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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빛고은 Jul 31. 2024

학교가 끝나는 시간

교문 앞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엄마들

12시 30분.

1학년 학생들이 급식을 먹고 하교하는 시간이다.

요한이는 1학년 10반, 안나는 1학년 8반이었고 담임 선생님은 두 분 모두 50대 초반쯤으로 되어 보였다.

가까이 가서 누구누구의 엄마라고 인사를 드리지 않았지만, 

입학식 할 때 멀리서 보니 아이들의 담임 선생님들에게서 특유의 깔끔함이 느껴져 행동 하나하나가 능숙해 보였다. 그래서 심지어 어딘지 모르게 차가운 인상을 풍기는 게 사실이었다. 


특히 안나의 담임 선생님은 학생들의 대열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미간에 약간의 주름이 가면서 눈빛으로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안나는 어른들의 말을 잘 따르는 편이었지만 마음이 여린 안나가 선생님과 거리를 두면서 지레 무서워할까 봐 걱정되었다. 


안젤라는 아이들 하교시간에 맞춰 교문 앞에 도착했다. 12시 20분이었다.

창문 너머로 화사하게 빛나는 햇살이 안젤라의 옷차림을 가볍게 만들었지만 봄바람이 속을 차갑게 스쳤다. 안젤라는 옷깃을 여미며 고개를 빼고 아이들이 들어간 신관 입구 출입문을 바라봤다.

아이들이 나올 시간이 되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이들과 떨어져 있던 3~4시간이 안젤라에게는 길게만 느껴졌다. 


12시 30분, 드디어 학교 종이 울렸다.

1학년으로 되어 보이는 작은 아이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하나둘씩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엄마를 찾느라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엄마가 보이면 멀리서부터 뛰어와 두 팔을 벌리고 다가가 안겼다.


그 속에 정우와 정우 엄마도 있었다. 

키가 큰 정우가 입학식 때 요한이의 반 제일 뒤에 서 있어서 안젤라는 이미 정우를 알고 있었다. 

또한 교문에서 정우가 엄마에게 가는 모습도 몇 번 봐서 혼자서 안면이 생겨 버렸다. 

매일 반복된 일을 하다 보니, 알게 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물론 그들과 시시콜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필요하다면 기꺼이 대화를 나눌 의향은 있었다.


정우 엄마는 오늘 유모차를 끌지 않고 혼자 정우 마중을 나온 것 같았다.

어떤 때는 유모차에 돌쟁이로 되어 보이는 아기를 태우고 올 때가 있었다. 

안젤라는 정우에게 나이 터울이 나는 동생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교문에 서서 아이들을 기다리다 보면 굳이 대화를 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정보들이 많았다. 

다른 이들도 우리 아이들이 쌍둥이이고, 자신이 몇 시에 아이들을 데리러 오는지 등 자신이 알게 모르게 정보를 제공한다고 생각하니 더 교양 있게 행동해야겠다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가방 속에 있던 영어로 된 원서 책을 쳐다봤다. 다음번엔 원서를 가방에 넣을 것이 아니라, 책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잘 보이게 들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안젤라는 다시 신관 쪽으로 눈을 돌렸다. 정우가 나왔으니, 요한이도 나오리라.

때마침 요한이가 저 멀리서 안나 손을 잡고 나오고 있었다. 

둘이 만나서 손 꼭 붙잡고 나오라는 엄마 말을 지키는 아이들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쌍둥이 남매인 안나와 요한이는 이란성쌍둥이었지만, 생김새가 제법 닮았다.

외모뿐 만 아니라 말투나, 성격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비슷했다.

엄마와 함께 한 시간이 많아서인지 몰라도 둘은 엄마와도 많이 닮았다. 외탁을 한 셈이었다. 

아이는 뱃속에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떨어진 적이 없으니 어쩌면 다른 점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초등학교 1학년 답지 않게 의젓하고 점잖아서 마트에 가면 어른들께 줄곧 듣는 칭찬이 

'얌전하다', '차분하다'였다.

하지만 모르는 친구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하고 싶은 말을 우물쭈물하는 성격은 안젤라에게 고민거리였다. 안젤라는 아이들의 내성적으로 타고난 기질을 어떻게 활달하게 바꿔줄지 고민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이지만, 활발하고 적극적인 아이들을 볼 때면 부러운 마음이 살며시 고개를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놀이터에서 둘은 늘 단짝 친구였다. 다른 친구들이 와도 같이 놀자고 먼저 손 내밀지 않았다.

그래서 더 내성적인 성격이 되어가는 게 아닌가 하고 안젤라는 불안해졌다.


안젤라와 안나, 요한이는 하교를 하고 어김없이 '놀이터'로 갔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놀이터로, 산처럼 볼록한 조형물이 있어서 아이들에게 산 놀이터로 불렸다.

그곳은 이미, 하교 한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중에 정우도 보였다. 정우 엄마도 정우 책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고 정우가 노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1학년 아이들이 거쳐가는 코스가 대부분 비슷비슷했다. 아이들은 놀고, 엄마들은 지킴이를 자처했다.

혹시 놀다가 갈등 상황이 생기면 재빠르게 개입을 해서 우리 아이의 요구 사항을 반영시켜줘야 했기 때문이다. 아직 의사소통을 명확하게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 초등학교 저학년 옆에는 엄마가 필요했다.

이 동네에서는 그게 자녀를 "케어"하는 방법이었다. 


정우는 요한이가 오는 것을 보고,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가 말했다.

"너, 10반이지? 우리 같이 술래잡기하고 놀래?"

요한이는 수줍은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나를 포함해서 다 같이 놀이를 시작했다. 아이들에게는 함께 뛰어놀고 웃을 수 있는 친구가 최고의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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