만, 한편으로는 자신과 다른 부류의 사람인 것 같아서 왠지 멀어진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조심해야 할 일이 생겼다.
귀하게 키운 안나와 요한이와 정우가 놀 때, 다치지 않게 더 조심시켜야겠다고. 정우 엄마는 머릿 속으로 되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